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애와 진리
시편 85편
부모는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그릇된 길을 갈 때 결코 수수방관하지 못합니다. 좋은 말로 타이르고 책망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치지 않고 그 도가 지나치면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여 자녀를 바른 길로 돌이키고자 합니다. 요즘은 거의 그렇게 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자녀들에게 매를 들기도 했습니다. 자녀를 초달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이며,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어떤 부모가 자녀를 때리는 것 자체만이 목적이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 될 것입니다.
결국 부모의 마음은 사랑하는 자녀가 다시 본래의 위치로, 제자리로 돌아와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사회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책임지고 돕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그들을 보살피고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가 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루시고 우리 각 사람을 돌보실 때,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아도, 내 인생을 돌아보아도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속상하게 해드린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럴 때마다 기다려 주시고 또 책망도 하시지만, 그 도가 지나치면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인생에 개입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손길대로 이끌고 가십니다. 그 과정에 고난이 따르고 징계가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원해서도, 기뻐해서도 아님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고난과 징계가 있은 후에 우리가 돌이키기만 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깨닫기만 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본문 말씀이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잘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로 귀환의 기쁨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시 85:1-2)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셨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포로 된 자들이 다 돌아오게 하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포로 귀환의 기쁨을 하나님께 감사의 시로 올려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원래 통일된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통일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솔로몬 사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집니다.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바벨론은 남유다를 멸망시킨 후 포로를 끌고 갔습니다. 유다의 모든 백성들 중 쓸만한 사람들, 건강한 사람들, 지식 있는 사람들,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자기 나라로 끌고 갔습니다. 이것이 바벨론 포로였습니다. 포로 생활이 하루 이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7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 이후에 하나님께서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오게 하실 때 그냥 질서 없이 막무가내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포로에서 돌이키시고 돌아오게 하실 때 그들은 사명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1차 포로 귀환자들은 성전 재건의 사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고 불에 타 없어졌기 때문에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이 예배드릴 처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성전 재건의 사명을 가지고 왔고, 학개와 스가랴가 그들을 북돋아 주어서 마침내 성전 재건을 이루어냈습니다. 2차 포로 귀환자들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건된 성전에 채우게 되었습니다. 3차 포로 귀환자들은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불타버린 성문을 새롭게 달았습니다. 이렇게 1차, 2차, 3차 포로 귀환자들을 통해서 다시금 그들의 잃어버린 믿음과 신앙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시인은 이렇게 돌아온 포로 귀환자들을 환영하고 기뻐하며, 이렇게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함으로 이 시를 시작합니다.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시 85: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셨던 진노, 하나님이 품으셨던 분노를 끝내고 돌이키셨기 때문에 그들이 이제 포로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속 진노하셨다면, 계속 그 상태로 계셨다면 70년 포로 생활이 아니라 700년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분노를 그치시고 진노를 돌이키시니 그들이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망함과 흥함의 이유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망하게 하신 이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왜 망했습니까? 그들이 망한 이유를 역사가들은 다양하게 분석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국력이 약해서 힘이 없어서 망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무기가 부족해서 망했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침략받기에 딱 좋은 나라여서 망했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제국의 열강들 사이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망했다고 말합니다. 어느 이유가 정답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국력이 약해서도 아니고, 무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지정학적 위치가 불리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망한 이유는 딱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윗 시절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이 왕으로서 훈련받은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은 그를 광야에서 아주 혹독하게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나 제왕의 훈련은 받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아버지가 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약한 자 중에 약한 자요, 연약한 자 중에 연약한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을 복주시고 그의 왕국을 가장 강력하게 만들어 가셨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이유는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닙니까? 주의 백성들이 왜 어려움을 겪습니까? 어떤 이는 돈이 없어서, 어떤 이는 능력이 부족해서, 어떤 이는 여러 가지 여건이 불편해서, 이 나라가 경제를 잘못 운영해서 등등의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결국 주의 백성들이 내리막길을 걷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점검하고, 그 관계가 회복되고, 말씀대로 살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한 이유를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새롭게 말씀으로 일어나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를 그치시고 분노를 거두어 그들을 돌이키신 이유는 말씀이 회복되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시 85:8)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들을 것이라는 의지가 포로 된 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의지를 보시고, 그 가능성을 보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시는 내가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그 어리석은 곳이 어디겠습니까? 말씀을 무시하고 말씀을 듣지 않는 곳입니다. 다시는 내가 그곳으로,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우리가 내리막길을 걷는 것도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의 부흥도, 가정의 부흥도, 이 나라와 민족이 새로워지는 부흥도 결국은 우리가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애와 진리의 만남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시 85:10)
참으로 유명한 말씀입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난다고 했습니다. 인애는 하나님이 하늘에서부터 베풀어 주시는 특별한 사랑이요 은혜를 의미합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 포로 된 자들의 삶을 보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은혜, 인애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그 은혜가 우리에게 인애로 온전하게 임하려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베풀어 주시는 십자가 사랑이 아닙니까? 그로 인해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화평이 새롭게 됩니다. 죄지은 인간을 하나님은 책망할 수밖에 없고 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이 들어와서 결국 화평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십자가 사랑을 통해서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그 말씀을 잘 기억하고 행하는 자들에게 진리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 85:11)
진리가 땅에서 솟아난다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붙들고 행하는 자들이 땅에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살아가는 진리가 새롭게 솟아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이 흥하고 망하는 것은 말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흥하는 것은 말씀대로 살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도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타의 수많은 이유를 댄다 할지라도, 오직 말씀이 우리를 흥하게도 하고 망하게도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는 인애와 진리가 만나고 의와 화평이 입맞출 때 회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인애가 하늘에서 임하고,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때, 그때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화평이 우리 삶에 충만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완성되었습니다.
셋째는 진리가 땅에서 솟아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붙들고 행하는 자들이 있을 때, 그 땅에서 진리가 솟아나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주의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며, 그 말씀이 주는 진리의 깊이를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사는 우리를 보시고 분노를 거두시며 진노를 돌이키시는 주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오늘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진리에서 어긋나지 않고, 오직 정도를 걷고, 오직 생명의 길, 진리의 길, 말씀의 길만 붙잡고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