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크게 열라
시편 81편
어린아이가 칭얼대거나 보채기 시작하면 어머니의 마음은 급해지기 마련입니다. 어머니는 몇 가지를 차례로 확인하는데, 우선 기저귀가 젖어 있는지를 살핍니다. 젖어 있으면 새것으로 갈아주고, 그래도 보채면 몸에 열이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열이 있으면 약을 먹이거나 심한 경우 병원에 데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열도 없고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입에 먹을 것을 물려줍니다.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입에 넣어주면 아이는 배부를 만큼 충분히 먹습니다. 평소에 주던 양을 먹였는데도 계속 울고 보채면 더 많이 줍니다. 조용해질 때까지, 충분히 먹고 만족할 때까지 먹여줍니다. 그렇게 충분히 먹고 나면 아이는 그제서야 평온한 모습으로 잠을 청합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다루는 이러한 방식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방법과 매우 유사합니다. 우리가 입을 벌리는 만큼, 하나님께 달라고 애원하고 탄식하며 간절하게 청하는 만큼, 우리의 입을 크게 여는 만큼 하나님은 도우시고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알고 계시는데 굳이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찬양하는 입술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며 관계 맺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께 입을 열어 대화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저 이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지금 제 마음이 이렇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 이처럼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님께 다 아뢰고 기뻐하며 대화하고, 때로는 탄식하고, 때로는 세상에서 받은 분노와 울분을 하나님께 다 토해놓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기대하십니다. 오늘 본문 시편의 내용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요청하십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시 81:10)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낸 여호와라고 선언하시며, 이어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입을 크게 열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 초하루와 보름과 우리의 명절에 나팔을 불지어다" (시 81:1-3)
1절에서 3절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는 말씀의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찬양할 때에 우리 마음의 중심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상태에서 찬양하게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그 마음의 중심과 본질이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향해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찬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찬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표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살면서 하루에 몇 번이나 감사합니까? 일주일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어떤 때에,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하루를 살아도, 일주일을 살아도, 혹은 1년을 살아도 하나님께 감사할 때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추수감사절에 감사하고, 맥추감사 주일에 감사하고, 한 해가 끝나고 새해를 시작하는 송구영신 때 돌아보니까 몇 가지 감사한 것이 있어서 감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일상이 감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는 수천 가지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감사는 나를 건져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실패하는데, 구원받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연히 주셨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원의 은혜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구원 이후에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지 않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이 우리 입술에 한가득 있습니다. 돈 달라고 구했는데 주시지 않고, 이런저런 인생의 필요가 있어서 구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셨고, 기다리게 하셨고,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이 우리의 입술에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메말라 버린 것입니다.
구원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하고 계십니까?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걸어 다니고 일상생활하며 살아가지만, 언제 이 생활이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고 가족도 모릅니다. 내 호흡이 끝나는 그 시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아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호흡은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길어봐야 100세 남짓한 인생을 살게 되고, 그것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면 그다음 우리에게 영원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영원한 시간을 천국 백성으로 살지, 아니면 지옥 불에서 살지,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셔서 우리는 이 땅을 살고, 또 그다음도 이미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생각할수록 감사한 일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감사하면 찬양이 저절로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질적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결코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열 명의 나병 환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멀리서 외쳤습니다. 자신들을 건져달라고, 고쳐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아홉 명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고,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만 예수께 돌아와서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감사는 곧 구원과 연결됩니다. 나머지 아홉 명의 나병 환자는 병 고침은 받았으나 영혼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감사는 곧 우리의 구원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입을 크게 벌리고 매일매일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잠들기 전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반드시 본질적이어야 합니다. 나에게 재산을 주신 하나님, 자녀를 주신 하나님, 필요한 것 채워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는 비본질적인 것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감사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 은혜에 대해서 입을 크게 열고 하나님 앞에 마음껏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감사의 입술이 크게 벌려지는 만큼 하나님은 우리 입을 또 채우실 것입니다. 더 많은 감사가 자꾸 넘치도록, 그 귀한 은혜가 우리 인생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부르짖는 기도
"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 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시 81:7)
입을 크게 벌린다는 것의 두 번째 의미는 고난 중에 부르짖는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의미가 감사라면 두 번째 의미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 입을 크게 벌려서 부르짖는다는 의미는 지금 내 상황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특이한 존재인데,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입을 크게 열지 않습니다. 내가 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상황이 만만치 않으면, 내 능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면, 그때 다급해집니다. 다급하면 소리가 높아지고, 소리를 내려면 입이 크게 벌려져야 합니다. 그것은 곧 내가 무능하다는 뜻입니다. 나의 무능을 깨달을 때 그때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부르짖고 기도하기를 바라시고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한두 번으로 끝내면 안 됩니다.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말 그대로 의롭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판결하는 사람이며, 악한 재판관입니다. 그런데 과부가 매일같이 그를 찾아가 괴롭힙니다. 도와달라고 호소합니다. 과부 입장에서는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자기 마을에서 이 사람밖에 말하고 호소할 데가 없으니까 계속 가서 해달라고 입을 크게 벌리는 것입니다. 과부가 누구에게 구하겠습니까? 남편이 있습니까? 의지할 사람이 있습니까? 계속해서 구하고 또 구합니다. 그러자 불의한 재판관이 귀찮아서 과부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불의한 재판관조차도 이렇게 귀찮아서라도 계속해서 입을 크게 벌리는 자를 돕는데, 의로우신 하나님이야말로 우리가 입을 크게 벌리면 당연히 도우시지 않겠습니까?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구하는 기도, 입을 크게 열고 부르짖되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간구를 아뢰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도우시고 채우실 것입니다.
순종의 열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렇게 길을 알려주고 답을 알려줘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시 81:11-12)
이렇게 길을 알려 줘도 듣지 않으니까 내버려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도다." 입을 크게 열면 내 입을 채우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입을 열어 감사하지 않고 부르짖어 구하지 않으니 네 멋대로 해보라고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입을 열지 않는데, 감사하지도 않고 부르짖지도 않는데 어찌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말씀을 꼭 붙잡고 가시기 바랍니다. 본질적 감사가 우리 입술에 있고,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가 우리 입술에 있어서 우리의 인생을 채우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도 경험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본질적인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감사는 물질이나 환경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지옥 불에서 건져내시고 천국 백성 되게 하신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 구원의 감사가 우리 입술에서 마르지 않을 때, 비로소 참된 찬양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둘째는 지속적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나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되, 불의한 재판관 앞에 매일 찾아간 과부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구하고 또 구하며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알려주셔도 듣지 않는 이스라엘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구하지 않아서, 입술을 열지 않아서 채우지 못하는 미련한 인생을 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온종일 우리의 인생이 입을 크게 여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