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4편

성경
시편3권

하나님은 나의 왕

시편 74편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흔히 이 말은 제때에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부랴부랴 수습하는 자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질책하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를 잃고 난 후에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실로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면, 문제를 수습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일한 문제에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반복하여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으나, 미련하고 연약한 인생에게 그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나 사고가 터지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도 이를 해결하지 않고, 어디에서부터 이런 문제가 비롯되었는지를 살피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소를 잃고 나서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우리 인생에 반드시 필요한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은 참으로 큰 재난을 겪은 후에 이 민족을 위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로의 절망

시편 74편의 저자는 아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삽의 마스길', 곧 '아삽의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아삽은 다윗 왕이 세운 세 명의 성가대 지휘자 중 한 사람으로, 헤만, 여두둔과 함께 성전 찬양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것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는 아삽의 후손 중 바벨론 포로기를 경험하고 있는 누군가가 자기 조상 아삽의 이름을 빌려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인이 겪고 있는 상황이 이렇게 묘사됩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시 74:1)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십니까? 진노의 연기를 뿜으십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멸망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버리신 것 같은 불안감, 지금도 여전히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는 것 같은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시 74:2)

시온 산은 예루살렘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는 장엄한 성전이 있었고, 아름다운 궁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은 그 시온 산을 그리워할 만큼, 예루살렘의 성전과 궁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만큼,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포로로 잡혀 와 있는 비참한 상황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시 74:3)

성소, 성전은 영구히 파멸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기원전 586년 남유다를 침공할 때, 그들은 성전을 완전히 불태워 버렸습니다. 성전의 흔적을 없애버렸고, 성전에 있던 모든 은금 패물과 기명들을 약탈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갔으며, 대부분의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성전 파멸의 원인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의 성전이 이렇게 파멸되었습니까? 북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며 하나님의 성전이 완벽하게 파괴된 까닭은, 그들이 성전 자체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건물로서의 성전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렸습니다. '우리가 성전에 거하면 안전할 것이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들의 신앙이 문제였는데, 그들은 성전을 깨끗하고 화려하게 단장하며 그곳에서 종교 행위만 하고 있었을 뿐, 진정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전부터 말씀하시고 외치시며, 고치라 하시고 돌이키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싸우고 다투고 갈등하며 분열되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친바벨론파와 친애굽파로 나뉘어 정쟁을 벌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으며, 성전은 종교 지도자들의 배를 불리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더 이상 성전에 미련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타락하니 건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고 그들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치 도끼를 들어 삼림을 베는 사람 같으니이다 이제 그들이 도끼와 철퇴로 성소의 모든 조각품을 쳐서 부수고 주의 성소를 불사르며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 (시 74:5-7)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을 어떻게 유린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참으로 처참한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명을 받아 준비하고 솔로몬이 아름답게 건축했던 위대한 성전이 이렇게 무너지고, 이렇게 나라가 망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택하셨고, 그 후손을 통해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이 민족이 이런 식으로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근본 원인은 하나님 신앙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침묵의 시대

시인이 더욱 절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표적은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더 이상 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 하나님이여 대적이 언제까지 비방하겠으며 원수가 주의 이름을 영원히 능욕하리이까" (시 74:9-10)

표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선지자도 더 이상 없습니다. 앞으로 이 포로 생활이 얼마나 지속되어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까? 그것도 위대한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 예레미야가 예언했고, 그전에는 이사야가 예언했으며, 하박국도 예언했습니다. 수많은 선지자들이 말씀을 가지고 나와서 돌이키라고, 고치라고 간곡히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지자도 없고, 표적도 없으며, 오직 침묵과 절망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고 말씀을 주시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어서 매일같이 주어지는 말씀을 당연하게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시절, 공산주의가 이 땅을 뒤덮었던 시절,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시절에는 말씀을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는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든지 읽고 묵상하며, 듣고 신앙생활 하고, 예배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기를 하나님의 은혜의 때로 알고 잘 지키며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절망적인 시기가 도래했을 때, 제대로 믿음 생활을 하지 않아 하나님께서 과거 성전을 영구히 파멸된 곳으로 만들어 버리셨던 것처럼, 이런 일이 다시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그때의 절망은 이 시인의 절망보다 더 깊을 것입니다.

희망의 고백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한 가지 희망을 붙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시 74:12)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 이 고백이 바로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희망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고백입니다. 과거 남유다가 망할 때, 성전이 불탈 때, 그들의 왕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왕으로 삼고 붙잡았던 것은 권력이었고 물질이었습니다. 물질을 왕으로 삼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친애굽파와 친바벨론파가 다투고 싸울 때, 그들의 왕은 권력이었고, 이 권력을 붙잡으면 물질이 따라온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기에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름 모를 아삽의 후손 한 사람이 하나님을 왕이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왕이라고 고백하는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어 공동체를 이루고, 다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이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 포로 70년이 지난 후 하나님은 이들을 다시 회복시켜 귀환하게 하셨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우리 믿음에서는 하나님을 다시 왕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의 회복은 다시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섬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는 물질이나 권력을 왕으로 삼을 때 우리 인생은 망합니다.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대신 물질과 권력을 왕으로 섬겼을 때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우리도 물질을 왕으로 모시고 사람을 왕으로 따를 때 믿음의 인생은 무너지게 됩니다.

셋째는 지금 이 은혜의 시기를 소중히 여기고 붙잡아야 합니다. 말씀이 풍성하고 예배할 자유가 있는 지금 이때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표적도 없고 선지자도 없는 침묵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그 절망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지으시고 지금도 이끄시는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며 섬기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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