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2편

성경
시편2권

국정운영 철학

시편 72편

어떠한 분야에서든 성공을 거두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향해 매진하는 사람 중에 열정이 없는 이가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식당을 경영하든, 개인 사업을 펼치든, 운동에 매진하든 열정을 품고 나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필수 요소이며, 성공을 갈망하는 이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방법이요 방향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열정만으로는, 혹은 개인이 지닌 재능만으로는 진정한 성공을 성취하기가 극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성공을 이루어낸 이들을 더욱 면밀히 관찰해 보면, 그들에게는 일을 수행해야 하는 명확한 목적과 이유, 그리고 방향이 확고히 정립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철학이 있습니다. 왜 이 열정을 쏟아붓고 이토록 수고스럽게 일해야 하는지, 그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충분히 납득할 만하게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자신이 이 일을 감당하는 이유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당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철학이라 부릅니다. 철학이 담기지 않은 노력, 명확한 방향이 부재한 수고는 결국 중간에 길을 잃고 표류하거나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이 감당하는 일이든 공동체가 추진하는 사업이든, 크고 작은 모든 일의 지도자들은 반드시 철학을 지니고 일해야 합니다. 작은 개인 사업을 하는 이에게도 사훈이 있거늘, 하물며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 명확한 국정철학이 없다면 그 나라는 필연적으로 방향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진리입니다.

아버지의 기도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본 본문은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 솔로몬 왕의 시편입니다. 그가 어떠한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할 것인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결단한 통치 철학을 담아 이 시편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시편의 표제는 솔로몬의 시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20절의 기록입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시 72:20)

표제는 분명 솔로몬의 시라 하였는데, 마지막 절에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솔로몬의 시인지, 아니면 그의 아버지 다윗의 기도 시편인지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것이 명백히 솔로몬의 시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솔로몬이 자신의 아버지 다윗이 평생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을 그대로 담아낸 것입니다. "내 아들이 나의 뒤를 이어 이 나라를 통치하는 왕이 될 터인데, 하나님, 이 아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되려면 이러한 덕목들을 갖추게 하소서"라고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평생 간구했던 기도의 내용을, 아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결단으로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솔로몬의 기도이면서 동시에 그의 부친 다윗이 아들을 향해 드렸던 간절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시 72:1)

다윗은 평생 아들을 위해 이와 같이 기도해 왔습니다. 주의 판단력과 주의 공의를 내려 주시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실로 이 기도는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왕은 최종 결정권을 지닌 자가 아니겠습니까? 왕이 일단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것을 되돌릴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결정은 더없이 신중해야 합니다. 전쟁을 감행할 것인가 화평을 추구할 것인가, 어느 국가와 무역 관계를 맺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자신의 백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다스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 그것이 바로 왕의 위치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의 무게가 실로 막중한 것입니다.

왕의 지위에 있지 않을 때, 왕 아래에서 섬길 때는 현명한 조언만 올려드리면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렇게 결정하시면 이러한 유익과 문제점이 있습니다"라고 의견을 개진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그 결정에 대한 최종 책임은 오직 왕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왕이 자신의 판단력만으로 결정을 내린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인간의 제한된 지혜로 판단한다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거기에는 언제나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부작용을 너무나 뼈저리게 경험했기에, 자신의 아들 솔로몬만큼은 주의 판단력으로 결정하게 해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모든 일을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결정하게 해달라고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두 번째는 주의 공의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 다른 기준으로 백성을 재판하고 다스린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배제한다면, 결국 왕 자신의 공의로 재판하고 통치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의 주관적 공의로 재판하고 다스린다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됩니다. 왕의 기분이 상쾌할 때와 왕의 심기가 불편할 때에 따라 법의 잣대가 흔들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감정 상태와 무관하게 하나님의 공의로 재판하고 판단한다면, 백성들은 일관된 법의 적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것을 국정 운영의 핵심 철학으로 삼으라고 가르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기도와 삶

