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능력
시편 6편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없이 많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관계 가운데 가장 신비롭고 가장 놀라운 것이 바로 결혼입니다. 결혼 관계는 사람이 맺고 살아가는 관계 가운데 가장 특별합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계가 몇 걸음 더 나아가서 평생 동안 한 집에서 살며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는 것, 그렇게 결단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결혼을 제외한 모든 후천적인 관계는 모두가 선택적이며 일시적입니다. 친구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적이지 않습니까? 이 친구와 평생을 함께할지 말지, 중간에 중단할지 혹은 필요할 때만 만날지, 그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는 선택적인 관계입니다. 직장에서 만나는 관계도 일시적입니다. 내가 그 직장에 몸담고 있을 동안 그 관계가 유효합니다. 그 이후에는 선택적입니다. 그런데 결혼은 일시적이지도 선택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결혼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믿음과 신뢰가 필요합니다. 한 번도 이 사람과 평생을 살아본 적이 없고 내가 지금 처음으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결단하는 것이지만, 미래가 곧 현재가 될 것이라는 그러한 아름다운 결단과 신뢰가 결혼을 결혼답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살아보지 않은 미래가 지금 내가 행복한 이 현재처럼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라는 이 믿음이 결혼을 유지하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의 본질
결혼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믿음이 중요한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눈으로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귀로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직접 계시를 받아본 자는 매우 드물고 소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은 불확실한 현재, 그러나 더욱 불확실한 미래에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존재에 내 인생을 온전히 던지고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한다면 현재도 앞으로도 미래도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 믿음을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다윗의 시편은 참으로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노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오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시 6:1-2)
어떠한 상황인 것 같습니까? 그가 수척했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뼈가 떨린다고 했습니다. 나를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힘든 것 같지 않습니까? 다윗의 몸이 지금 매우 아픈 상황입니다. 몸이 몹시 아픕니다.
그런데 1절을 보면 주의 분노, 주의 진노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 몸이 아픈 것과 하나님의 분노와 하나님의 진노가 연결된다면, 그렇다면 다윗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내가 몸이 병들어서 아픈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분노와 진노를 내뿜고 계시는 것이라고 다윗은 지금 이렇게 생각합니다.
육체와 영혼의 고통
욥이 당한 고난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의 순서를 보면 하나님은 우선 재산을 앗아가셨습니다. 자녀들을 데려가셨습니다. 그 다음 그에게 육체적 고난을 주셨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종기가 났습니다. 질그릇을 깨뜨려 질그릇 조각으로 온몸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긁어도 그래도 가려움은 멈추지를 않습니다. 몸에 진물이 나고 피가 흐르며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이 욥의 모습을 보고 한심해서 한동안 말을 이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여러 가지 고통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내 몸이 아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냥 아픈 것이 아니라 주의 분노와 진노로 내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어렵고 마음이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고난과 다윗이 당하는 이 고통이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욥은 하나님께 그러한 징계를 받을 만한 죄를 범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큰 죄를 범했습니다. 밧세바 사건입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에 이 시를 지은 것이라면 다윗은 지금 심각한 상황입니다. 뼈가 떨리고 내 몸이 짓눌리는 고통을 당하는 이 어려운 육체의 환란이 내가 저지른 이 죄 때문이라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큰 죄 때문이라면 그의 죄책감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이것은 육체적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반드시 영혼의 떨림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나의 영혼도 매우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 6:3)
영혼이 떨리는 것은 어쩌면 정해진 순서입니다. 죄 때문에 육체가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받는 동안에 그의 영혼이 온전할 리가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영혼이 떨린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용어로 옮기면 불안 아닙니까? 내가 언제 미치광이가 될 수 있을까? 바로 그러한 불안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봤습니다. 사울이 바로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았습니까? 사울이 정신이 나가고 그에게 악령이 힘 있게 내린 이후에 그가 어떠한 짓을 하는지 다윗이 그 곁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위해서 악기를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악령이 떠났습니다. 그 이후에 사울은 지속적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손에 든 창을 던지며 그를 죽이려고 하고 부하들을 시켜서 그를 잡아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을 죽음에서 구원하고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주면 멀리서 다윗을 보고 사울은 또 울며 미안하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미치광이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다윗은 곁에서 봤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내 육체가 고통받는 것을 지나서 내 영혼이 떨리고 결국 나도 사울처럼 되는 것은 아닌가? 이 불안이 그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절박한 기도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밧세바 사건이라는 큰 죄를 저질렀고 육체도 영혼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경험이 없습니까? 하나님 앞에 살면서 내가 하나님께 큰 죄를 저질렀는데 사람들도 모르고 누구도 모르는, 나만이 아는 하나님만 아시는 은밀한 죄 가운데 살고 있는데 몸이 아픕니다. 그러면 영혼이 불안해지지 않겠습니까?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그 불안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의 영혼의 피폐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이렇게 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 6:6)
밤마다 기도했다는 말 아닙니까? 다윗의 말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과장처럼 들립니다. 눈물로 침상을 어떻게 띄우냐고, 거짓말도 작정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그가 절실하고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밤마다 울면서 자기 요를 적시고, 너무 많이 울어서 그 눈물을 다 모으면 그의 침상을 띄울 정도로 다윗이 회개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훌륭한 점이 너무나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훌륭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하는 것, 이것이 다윗에게는 가장 훌륭한 점입니다. 사실 사람이 이 정도가 되면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우리를 끊임없이 참소합니다. 사탄이 참소하는 것은 실로 집요합니다.
