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자의 고백
시편 84편
사람은 저마다 복을 사모하고 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어떤 복을 사모하고 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혼자 먹고살 만한 정도의 먹거리만 있으면 복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정도로는 복이라 말하지 못한다고 여깁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며 자녀들에게 물려줄 만한 재산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는 재산으로 복을 논할 수 없고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갖추어야 진정한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들은 모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복에 대한 정의요 기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복,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는 복이 무엇인지를 우선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편은 복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여 설명합니다. 시편 1편의 시작이 "복 있는 사람"이라고 선언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시편 전체의 주제가 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이 무엇이었습니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복된 자라고 말씀합니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범사에 형통하며 그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는 나무 같은 존재가 바로 복된 존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단순히 관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나무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과 시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열매를 맺지만 그 대가로 그 자리에 오래도록 뿌리박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시냇가에 심겨야 합니다. 시냇가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복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인생 뿌리를 적시고 그곳에서 절대로 옮기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내 인생의 뿌리가 되니 우리가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고백하는 사람, 그러한 자가 복되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시편 84편 고라 자손의 시를 통해서 또 다른 복이 무엇인지를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성전을 사모하는 영혼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 84:1-2)
사모한다, 부르짖는다는 이 고백을 보면 지금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주의 궁정을 사모하고 내 영혼이 쇠약하다고 노래할 만큼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이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나기 전에 기쁨과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의 전을 향한 기대와 소망, 그곳을 향한 간절함을 가지고 그는 이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시 84:3)
시인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며 그 영혼이 쇠약할 정도로 기대하고 있는데, 그가 진정 하나님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자리가 바로 주의 제단이었습니다. 제단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 들어오면 번제단이 있지 않습니까? 그 번제단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올려드리고 예배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 지금까지 하나님께 번제의 예배와 아름다운 예배를 드리지 못했는데 진정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해서 예배드리고 싶은 간절함을 이 시인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된 복의 의미
이 시인이 노래하기를 참으로 복된 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고백합니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84:4)
그가 말하는 복이 있는 사람은 주의 집에 사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집에 살면서 항상 주를 찬송할 수 있기 때문에 복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주의 집이라고 하면 우리는 당장 공간으로서의 성전을 떠올립니다. 성전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할 때, 건물로서의 성전이 복되다는 말을 시인이 고백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를 나눌 때 성막시대와 성전시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전시대는 또 솔로몬 성전시대, 스룹바벨 성전시대, 헤롯 성전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막시대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시고 시내산 아래에서 모세를 통해서 성막 제작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시내산을 떠날 때 성막을 중심으로 열두 지파가 함께 행군하였습니다.
성막은 외형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저 천막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천막으로서의 성막 안에 들어가면 번제단이 있고, 그 번제단이 바깥에 있으며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집니다. 성소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아룁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 번 들어가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죄를 아뢰고 고백하는 자리, 그 자리가 지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성막 시절, 참으로 초라했던 성막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적 임재를 그 성막에서 심히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수많은 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시절로 접어들면 양상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솔로몬 성전 시절,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짓고 금방 타락해버립니다. 우상을 숭배합니다. 솔로몬 성전 시절의 마지막은 불행이었습니다. 그 성전이 모두 불타버립니다. 성전 안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 성전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성전이 없던 포로 70년 시절, 그 70년의 세월은 그들의 신앙이 다시 정화되고 회복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따져보면 성막 시절이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고 성전 시절은 타락으로 얼룩진 시절이 아니었습니까?
헤롯 성전 시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오셔서 헤롯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모두 내보내실 만큼 헤롯 성전 시절도 타락하였습니다. 에돔 사람인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화려하게 지어 주었던 헤롯 성전, 그 성전에서도 제대로 된 예배, 제대로 된 신앙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인이 고백하는 주의 성전, 이곳에서 예배 드리는 것은 공간으로서의 성전을 사모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공간으로서의 성전보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믿음의 본질이 중요함을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 복된 자는 주께 예배드리고 내 입술로 찬송하는 자이지 건물 자체가 우리에게는 우상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5)
또 복이 있는 자를 어떤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이것은 예배드리고 난 이후의 홀가분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주의 전에 올라올 때 세상에서 짓눌리고 세상에서 상처받고 힘겨운 마음을 가지고 주의 전에 올라옵니다. 그러나 주의 전에 와서 예배를 진정으로 드리고 나면 주께서 주시는 영적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오늘 이 시인이 그러한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그러면 내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립니다.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여전히 내 환경은 그대로인데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려서 이제는 해볼 수 있겠다, 살아낼 수 있겠다, 이제는 세상에 나가서 한번 부딪혀 볼 수 있겠다 하는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힘이 생깁니다. 그러한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성전에 올라와서 내가 가진 욕망과 욕심을 모두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러 올라와서 오히려 자기 욕망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배 드리러 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세상의 욕심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 앞에 증폭시킵니다. "하나님 돈 많이 벌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 내가 지금 거래하고 매매해야 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꼭 해결되게 해주십시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하나님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기도, 하나님을 통해서 성취시키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는 주께 힘을 얻을 수가 없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에 대한 실망과 원망만 가득할 뿐입니다.
번제와 소제, 예배의 정신을 우리는 깊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번제는 모든 제물을 다 태워서 하나님께 재만 남기는 예배입니다. 소를 가지고 오든 양을 가지고 오든 짐승을 가지고 오면 잡아서 피를 빼고 각을 떠서 하나님 앞에 태워서 드리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이라도 남으면 그 예배가 잘못된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러 와서 내 욕심이 남고 내 욕망이 남고 내 기대와 생각이 남으면 그 예배는 잘못된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릴 정도로 걱정도 염려도 모두 하나님께 맡기는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한 자들이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이 있는 사람인지, 나는 하나님 앞에 진정 복 받은 사람인지 오늘 이 시인의 고백을 통해서 다시 한번 깨닫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이 자신의 진심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2)
진정 복된 자는 자기가 성전에 가지고 나올 때 들고 나온 재물을 의지하는 자가 아닙니다. 이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자기 욕망을 아뢴 그 욕망을 의지하는 자가 아닙니다. 진정 복된 자는 주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를 의지해서 이 자리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내 힘과 능력과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을 의지한다면 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이 자리에 나와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무능하고 무력한데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이 자리에 나온 우리 모두가 복이 있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참된 복은 물질이나 건강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고 예배하는 삶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추구해야 할 복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시인이 성전을 사모하여 영혼이 쇠약할 정도였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둘째는 공간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어디서든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의 본질이 중요합니다. 화려한 성전에서도 타락이 일어났고 초라한 성막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드리는 예배의 진정성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믿음의 본질을 붙들어야 합니다.
셋째는 예배를 통해 내 욕망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때 참된 힘을 얻습니다. 번제의 정신처럼 우리의 욕심과 욕망을 모두 태워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할 때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열립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힘이 생깁니다.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오늘 하루 진정으로 복된 자로서 이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물질이 복이 아니며 육신의 건강만이 복이 아니며 세상에서 추구하는 욕망이 복이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서 주를 찬양하며 모든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고 오직 주만 의지하는 복된 삶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