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8편

성경
시편2권

말씀의 능력

시편 68편

어려운 시험에 단번에 합격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는 합격의 기쁨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낙방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디다가 절치부심한 끝에 마침내 합격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은 단번에 합격한 사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큽니다. 이것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오직 그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각별한 기쁨입니다.

시험뿐만 아니라 인생사 모든 일이 그러합니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으며 꾸준히 정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큰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그러나 중도에 포기하고 낙심하여 그만두어 버리면 그러한 기쁨을 결코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두 번 실패를 경험했을 때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무엇이 지속적으로 걸림돌이 되는지를 면밀히 살피고 제거하며 돌아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성공을 향한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모셔오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다윗이 한 번의 실패를 겪은 후 두 번째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고 그 성공을 하나님께 찬양하는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후에 그가 행한 두 가지 중요한 사업이 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사울에게 쫓기며 무수한 생명의 위기를 넘기고,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 그는 무려 7년 6개월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지파의 왕으로서 그곳을 지혜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그 어떤 인위적인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7년 6개월이 흐른 후,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그를 왕으로 추대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 그가 착수한 첫 번째 과업은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를 정하는 일이었습니다. 헤브론은 지리적으로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수도를 세우고자 고심하던 그는 여부스인이 거주하는 성을 공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기던 가장 견고한 산성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부스인들이 대대로 거주해온 그 성을 단번에 점령했고, 사람들은 그 성을 다윗성이라 불렀습니다. 그 성이 곧 예루살렘입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새로운 도읍으로 삼고 그곳에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모든 정세가 안정되어 갔고, 이제 두려울 것도 염려할 것도 부족한 것도 하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다윗성에 결핍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하나님의 언약궤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만 이곳에 모셔둔다면 모든 것이 완벽할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 마땅한 자리에 없었습니다. 성막은 있었으나 성막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언약궤가 그곳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래전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치를 때 전세가 불리해지자,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장으로 가져간 적이 있었습니다. 전투는 참패로 끝났고 언약궤는 적에게 빼앗겼으며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참하게 패배했고,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때부터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기럇여아림의 한적한 시골 마을, 어느 개인의 집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는 성대하게 준비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연도에 배치하고 정성스럽게 새 수레를 제작했습니다. 그 수레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봉안했고, 수레 옆에는 오랫동안 언약궤를 모셨던 웃사라는 사람을 동행시켰습니다.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이 환호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언약궤를 실은 소가 끄는 수레가 길을 따라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들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언약궤가 격렬하게 흔들렸습니다. 웃사가 궤를 붙잡으려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깊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더 이상 옮길 수 없어 오벧에돔의 집에 임시로 모셔두고, 자신은 다시 왕궁으로 돌아와 깊은 좌절과 번민 속에서 절치부심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이러한 비극이 일어났는지 깊이 성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원래 언약궤를 운반하려면 레위 자손이 어깨에 메고 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윗 자신의 생각과 방식대로 화려한 새 수레를 제작하고 그 수레에 언약궤를 실어 온 것이 실패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말씀에 기록된 원칙을 넘어서서 자신의 판단이 말씀을 대신해 버린 것이 바로 그 비극적 실패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철저한 반성 끝에 다시 두 번째 시도를 감행합니다. 이번에는 온전히 말씀대로 준행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레위 자손이 어깨에 메고 오도록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편은 바로 그날의 벅찬 기쁨을 노래한 찬가입니다. 실패 이후 다시 시도하여 마침내 언약궤를 봉영하는 기쁨과 감격이 이 시편에 생생하게 녹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연기가 불려가듯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불 앞에서 밀이 녹음같이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 68:1-3)