"너 따위가 어떻게 기도하느냐?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받지 않으실 것이다. 네가 지은 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한데? 간음죄도 저지르고 살인죄도 저지르고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한 죄도 저지르고, 십계명 중에 한순간에 세 가지나 범했는데 하나님이 너의 기도를 받으시겠느냐?"
사탄이 이처럼 참소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매일 밤마다 기도합니다. 눈물로 요를 적시고 그 눈물이 모여서 침상을 띄울 정도로 그는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훌륭한 것 아닙니까?
시편 3편을 보면 압살롬을 피할 때 다윗이 지은 시가 나옵니다. 아들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쫓겨나면서도 그래도 그는 기도했습니다. 고개 들 수 없을 정도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창세기를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데, 창세기에서 야곱이 잠잠하였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디나 강간 사건을 당한 후에 그는 하나님께 염치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습니다. 벧엘에 올라가지 않아서 나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그 이후에 그는 하나님께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엎드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리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기도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나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욱 원천적인 관계 아닙니까?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는데 창조주께 기도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어떠한 상황이라도 하나님께는 염치불구하고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다윗의 참으로 훌륭한 점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확신
"악을 행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울음 소리를 들으셨도다" (시 6:8)
악을 행하는 너희가 누구겠습니까? 다윗이 지금 이러한 육체적 환란과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질하는 자들 아니겠습니까? "네가 지은 죄 때문에 너 지금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다윗은 기도했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이 생기면 사람이 달라지는데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자신감을 가지며, 그 후에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습니까? 몸이 나았다는 표현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 자고 일어나니 이제는 아프지 않습니다. 내 뼈마디가 쑤시지 않습니다. 이제는 내가 건강해졌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달라질 것이라는 이 믿음이 현재로 들어오고 나니 그러니 내게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현재는 달라지지 않는데 미래에 대한 확신을 현재로 가져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거기서 다윗은 또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으며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내 모든 원수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떨며 갑자기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시 6:9-10)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시고 내 기도를 받으셨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위력임을 매 순간 실감할 것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하나님이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진정한 능력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고, 혹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확실한 미래를 현재의 불안한 상황으로 가져오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얻게 하는 것이 기도의 능력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오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면 기도를 통해 미래의 하나님의 능력을 오늘 현재로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이라는 큰 죄를 범하고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극심한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탄이 집요하게 참소하며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지 않으실 것이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밤마다 눈물로 요를 적실 정도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욱 원천적인 관계입니다. 창조주께 기도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어떠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염치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둘째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생기고 확신을 얻게 됩니다. 다윗은 간절히 기도한 후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생기자 고개를 들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믿음은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능력이 있습니다. 달라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현재로 들어왔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긴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기도의 위력임을 매 순간 실감합니다.
셋째는 기도의 진정한 능력은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하나님이 바꿔주시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진정한 능력은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확실한 미래를 현재의 불안한 상황으로 가져오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을 얻게 하는 것이야말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오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면 기도를 통해 미래의 하나님의 능력을 오늘 현재로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항상 불안하며 걱정과 염려로 가득합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불안하고 육체도 아프며 영혼도 떨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놀라운 미래를 오늘 이 불안한 현재로 가져오며, 이 불안한 현재를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염려하지 말라는 그 놀라운 은혜를 함께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