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의 죄와 겸손
시편 75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 곳곳에서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합니다. 서로 간의 이익과 생각이 충돌하기 때문에 갈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상호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서로 간에 이해관계만 조율된다면, 갈등 당사자들이 각자 한 발씩 양보함으로써 갈등은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격렬히 대립할 때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양보와 이해가 극히 어려워집니다. 막대한 이익이 걸린 문제라든가 자존심이 극한까지 치달은 문제의 경우, 서로 한 발씩 물러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경우 양측은 법정으로 향합니다. 재판관 앞에서 각자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킨 후 법의 판단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법의 판단을 받는 지경까지 가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측 모두 심신이 피폐해지고 지쳐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급적 법원에 가기 전에 서로 이해하고 해결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섰다면, 문제 조정이 종결된 후에는 법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하지 못했기에 법의 판단을 구했다면, 최종 판결 앞에서는 겸허히 그 결과를 수용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법의 판단을 바라보면서, 그보다 훨씬 더 두렵고 떨리며 엄위하신 하나님의 재판을 떠올려야 합니다. 마지막 종말의 날에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판단하시는 그 심판의 날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한 자에 대한 경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판단하시고 재판하시는지,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누구를 가장 엄중하게 심판하시는지를 오늘 본문이 명확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 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 하였노니" (시 75:4)
시인은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오만한 자들에게 오만하게 행하지 말라고 선언하며, 악인들에게 뿔을 들지 말라고 엄히 경계합니다.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지어다" (시 75:5)
이 구절에서 그 의미가 한층 명료해집니다. 오만한 자는 곧 교만한 자입니다. 교만한 자들이여,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주목할 만한 점은 성경이 이 교만한 자를 악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악인이란 사람을 해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재물을 강탈하거나 사회적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입니다. 물론 교만한 자도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나, 통상적인 악인의 개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악인의 본질을 교만한 자라고 분명히 정의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이 세상의 모든 악의 시작이 바로 교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최초 인류의 범죄를 상기해 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 뱀이 여자에게 다가와 유혹했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여자는 이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유혹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이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교만의 죄가 아닙니까?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습니까? 인간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이신데, 어찌 사람이 하나님과 동등해질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본질상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최초의 죄가 바로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악의 근원을 교만이라고 규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악의 뿌리, 모든 악의 근원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 인간의 교만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수많은 세상의 부조리와 악들을 살펴보면, 전부 인간의 교만과 그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멈추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그 한계 앞에 서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기에 죄가 되고 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 악인의 뿌리라고 표현되는 것은 바로 교만의 죄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 75:7)
재판장이신 하나님이라고 분명히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재판 앞에, 재판관이신 하나님의 법정 앞에는 교만한 상태로 나아가서는 결단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재판은 언제 일어납니까? 주기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재판—인간을 다루시고 판단하시며, 때로는 책망하시고, 때로는 하나님의 손으로 회초리질하시는 그 재판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 내내 계속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재판을 받아 책망당하고 징계받으며, 하나님의 막대기와 채찍으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정녕 두려운 것은 최후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다가, 교만한 상태 그대로 방치해 두시다가, 마지막 종말의 날에 재판하신다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돌이킬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그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최후 심판에서 영원한 불못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지옥행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하나님의 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최후 심판대 앞에 서기 전에 우리는 인간의 교만을 꺾어야 합니다. 인간의 교만을 꺾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우리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는 것입니다. 매 순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먼저 창조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으로 빚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흙입니다. 흙은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멀쩡하게 뛰어다니고 걸어 다니며, 경제활동을 하고 돈도 벌고 사회적 지위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영원하겠습니까? 불과 몇십 년 후면 우리는 모두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그토록 교만하게 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변 사람들을 아끼며 사랑하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호흡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호흡은 인간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내가 숨 쉬는 것, 이 숨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호흡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면 지금이라도 당장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숨을 쉬는 것, 이것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숨 쉬라 하시니 숨 쉬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호흡을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저 흙으로 빚어진 찰흙 인형, 흙덩이에 불과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숨 쉬면서도 우리 호흡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교만할 수 없습니다. 몸뚱아리도 흙이요, 호흡도 내 것이 아닌데, 그 이외의 것 중에 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시고, 절대로 교만하지 말며, 하나님의 법정에 서는 일 자체가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야곱의 하나님
"나는 야곱의 하나님을 영원히 선포하며 찬양하며 또 악인들의 뿔을 다 베고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로다" (시 75:9-10)
시인은 야곱의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왜 야곱의 하나님일까요?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삭의 아들 중에 에서와 야곱 둘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에서가 장자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의 삶은 교만했습니다. 장자권이 천부적으로 자기 것인 줄 착각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믿음 생활을 뜨겁게 하지 않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냥이나 다니고 아버지가 고기를 좋아하시니 아버지께 고기를 갖다 드리면 장자권은 자연히 자기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자의 명분도 경홀히 여겼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그것을 팔아버린 경솔하고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장자권을 가질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면 그는 장자권의 계승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즉 악인의 뿔을 베어 버리시고—겸손한 자, 의인의 뿔을 높이 드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도 가만히 돌아보면 본래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직분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는 정녕 죄 많은 존재였습니다. 야곱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는 구원받고, 직분도 받고, 생업도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합니다. 우리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뱀이 하와를 찾아와서 "너희가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한 것처럼, 주변 사람들과 환경이 자꾸만 우리를 부추겨 세우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정에 서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우리는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이 모든 악의 뿌리임을 인식합니다. 최초의 죄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에서 비롯되었듯이, 세상의 모든 악은 인간의 교만과 그 뿌리를 함께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이 바로 이 교만의 죄입니다.
둘째는 우리의 본질을 늘 기억합니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존재이며, 숨 쉬는 것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몸도 흙이요 호흡도 내 것이 아니니,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깨달을 때 교만할 수 없게 됩니다.
셋째는 야곱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합니다. 우리는 본래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였으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는 분이십니다.
흙덩이에 불과한 우리를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게 하시고 숨 쉬게 하셨음을 기억하고 깨달아, 오늘 하루 악인의 뿔을 베어 버리시고 의인의 뿔을 높이 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위에서 살아가며, 교만의 싹을 제거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