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의 갈망
시편 70편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우리의 몸을 빚으신 후 그 위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창조는 흙으로 빚어진 육체와 하나님의 생기가 결합된 것이기에, 우리는 육체로만 살 수 없으며 육체와 영혼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존재입니다. 참된 행복과 만족을 누리려면 육체의 충족과 더불어 영혼이 그 주인을 만나 평안을 얻어야 하며, 이 두 차원이 온전히 채워질 때 비로소 전인적인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육체만 채워진다고 해서 과연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어리석고 미련한 이들은 육체의 충족이 곧 완전한 행복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환상일 따름입니다. 육체가 아무리 풍족하게 채워진다 하더라도 영혼이 영원히 그 주인을 만나지 못한다면, 내 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호흡을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영원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철학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육체는 넉넉히 채워졌으나 영의 만족을 얻지 못해, 그 영혼이 어떻게든 채움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헤매며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했습니다. 책을 탐독하고 자연을 탐구하며 학문에 몰두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적 만족일 뿐 영혼의 참된 채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하고 수많은 책을 읽으며 세상을 탐구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충만함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참된 기쁨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난을 당하거나 인생에 어려움을 겪을 때는 육체만 고통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내 영이 하나님으로 충만하다면, 비록 육체적으로 조금 배고프고 힘겹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이 세상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은 육체와 영혼, 이 두 차원이 모두 고통받을 때입니다. 그때는 참으로 견딜 수 없이 괴롭습니다.
긴급한 구원 간구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시 70:1)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시편의 저자 다윗이 바로 육체와 영혼이 함께 고통받고 있음을 절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속히 나를 도와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보면, 그는 지금 매우 다급한 상황에 처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온갖 힘든 상황 가운데서 속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셔야만 평안을 되찾을 수 있기에, "속히"라는 표현을 거듭 쓸 정도로 그는 극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시 70:2)
"나의 영혼을 찾는 자",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라는 이 두 표현을 살펴보면, 그가 영혼의 고통과 육체의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는 곧 그의 육체적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며, "나의 영혼을 찾는 자"는 영적 위기를 나타냅니다. 한 가지 고난만으로도 우리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다윗은 육체와 영혼이 모두 극심한 고통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께 속히 자신을 도와달라고, 어서 이 육체와 영혼의 이중 고통에서 자신을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훈련
다윗의 이러한 고백처럼 "속히 나를 도와달라"고 간구하는 기도가 과연 즉시 응답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기도가 끝나는 순간 그를 육체와 영혼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셨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십수 년을 광야에서 떠돌 때, 그는 육체적으로 극도로 피폐해졌습니다. 그런데 영혼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 있다면 그 고난도 견딜 만하고 이겨낼 만합니다.
때로는 영혼이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서 영적 만족을 누리면서, 시편 23편 같은 매우 아름다운 찬양의 시를 지어 하나님께 올려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이 어두워지고 힘겨워질 때는 자신이 지켜야 할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가는 것처럼 흔들리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의 광야 시절 가운데 가장 큰 위기의 시간은 사무엘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왕으로 세우겠다고 확증했던 인물이 아닙니까?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께서 너를 왕으로 세우신다고 선포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의 영향력은 실로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대단했습니다.