"하나님이 일어나시니"라는 표현은 언약궤가 이동하는 장면을 장엄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여기서 참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단순한 성물이 아닌 곧 하나님 자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궤짝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약궤 안에 봉안되어 있는 것은 십계명이 새겨진 두 돌판이었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두 돌판을 받아 내려온 그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바로 그 말씀이 언약궤 안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다윗이 사용한 "하나님이 일어나시니"라는 표현은 곧 말씀이 움직인다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말씀을 곧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실로 중요하고 깊은 신학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말하지만, 과연 이것을 우리 입술로 진실되게 고백하고 우리 사고로 온전히 받아들이며 우리 심령으로 깊이 신뢰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펼쳐 읽을 때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 한 절 한 절이 곧 하나님 자신이시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연 어떠한 자세와 태도로 받아들여야 마땅하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직접 가시적인 형상으로 우리 면전에 현현하셔서 말씀하신다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불순종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록된 문자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우리는 종종 말씀을 취사선택하는 과오를 범합니다.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달갑지 않은 것은 거부하며, 오직 내 눈에 좋아 보이는 말씀만 취하고 맙니다. 이것은 말씀을 참되게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곧 하나님 자신으로 경외하며 받들었습니다. 그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예루살렘으로 봉영하면서 이 말씀이 주는 심오한 의미를 깊이 깨닫고, 앞으로 자신이 이 왕국을 어떠한 원칙과 정신으로 다스릴 것인지 분명히 결단했습니다.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 68:5)

하나님의 말씀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핵심 진리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연약하고 가난한 자, 의지할 곳 없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권위를 세우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성대하게 모셔왔으니 자신은 하나님께 특별히 선택받은 왕이며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의 모든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본질, 곧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연약하고 작은 자, 불쌍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이스라엘을 섬기며 다스리겠다는 겸손한 결단이었습니다. 왕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당히 손해 되고 불리한 통치 철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왕이란 본래 자기중심적인 권력 행사에 익숙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고 명령하며 가르쳐주는 바를 온전히 따라 순종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백성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고 따를 때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가 바로 이것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신다면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겸손히 받아들이고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혹 우리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거나 불편하고 거북한 말씀이라 할지라도,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면 그대로 실천하고 준행하는 것이 진리를 수호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백성의 마땅한 태도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흡족한 비를 보내사 주의 기업이 곤핍할 때에 주께서 그것을 견고하게 하셨고" (시 68:9)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다윗성에 임재하여 좌정하고 계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기업에 단비가 필요한 때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풍성히 내려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 나라 모든 백성들의 의식주를 비롯한 생존의 문제를 친히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인생의 근본적인 생계 문제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다고 깊이 통찰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대개 생계의 문제가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과 수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면 먹고사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능력이 부족하면 굶주릴 수밖에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가만히 성찰해보면, 참된 믿음의 백성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먹이시고 살리신다는 진리를 고백합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광야 시절에 그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니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내렸지 않습니까? 결국 당신의 백성을 먹이시고 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 살아가면 그 말씀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시 68:35)

하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참된 힘과 능력을 공급하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약궤 속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신실하게 따라가면 그 자체가 바로 우리의 진정한 힘이 되고 능력이 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참된 힘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비롯됩니까?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까? 집안에 재산이 넉넉하면, 물질이 풍족하면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반대로 힘이 없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재산이 소진되고 기력이 쇠퇴하며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입니다. 우리는 그럴 때 모든 힘과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힘과 능력의 궁극적 원천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 심오한 진리를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봉영하면서 감격 속에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중요하고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곧 하나님 자신으로 경외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윗은 언약궤를 단순한 종교적 상징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로 여겼습니다. 그 안에 봉안된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쳐 읽을 때, 그 한 절 한 절을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면전에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 편의대로 취사선택하지 말고, 우리 자신에게 불편하고 거북한 말씀이라 할지라도 순종하며 따르는 것이 참된 믿음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온전히 책임지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말씀이 백성의 생계 문제를, 힘과 능력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주신다고 확신에 찬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물질과 건강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참되게 살게 합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때를 따라 채워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셋째는 실패를 경험한 후에도 다시 말씀으로 겸손히 돌아가야 합니다. 다윗은 첫 번째 시도에서 비극적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방법대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깊은 좌절 속에서 절치부심하며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고, 두 번째는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우리의 실패는 말씀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고, 우리의 진정한 성공은 말씀으로 겸손히 돌아갈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한 번의 실패나 좌절로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말씀으로 겸손히 돌아가 다시 용기 있게 시도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번의 아픈 실패를 겪은 후 다시 시도하여 마침내 그 거룩한 말씀을 봉영한 다윗의 감격스러운 고백이 오늘 우리 모두의 진실된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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