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법정
시편 7편
우리는 날마다 다채로운 감정의 물결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며 요동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찬란한 태양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는 그 태양처럼 희망이 넘치고 기쁨이 충만하며 힘이 솟아오릅니다. 그런데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예기치 못한 일을 만나고 힘겨운 상황을 겪다 보면, 아침에 누렸던 그 힘찬 기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끝없이 추락하며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때로는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 같고, 어떠한 돌파구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적인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습니다.
수많은 감정 가운데는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극복하기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특별히 다시 일어서기 힘든 복잡한 감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배신감일 것입니다. 내가 믿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그 절망은 우리를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만드는 참으로 깊은 상처입니다. 나를 배신한 사람에 대한 원망과 증오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할 정도로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었는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그 사람은 오랫동안 나를 속이고 농락해 왔는데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한 내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가 하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의 다윗도 바로 그러한 배신감과 절망감 가운데서 하나님께 이 시를 올려 드립니다. 이 시편의 표제어에는 '다윗의 식가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식가욘은 '슬픔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표제어에는 '베냐민 사람 구시의 말'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베냐민 사람 구시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성경에 특별한 설명이 없습니다. 사무엘 상하를 읽어보아도 과연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그가 베냐민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바로 사울의 지파였습니다. 따라서 구시와 사울은 같은 집안 사람입니다. 사울 일가였던 베냐민 사람들이 다윗에 대해 호의적일 리가 별로 없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이후 같은 집안이었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고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안 사람들이 중용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당연히 특별한 보호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셨고,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 호의를 입었던 사람들이 이유 없이 다윗을 공격하는 것은 어쩌면 숙명에 해당하는 일이고, 인간관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반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베냐민 사람 구시도 바로 그런 사람으로서 다윗을 이런저런 이유로 공격했습니다.
부당한 공격
그가 어떤 말로 다윗을 괴롭게 했는지, 그 말의 내용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런 일을 행하였거나 내 손에 죄악이 있거나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내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든 원수가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땅에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 (시 7:3-5)
화친한 자를 악으로 갚았거나,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거나, 이런 식으로 베냐민 사람 구시가 다윗은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다윗에게 대단히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용사였습니다. 그가 이런 일을 행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명예에 관한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가 왕이 된 이후에 왕의 이름으로 도장을 찍어서 민족과 민족이 화친을 했다면, 화친한 사람을 어떻게 속여서 악으로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대적에게서 까닭 없이 빼앗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전쟁은 명분이 없으면 수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고대 사회에서도 그러했고, 지금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명분 없는 전쟁을 하면 그 국가는 전 세계로부터 비난받기 쉽습니다.
싸우려면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와 국가가 전쟁을 하려면 정당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내가 강하다고 해서 힘을 과시하면서 약소국들을 이유 없이 침탈하고 노략하며 전리품을 빼앗아오는 이런 일을 행했다고 구시가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명예에 관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구시 같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괴롭히는 자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흠집을 내는 자들, 그것도 아주 야비한 방법으로 이런저런 말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해명해야 합니까? 아니면 싸워야 합니까? 그때마다 멱살을 잡아야 합니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힘들고 마음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법정
그렇다면 다윗은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까?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나의 성실함을 따라 나를 심판하소서" (시 7:8)
하나님의 법정에 우선 자신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법정 앞에 자신을 세우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비겁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구차한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태도입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화를 주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장 달려갑니다. 그 사람 앞에 가서 따지고 대듭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해도 될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적어도 왕이었다면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을 데려다가 감옥에 가두든지 목을 치든지 하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법정 앞에 자신을 세웁니다. 자신을 돌아본 것입니다. 하나님, 혹시라도 이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부지불식간에, 내가 잊고 있는 허물이나 죄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법정에 나를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을 행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법정에 나를 우선 세우는 동안 화가 가라앉았습니다. 감정이 정리정돈되었습니다. 바로 다투지 않고, 바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무죄하다는 사실을, 나는 어떤 짓도 행하지 않았고 의롭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시 7:10-11)
나의 방패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결백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정에 나를 우선 세웠더니,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차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정에 나를 세운 다음에는 하나님의 법정에 베냐민 사람 구시를 세워야 합니다. 자신의 법정에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법정에 구시를 세우고 다윗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법으로 그를 처단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정에 그를 소환했습니다.
"그의 재앙은 자기 머리로 돌아가고 그의 포악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하며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시 7:16-17)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따라, 의로우신 재판장이시여, 그를 재판해 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께 그의 재판을 위탁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다윗 같은 권력을 가진 왕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두겠습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그를 걸어서 그의 목을 베어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자신을 하나님의 법정에 세우고, 자신의 결백을 확인한 이후에 베냐민 사람 구시를 하나님의 법정에 세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겨 드렸습니다. 이것이 그가 마음속에 있는 배신감과 절망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법정에 먼저 자신을 세우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감정과 불편한 생각들, 나를 괴롭게 하는 주변 사람들의 배신과 어려운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윗처럼 행해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화내고 우선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나의 연약함과 완악함과 나의 죄성을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십시오.
둘째는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법정에 구시를 소환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정에 그를 위탁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의로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직접 복수하거나 응징하려 하지 말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모든 판단을 맡기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이러한 신앙의 태도가 우리 인생을 더욱 복되게 합니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다윗도 이렇게 해서 그의 마음을 다스려 가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했습니다. 이 위대한 믿음의 길이 오늘 우리가 걸어가고 닮아가야 할 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