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기억
시편 77편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과거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사진을 찍고 인화하여 사진첩 앨범을 만들어 두곤 했습니다. 결혼식 사진첩 앨범이 있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성장하며 자랄 때 찍어 모아둔 사진첩 앨범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의 깊이만큼, 살아온 세월만큼 가정의 앨범 수가 늘어납니다. 요즘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에는 사진을 찍으면 핸드폰 갤러리에 자동으로 저장됩니다. 과거에 찍어 둔 사진첩 앨범을 들춰보거나 핸드폰 갤러리를 뒤져 보면 과거의 아름다웠던 모습들과 좋았던 기억들이 새롭게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현재의 고통과 불신, 현재 겪고 있는 문제들이 다소 누그러지기도 합니다. 부부 간 갈등이 있거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들이 미워질 때 사진을 보면 마음이 다소 해소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사진에 어떤 특별한 마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불안과 염려들이 과거에 확실했던 기억으로 인해 다소 완화되는 현상입니다. 우리의 신앙 역시 이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이 과거 같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가끔씩 우리 마음을 지배할 때, 그때 과거에 나를 위해서 일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내 인생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현재의 불신도 다시 믿음과 신뢰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저자인 시인 역시 같은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영적 분열의 상태
본문의 시인은 지금 큰 혼란 가운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 77:2)
이것은 사실 역설적인 말이며,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환난 날에 주를 찾았는데 위로받기를 거절하였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환난 날에 나올 때는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며, 당연히 위로받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이 예전 같지 않고 혼란스럽고 번민할 때 주를 찾는다면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위로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환난 날에 하나님을 찾기는 했으나 위로는 거부합니다. 영적 분열 상태에 있고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나와 있기는 한데, 몸은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고 있기는 한데, 내 마음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는 상태, 영적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지금 이 시인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시 77:3)
하나님을 기억하는데 심령이 상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데 마음이 상합니다. 이것 역시 극도의 영적 불안 상태이며 분리와 분열의 상태입니다. 어떤 사건이 이 사람을 이렇게 분열과 혼란의 상태로 몰아넣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죄가 우리 인생에 들어오면 죄는 분리와 분열과 혼돈의 상태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죄가 만드는 분리
죄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그 죄는 여러 가지 분리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이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때 아담이 동산 사이를 거니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하와와 함께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또한 자기 자신 사이에 자아의 분열도 일어납니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자리를 잡아서 "벌거벗었으므로 내가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죄 짓고 나면 죄 지은 나를 내가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와 나 사이에 분리가 일어납니다.
또 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분리도 초래합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당신이 주어 나와 함께 있게 한 이 여자가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습니다." 결국 아담 자신의 입으로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했던 하와를 가리켜 죄의 근원이라고 지목하게 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분리도 일어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냅니다. 즉 사람과 자연의 분리도 일어납니다. 죄는 모든 것을 분열시킵니다.
결국 시인이 겪는 이 분리 불안, 성전에 나와 있지만 위로를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 있지만 항상 불안한 이 불안과 분리는 죄 문제가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런 상황이 극대화됩니다.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시 77:7-8)
구원에 대한 의심까지 나아갑니다. 영원히 폐하였는가? 그의 은혜와 신실하심과 성실하심이 다 끝나버렸는가? 즉 죄를 짓고 나니까 성전에 나와도 기쁨이 없고, 은혜가 회복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의심되고, 결국 급기야 구원에 대한 불안과 의심까지 찾아오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실 이것은 이 시인만 겪는 특별한 상황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 수많은 성도들도 몸은 성전에, 하나님의 전에 나와 있으나 이런 분리를 경험하고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마음속에 은혜가 사라지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불안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회개와 기억의 능력
이 시인은 이렇게 극복합니다.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시 77:10-11)
"이는 나의 잘못이라."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까.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곧 회개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부터 관계 회복이 시작됩니다. 잘못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난 이후에 시인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간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인생에 베푸신 일들도 기억하고, 자기 조상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일들과 은혜도 기억합니다.
자기 조상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만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우선 출애굽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각종 기이한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주셨고,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고, 홍해를 가르게 하셨고, 수많은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일의 수혜자들, 그 은혜를 받은 자들이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40년 동안 하나님을 원망했던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즉 죄 지었던 자들입니다. 돌아서면 원망하고 돌아서면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고까지 했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이키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오면 계속해서 용서하시고 그들을 끝까지 끌고 가신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는 죄책감과 불신을 넣어줍니다. 살아가다가 지은 죄 문제가 하나둘씩 누적되기 시작하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을 막아 버리는, 결국 사탄은 우리와 하나님을 분리시키려고 획책합니다.
그런데 옛적에 행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신 은혜의 대상자들은 모두가 다 죄인들이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간음한 자요, 살인한 자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에게 베풀어 주셨던 은혜들, 다윗과 함께하신 역사들을 떠올려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죄인을 향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돌이키고 회개한 죄인들, 하나님 앞에 다시 살겠다고 내 잘못을 인정한 자들,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믿음의 길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시 77:19)
홍해에 발을 넣어 보지 않고는 바닷속에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습니다. 사막을 걸어 보지 않고는 사막에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 머릿속으로 생각할 때는 바다에는 길이 없습니다. 사막에도 당연히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들어가 보니 길이 있었고, 사막을 따라가 보니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던 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는 회복되지 않을 것 같고, 성전에 나와 있어도 마음이 무겁고 하나님과 분리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것이 곧 길이 됩니다. 돌이키는 것이 길이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길을 걸어가 보면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면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용서하시고 품어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죄는 분리와 분열의 상태를 만듭니다. 환난 날에 주를 찾았으나 영혼이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기억했으나 심령이 상하는 분리 증상을 시인이 겪고 있습니다. 성전에 나와 있으나 여전히 마음은 하나님을 밀쳐 내고 있는 극도의 불안을 경험합니다. 죄는 하나님과 나 사이, 나와 나 자신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를 분열시킵니다.
둘째는 회개가 관계 회복의 시작입니다. 시인은 "이는 나의 잘못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회개부터 시작합니다. 잘못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놀라운 일들, 조상들에게 임하신 은혜를 기억할 때 믿음이 회복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옛적에 행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떠올려보면 그 은혜의 대상자들은 모두 죄인들이었습니다.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한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었습니다. 돌이키고 회개한 죄인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죄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회개하는 것이 곧 길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길을 걸어가면 홍해가 갈라지고 사막에 길이 열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기쁘고 복된 하루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