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지 않으시는 하나님
시편 78편
사람은 본능적으로 드러내야 할 것과 감추어야 할 것을 분별할 줄 압니다. 널리 알리고 기꺼이 나누어야 할 일이 있는가 하면, 깊이 묻어두고 홀로 간직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별의 질서가 뒤바뀌어 감추어야 할 것을 함부로 드러내고, 알려야 할 것을 도리어 숨긴다면 이는 사회적 성숙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한 이는 관계와 삶의 여러 영역에서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대개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기쁜 일들만 자녀와 나누려 합니다. 가정의 자랑거리와 함께 누려야 할 행복은 기꺼이 전하면서도, 복잡하고 무거운 가정사는 부모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녀에게는 가급적 알리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자녀와 나누어야 할 사안입니다. 자녀 역시 가정의 일원으로서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야 할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전승의 원리
그렇다면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에게 어떻게 대하셨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셨음을 명료하게 증언합니다.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며 예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을 드러내려 하니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 78:1-3)
이스라엘의 선조들이 후손에게 전해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역사라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참으로 독특한 성격을 지닙니다. 인간이 기록한 것이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지만, 그 근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친히 행하신 일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조들이 후손에게 물려준 하나님의 역사는 문자가 생겨나기 전까지 구전의 형태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들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행적이 세대를 넘어 전해졌고, 문자가 등장한 이후에는 기록된 말씀으로 보존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역사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역사 기록의 특징
이스라엘의 역사,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역사에는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 78:4)
첫째, 이스라엘 역사 기록의 특징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어떠한 가감도 윤색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조로부터 후손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을 기록하실 때 단 한 가지도 감추신 적이 없습니다. 설령 부끄러운 역사일지라도, 후손이 읽기에 낯 뜨거운 대목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드러내셨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소돔성에서 맞이한 롯의 비참한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하나님을 떠났고, 삼촌 아브라함 곁도 떠나 소돔 땅으로 향했습니다. 겉으로는 형통한 듯 보였으나 실상은 공허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그 가족을 구출해 주셨지만,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과 두 딸은 소알 성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러나 소돔의 향락과 타락한 문화에 물들었던 롯의 두 딸은 결코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술을 권하고 아버지를 통해 잉태한 것입니다. 이토록 치욕스럽고 참담한 이야기가 성경에 여과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는 아브라함도 예외가 아닙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면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야 할 터인데, 아브라함의 연약함과 실패가 성경에 가감 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분명한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던 다윗왕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의 빛나는 업적과 치적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가 평생토록 감추고 싶었을 부끄러운 과오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밧세바 사건이 낱낱이 드러나 있고, 그녀를 취하기 위해 충직한 신하 우리아를 비겁한 방법으로 제거한 일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이러한 기록을 허락하신 까닭은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과 무력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본래 그러한 존재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왕 중의 왕이라 칭송받는 다윗도 본질적으로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인간이 죄에 대해 무감각해지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분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의지해야만 바로 설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신 것입니다. 만일 인간의 허물 없이 기록해 두었더라면, 후대의 독자들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우상처럼 숭배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 기록을 통해 깨달아야 할 바는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추어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수치스러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있는 그대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추한 모습과 죄악된 본성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며 고쳐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다 보여주신 분이시니, 우리 또한 그분 앞에 숨기는 것이 없어야 마땅합니다.
둘째, 이스라엘 역사 기록의 특징은 여호와의 영예와 그분이 행하신 기이하고 놀라운 일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역사 기록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이집트와 앗시리아, 바벨론과 알렉산더 제국, 로마 제국의 연대기에서 왕들은 하나같이 신격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역사에서 배제되었기에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파라오가 신이 되고 로마 황제가 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지워버린 그들 역사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었고, 그 인간이 곧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제국들을 결국 멸하셨습니다. 한때 찬란했던 제국들은 이제 흔적만 남아 후손들에게 관광 수입을 안겨줄 뿐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연약함과 허물까지 모두 드러내 보여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할 일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만큼은 솔직히 고백하며 치유와 회복을 구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의 연약함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조들마저도 연약한 존재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단 하루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깊이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성취가 있을 수 있고, 재물을 얻거나 명예를 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만 높여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가문과 생애를 영원토록 붙들어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역사 기록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 그 뜻대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