사울이 지금 자신을 쫓아다니며 죽이려 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이 고난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자신이 다시 복권되고 왕궁으로 돌아갈 때,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다고 했던 사무엘이 살아 있기만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다윗이 품고 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광야에서 그가 들었던 비통한 소식은 바로 사무엘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는 아마도 이렇게 절규했을 것입니다.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구나. 이제 누구도 내 편이 없구나. 나를 도와주고 내 곁에 서서 나를 인도해 줄 이가 없구나." 그때 그는 영혼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극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하나님 앞에 "속히 건져달라", "속히 구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육체의 고난, 정신적 어려움, 내 영혼의 피폐함을 하나님께 아뢰며 간구합니다. 기도대로 속히 하나님께서 육체의 고난도 해결해 주시고 영의 어려움도 해결해 주신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고난의 시간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윗은 적어도 사울을 피해 떠돌았던 시간이 십오육 년은 족히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자기 지파에서 왕으로 칠 년 육 개월을 또 보내야만 했습니다. 무려 이십여 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처럼 우리의 기도 제목을 오래도록 지연시키시는가? 그것은 기다림 자체가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참고 인내하며 잘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은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성급했던 자들, 기다리지 못했던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지 못했고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이 아들 하나를 얻을 때까지 이십오 년을 기다려야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어떤 기다림 가운데 놓여 있습니까? 기다림 가운데 우리 육체는 쇠잔해지고, 내 영혼은 갈수록 피폐해짐을 느낄 때, 다윗의 기다림을 깊이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기다림 끝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더 큰 관점에서 보면 종말을 기다리는 자들이 아닙니까? 믿음의 백성들에게 종말은 최후 승리의 시간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종말은 심판의 시간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사는 자들에게 종말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영광의 날인 동시에, 우리가 이 땅을 떠나 하나님의 백성, 천국의 백성으로 올라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다림이 천국을 준비하는 귀한 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을 하루하루 신실하게 채워가서, 언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도 그 부르심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를, 그 부르심이 우리에게는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잘 참고 견디며 기다리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깊이 기대하시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공동체의 책임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4)
"주를 찾는 모든 자들", "주를 즐거워하는 모든 자들"이 결국 마지막에는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자신과 함께한 용사들 때문입니다. 다윗 한 사람을 믿고 의지하여 아둘람 굴로 나온 억울한 자, 원통한 자, 마음이 상한 자들이 사백 명이나 있었지 않습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의 수는 육백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윗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들입니다.
다윗이 신실하게 믿음 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고, 그가 사울에게 쫓겨 다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한 분만 찾는 것을 보고, 그들도 다윗을 통해서 소망을 품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항상 그들 앞에서 믿음의 본을 보이기를, 그들 앞에서 믿음의 모범을 나타내는 자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서 무너지면 주를 찾는 자들, 주의 즐거움을 기뻐하는 자들, 이들도 함께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어찌하든지 여기서 견고하게 잘 버티고 견뎌서, 결국 마지막에 이들도 함께 웃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그렇게 간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윗의 이 기도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내가 무너지면 나 혼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쓰러지면 우리 가정에서 나를 보고 믿음 생활하는 우리 자녀들이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내가 쓰러지고 무너지며 실족하고 기다림을 포기해버린다면, 나를 믿고 따라오는 우리 믿음의 성도들 수십 명이 함께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항상 리더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기다림 가운데 포기하도록, 쓰러지도록, 이제는 하나님이 없다고 원망하도록, 그래서 그들이 죄짓고 쓰러져 무너지도록 만듭니다. 믿음의 모범을 가진 자, 다윗을 공격하면 다윗을 따르는 육백 명이 함께 실족하지 않겠습니까? 다윗 왕을 공격하면 다윗 왕을 따르는 모든 백성들이 함께 쓰러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책임감을 깊이 가져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나를 보고 있거나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수십 명, 수백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책임감을 가지고 오늘도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갈망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 70:5)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다윗이 쫓겨 다니면서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표현대로 하면 "마음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는 선언입니다.
내 영이 항상 가난하고 궁핍하여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면, 그러한 자는 복 있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가난한 심령에 말씀을 부어주시고, 그 가난한 심령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오늘 우리가 무엇으로 가난하고 궁핍한지를 깊이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항상 돈이 없다고, 물질이 없다고 하나님께 그것만 달라고 애타게 구하지 마시고, 내 영혼의 갈망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러한 인생이 참되고 복된 인생일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와 영혼이 함께 충만해야 참된 행복을 누립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우리 몸을 빚으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만 채워진다고 행복할 수 없으며, 영혼이 그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때 비로소 전인적인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육체의 풍족함만으로는 결코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없으며, 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분으로 충만할 때 참된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둘째는 기다림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입니다. 다윗이 "속히 나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를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잘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잘 기다린 사람은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성급했던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종말을 기다리는 자들로서 이 기다림의 시간을 천국을 준비하는 귀한 시간들로 신실하게 채워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내가 믿음을 지키면 나를 따르는 많은 이들도 함께 살아남습니다. 다윗은 자신과 함께한 육백 명의 용사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무너지면 그들도 함께 무너진다는 책임감을 가졌습니다. 우리도 내가 쓰러지면 나를 보고 믿음 생활하는 우리 가족들과 성도들이 함께 무너진다는 것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임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영혼이 가난하고 궁핍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채워지기를 갈망하는 복된 인생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