솔로몬 역시 이 가르침을 귀가 닳도록 들어왔기에, 자신의 부친 다윗을 기억하면서 "저 또한 이 나라를 다스릴 때 주의 판단력으로, 주의 공의로 통치하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주의 판단력과 주의 공의를 얻기 위해 가장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기도하지 않는 이는 언제나 자신의 판단에 의거하여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이는 최종 결정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평생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전쟁터로 나아갈 때조차 전쟁 여부를 먼저 여쭙고, 만약 전쟁해야 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임해야 할지 항상 최종 판단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다윗의 그 간절한 기도대로 솔로몬은 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가 내린 판단들을 돌아보면 안타까움이 깊어집니다. 솔로몬의 판단은 실로 어리석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지혜가 세상 어느 왕보다 탁월하고 놀라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바로의 공주를 위해 성을 하나 지었고, 그곳에 이집트의 제사장들을 불러들였습니다. 전쟁을 회피하고자 주변 강대국들의 공주들을 차례로 데려와 정략결혼을 일삼았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의 통치 아래 나라는 영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 자신이 타락의 진원지요 주범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의 판단은 주의 판단력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통해 깨달아야 할 교훈이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비록 이처럼 아름답게 기도했을지라도, "하나님, 주의 판단력을 주소서. 주의 공의를 허락하소서"라고 입술을 열어 간구했을지라도, 그렇게 살아내지 않으면 모든 기도는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허공으로 흩어지고 땅에 떨어지는 이유는, 삶이 기도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무릎 꿇고, 매 순간 하나님을 찾으며,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기도를 부탁하면서도 삶이 변화되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삶이 기도의 내용대로 살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기도가 곧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언제나 마음에 깊이 새기고 엄숙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솔로몬이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소서"라고 간구했다면, 실제로 모든 판단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렸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도록 모든 것을 위탁했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하루를 살아가고 일생을 영위하면서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이 놓여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생각대로만 판단한다면 번번이 실패와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판단에는 언제나 허점과 오류가 뒤따릅니다. 그 오류는 불화를 낳고, 분쟁을 야기하며, 깊은 후회를 남깁니다. 하나님의 판단력으로 결정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반드시 그렇게 살아내야 합니다. 오늘 온종일 하늘 아버지의 판단이 우리의 판단이 되고, 우리가 모든 결정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하는 거룩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공의와 정의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시 72:2)

왕이 감당해야 할 중대한 책임 중 하나가 바로 백성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백성을 통치함에 있어 최후의 판단과 재판을 내리는 것은 왕의 고유한 권한이자 의무였습니다. 수많은 결정과 백성에 대한 재판, 그 모든 것에 공의가 요구되고 정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가난하고 힘없는 자라는 이유로 왕이 임의로 재판하고, 권세와 재물을 지닌 자라는 이유로 그를 편파적으로 봐주고 묵인한다면, 그것을 어찌 하나님의 공의요 하나님의 정의라 칭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다윗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정의가 최우선이 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에게 가르쳤고, 솔로몬 또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기도가 실제 삶으로 구현되지 않는다면, 이 기도 역시 헛되고 헛될 따름입니다.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시 72:18-19)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기도를 온전히 계승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을 결단합니다. 왕은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백성들은 왕의 이름을 찬송하기 마련입니다. 왕이 모든 영광을 누리기를 바라고, 왕 앞에서 아첨하는 자들 또한 왕을 치켜세웁니다. 그러나 핵심은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려라. 다윗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솔로몬 역시 부친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렇게 결단하고 기도합니다.

오늘 이 솔로몬의 기도가 우리에게 공허한 메아리로 들려오는 까닭은, 솔로몬의 실제 삶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윗의 기도가 진정성 있게 가슴에 와 닿는 이유 또한, 그의 삶을 우리가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의 삶이 기도의 내용 한 줄 한 줄을 온전히 구현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심오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판단력으로 모든 결정을 내리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방향과 궁극적 목표가 주님의 판단력과 주님의 공의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우리 가정의 중대한 결정들을 내 힘으로 내려야 한다고 여기며 살아온 과거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판단하든지 그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온전히 위탁해야 합니다. 최종 결정을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바라며,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기도로 구해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가 우리의 실제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또한 솔로몬처럼 입술을 열어 아름다운 기도를 올릴 수는 있으나, 솔로몬처럼 기도와 삶이 분리된 이중적 신앙을 살아왔음을 겸허히 고백해야 합니다. 어떠한 일이든지, 무슨 상황이든지 기도가 우리의 매 순간을 인도하는 삶의 나침반이 되어야 합니다. 늘 실천하며 살아가고, 오늘 이 거룩한 자리에서 드린 기도를 우리의 실제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단이 공허한 결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경계하며, 그 결단이 반드시 행동으로 결실을 맺어야 합니다.

셋째는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높임을 받을 때나 낮아질 때나, 성공의 정상에 설 때나 실패의 골짜기를 지날 때나, 언제 어디서나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토록 찬송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하루 온종일 이러한 은혜 가운데 거하여, 가장 복된 시간, 가장 아름다운 날을 보내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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