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시편 80편
사람의 얼굴에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표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감정이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묻어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 사람을 경험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 표정의 깊은 의미를 속속들이 읽어내기가 어렵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교제하고 그 사람의 성품을 알며 그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얼굴 표정만으로도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인지, 어떤 마음인지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오랫동안 키우다 보면 그 얼굴만 보아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웃고 있어도 그 속에 근심이 있는지, 염려와 걱정거리를 품고 있는지가 금방 드러납니다. 무표정 속에서도 그 마음이 편안한지, 행복한지를 부모는 단번에 알아챕니다. 오랫동안 자녀와 함께 살아온 것도 이유이지만, 무엇보다 자녀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오랫동안 관찰하고 살펴보면 얼굴 표정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변화를 금방 감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청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을 어떻게 사람이 느끼고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형상이 없으시며, 자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이 있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빛을 우리가 알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간절히 청원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줍니다.
옮겨 심으신 포도나무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시 80:8)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한 과정을 시인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심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포도나무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민족들을 쫓아내셨다고 했는데, 쫓겨난 민족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일곱 족속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신 이유는 그들이 그 땅을 범죄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죄악이 그 땅에 관영했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그들을 쫓아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후에 그들에게 행하신 일들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 앞서 가꾸셨으므로 그 뿌리가 깊이 박혀서 땅에 가득하며 그 그늘이 산들을 가리고 그 가지는 하나님의 백향목 같으며 그 가지가 바다까지 뻗고 넝쿨이 강까지 미쳤거늘" (시 80:9-11)
하나님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옮겨 심으셨고, 친히 그 포도나무를 가꾸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포도나무를 가꾸시니 그 가지가 산들을 가리고 하늘을 뒤덮었습니다. 바다까지 이르고 강까지 미쳤습니다. 포도나무가 어떻게 하늘을 가리고 산들을 덮으며 바다까지 이르고 강까지 미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행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시는 바는 분명합니다. 사실 포도나무 한 그루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힘이 없습니다. 그저 포도나무 한 그루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꾸어 주시니 그 포도나무 한 그루가 바다까지 이르고 강까지 미치며 하늘을 뒤덮고 산을 뒤덮는 역사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래 보잘것없는 민족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꾸시고 돌보시니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윗 시절과 솔로몬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국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이집트와 패권을 다툴 만큼 성장하고 자랐습니다. 그들이 잘났거나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가꾸셨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일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포도나무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인이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만 하면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주인이 가꾸시고 돌보시는데 포도나무가 따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포도원의 농부이시며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의 본분만 다하며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만 하면, 번성하고 뻗어나가며 바다까지 이르고 강까지 이르는 데는 아무런 장애나 문제가 없었습니다.
허물어진 담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이렇게만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그 담을 허시사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것을 따게 하셨나이까 숲 속의 멧돼지들이 상해하며 들짐승들이 먹나이다" (시 80:12-13)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포도나무 열매를 마음대로 따먹기 시작했습니다.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포도원이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토록 정성껏 가꾸시고 돌보셨던 주인께서 어떻게 담을 허무셨을까요? 왜 그냥 유린당하고 침략당하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포도나무인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께서 옮겨 심으신 그들이 주인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를 지었습니다. 주인을 실망시켰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냥 놓아버리신 것입니다. 더 이상 돌보지 않으시고 가꾸지 않으십니다. 더 이상 포도원의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홀로 할 수 있다고 하니 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 시절 후기부터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땅에 우상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신들과 잘해보라고 그냥 던져버리신 것입니다. 물질이 우상이 되고 사람이 우상이 되며 권력이 우상이 되는 자들을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 두시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실 그들은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능력이 있고 힘이 있어서 바다까지 이르고 강까지 미친다고, 포도나무가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은 생산력을 가진다고, 모든 것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시자 그 포도원은 순식간에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달았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야 비로소 우리의 능력이 아니었구나, 내 힘이 아니었구나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각각의 존재로만 보면 참으로 힘없고 무능하며 영향력 없는 사람들입니다. 늙고 병들어가며 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되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옮겨 심으시고 가꾸시니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모르고 무시하거나, 혹은 내 힘이라고 자랑하는 순간 우리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 은혜의 울타리가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때부터는 고난의 역경, 가시밭길이 시작됩니다. 어려운 일이 우리 인생에 수없이 많이 다가올 것입니다.
얼굴빛을 비추소서
시인은 이제 이 진리를 깨닫고 간절히 청원합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시 80:14)
돌아와 달라고,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다시 돌보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돌아와 달라는 청원을 시인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시 80:3)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시 돌아오셔서 우리에게 농사지어 주십시오, 좋은 농부가 되어 주십시오 하는 간절한 청원을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주의 얼굴빛을 비추어 달라는 표현은 관념적인 표현이거나 낭만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내 인생에 개입해 주시고 나를 농사지어 달라는 강력한 청원입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농사지으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 포도원의 농부가 되어 주신다면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돌아보십니다. 포도나무에 가지가 지나치게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전지 가위를 들고 오셔서 가지를 쳐버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가지치기를 하실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 가지를 하나님이 잘라내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께서 가지치기를 하신다면 그것이 기쁜 일만 되겠습니까? 고통도 따를 것입니다. 내가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아직까지 붙들고 있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잘라내 버리십니다. 주의 얼굴빛을 비추시면 하나님의 공의의 역사가 우리 인생을 가지치기 할 것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지 말라고, 거기에 매여 있고 그것을 붙들고 있는 동안 너의 인생은 말라 비틀어지고 열매 맺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가지치기 하십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셔서 얼굴빛을 비추시면 좋은 거름을 주시고 열심히 농사지어 주실 것입니다. 사랑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공의도 있고 심판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이 싫어서 하나님께 이제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달라고, 내 인생에 개입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망해 버린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번영이 하나님의 가꾸심에서 비롯됨을 기억합니다. 포도나무 한 그루는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꾸시니 바다까지 이르고 강까지 미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옮겨 심으시고 가꾸셨기에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내 힘이라고 자랑하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순간, 은혜의 울타리가 허물어질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모든 것의 근본임을 인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지 않았을 때 포도원은 황폐해졌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담이 허물어지고 들짐승의 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만 우리는 보호받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얼굴빛을 구하는 것이 곧 주님의 돌보심과 농사지으심을 간구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주의 얼굴빛이 비추어지면 사랑의 은혜도 임하지만, 가지치기의 고통도 함께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풍성한 열매를 위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역사입니다. 쓸데없는 것, 필요 없는 것, 죄짓게 하는 것을 잘라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온전히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온종일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시고 돌보시며, 좋은 은혜의 사랑도 베풀어 주시고 내 인생의 불필요한 가지도 쳐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얼굴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