하나님 이야기
시편 66편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이성은 추론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고귀한 능력이며, 사람들은 이를 활용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현명한 선택을 내립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은 어린아이가 주사를 두려워하며 완강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부드럽게 타이릅니다. "주사 한 대만 맞으면 감기가 곧 나을 거야. 용감하게 잘 맞으면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네가 좋아하는 사탕도 사줄게."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작은 이성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잠깐의 고통을 견디고 병원을 나서며 달콤한 사탕을 얻고 건강까지 회복하는 것이 유리한가, 아니면 여기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이 나은가. 아이는 이러한 논리적 추론에 따라 최종적으로 행동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성을 부여받은 모든 존재는 이처럼 자신의 행동 양식과 방향을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진정으로 설득하고자 할 때, 그의 이성에 호소하고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두려움에 떠는 자들을 향하여
오늘 본문의 시인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일단의 무리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성전에 발걸음을 옮겼을 때, 그곳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성전에는 나왔으나 정작 예배를 드리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인은 그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신 크고 놀라운 기적들을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자신이 이 거룩한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서원을 갚기 위해 예배드리게 된 경위도 진솔하게 나눕니다. 곧 자기 자신의 삶 속에 임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그분께서 베푸신 놀라운 역사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시인은 두려워하는 자들을 본격적으로 설득합니다. 여기로 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일을 들으라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겠다고 초청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과 자신의 개인적 삶 속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를 통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의 마음을 설득하는 거룩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시 66:1-2)
시인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분의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성전에 발걸음한 시인을 비롯하여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온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할 정당한 근거를 시인이 확신에 차서 설명해 줍니다.
"와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라 사람의 아들들에게 행하심이 엄위하시도다" (시 66:5)
'엄위하다'는 표현은 히브리어 '야래'에서 비롯된 단어로, '완전하여 놀랍다'라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신 일들이 완전무결하여 경탄할 수밖에 없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시인이 이처럼 성전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선포한다 해도, 그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들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즉각 깨닫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왜 완전하신 분이신지, 우리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목도하고 왜 경외심으로 떨 수밖에 없는지를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을 통해 명료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시 66:6)
이는 바로 출애굽의 장엄한 사건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긴 역사를 되돌아볼 때, 가장 충격적이며 가장 놀라웠던 사건이 바로 이 출애굽의 역사였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킨 기적 중의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이집트, 그곳에서 신으로까지 숭배받던 파라오를 하나님께서는 열 가지 재앙으로 굴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감히 파라오를 무릎 꿇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앞에는 거대한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고, 뒤에서는 막강한 이집트의 군대가 무서운 기세로 추격해 왔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마른 땅같이 건너게 하셨고, 뒤따라오던 이집트 군대는 닫히는 홍해 속에 수장시키셨습니다. 이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초자연적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과 그분께서 행하신 일들이 이토록 완전무결하여 놀라울 수밖에 없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곳에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과거 우리 민족에게 베푸신 놀랍고 위대한 구원의 역사들을 기억하고 깊이 묵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간증입니다. 살아있는 역사적 간증입니다.
연단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단지 위기의 순간에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내시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련하시고 훈련시키시는 분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시 66:10)
하나님께서는 사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연단시키셨습니다. 그들을 철저히 훈련하고 빚으신 후, 마침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셨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 놀라운 이야기를 증거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시 66: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진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신 후, 결국 풍요가 넘치는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 이 거룩한 성전에 좌정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역사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처럼 장엄한 역사적 하나님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시인이 이 거룩한 성전에 발걸음하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거기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진솔하게 고백합니다.
"내가 번제물을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주께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낸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시 66:13-15)
시인은 환난의 시기에 자신의 입술로 하나님께 서원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간절한 서원을 받으시고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셨으며, 놀라운 응답으로 화답해 주셨습니다. 이제 시인은 그 서원을 성실히 갚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그 크신 은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서원을 갚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이 성전에 들어와 보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이 있었고, 시인은 그들을 향해 자신의 생생한 간증을 들려줍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시 66: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 성전에는 나왔으나 입술을 열지 못하고 기도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 여전히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 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을 위하여, 시인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자기 민족의 역사 속에 임하신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전에 충만한 은혜
오늘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일들이 성전에서 풍성하게 일어나야 함을 고백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전이란 과연 어떤 곳입니까?
성전은 연약한 자들이 찾아오는 피난처이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입은 자들이 감사를 드리러 나오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또한 여전히 기도하고 있기는 하나 아직 응답을 받지 못한 자들도 찾아오는 곳이 아닙니까? 내면 깊은 곳의 불안을 누일 곳이 없어서, 이곳에 와서 잠시라도 위로를 받기 위해 발걸음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다양한 영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는 내가 직접 만난 하나님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나는 이러한 깊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는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때 나에게 이처럼 놀랍게 역사하셔서 지금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와 있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고 엎드리십시오. 무릎을 꿇고 간구하십시오. 시간이 흐르면 나처럼 이 자리에 나와서 함께 예배하고 기쁨으로 간증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이야기로 충만한 곳이 바로 성전이며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사람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 이야기가 풍성히 넘쳐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 거룩한 흔적들, 하나님께서 베푸신 놀라운 기적들이 끊임없이 선포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나누는 대화는 세상 사람들의 대화와 분명히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들의 대화는 자기 자랑이 아니며, 자식 자랑도 아니고, 권세와 물질의 자랑도 아닙니다. 혹은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험담이 되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오직 내 인생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나누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믿음이 어린 자가 다시 한번 용기를 얻게 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감히 기도조차 올리지 못하던 자가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억하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출애굽의 장엄한 기적과 광야에서의 정련하심, 그리고 가나안 정복의 놀라운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훈련하시며 마침내 풍요로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이 놀라운 일들을 깊이 기억하며,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개인적 간증으로 연약한 믿음을 격려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환난의 시기에 하나님께 올렸던 서원 기도가 놀랍게 응답받았던 생생한 경험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들에게 진솔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베푸신 구체적인 은혜와 응답의 역사를 기쁨으로 나눔으로써, 연약하고 지친 영혼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산 소망을 전해야 합니다.
셋째는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 이야기로 가득 채웁니다.
성전과 교회는 하나님 이야기가 넘실거리는 거룩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믿음의 간증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 이야기는 성전 안에서뿐만 아니라 성전 밖에서도, 우리의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모든 대화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야기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만나게 될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그리고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걷고 있는 형제자매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믿음의 간증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인이 두려워하는 자들을 설득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 놀라운 간증의 주인공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전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