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시편 86편
우리는 수많은 인간관계 가운데 살아갑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났던 이들과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떤 관계는 지속적으로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은 만남이 있는가 하면, 어떤 만남은 한두 번으로 더 이상 지속하고 싶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과연 어떤 사람과 더 오래도록 관계를 유지하고 싶겠습니까? 겸손하고 자기 자신을 바르게 아는 사람, 만나면 즐겁고 행복한 사람, 그 입술에 불평이나 원망이 없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 항상 얼굴에 웃음이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는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불편함이 없고, 그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평생 동안 함께 걷고 싶은 진정한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고, 입술에 원망과 불평을 달고 살며, 여러 방식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깎아내리는 사람과는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인지상정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고 싶으시고 가까이하고 싶으시겠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은 어떤 자녀를 더 가까이 두시고 깊은 교제를 나누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영적 갈급함의 유지
당연히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하나님과 자주 대화를 나누려 애쓰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까이 두시고 자주 만나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항상 가까이 두시고 사랑하셨던 인물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었던 자입니다. 오늘 본문에 담긴 다윗의 기도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왜 그토록 다윗을 사랑하셨는지 그 이유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만족시키며, 하나님을 행복하게 하는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시 86:1)
다윗은 기도의 첫머리에서 자신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가난하고 궁핍하다'는 말은 단순히 물질적 결핍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다윗의 일생에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전전할 때, 그는 한 끼 먹는 것조차 버거웠습니다. 오늘은 어디에서 누구에게 얻어먹어야 할지, 함께하는 사백여 명의 식구들을 어떻게 먹여 살리고 돌봐야 할지 막막했던 시절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왕이 된 이후에도, 형편이 나아진 이후에도 영적 갈급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던 인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고백하는 것은 물질적 결핍을 넘어 영적 갈급함을 끊임없이 간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물질적 문제가 해결되면, 인생의 여러 난관이 해결되면 더 이상 갈급함을 호소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 가지 필요를 따라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고 구했다가도, 그 필요가 채워지고 나면 더 이상 아버지께 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며 더 이상 갈급해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을 상기해 보십시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생 동안,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우리가 유지해야 할 것은 바로 영적인 갈급함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육체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어서 먹을 것이 채워져야 하고, 의식주가 기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갈급함은 본능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갈급함이 채워진 이후에 영적 갈급함을 무시해 버린다면, 영적으로 헐벗은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영적 갈급함은 오직 말씀으로만 채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주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항상 충만하고 배부른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이성을 잃고 사나워지며, 분별력과 판단력이 사라집니다. 영혼이 배고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판단력이 상실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 갈급함을 유지하며, 매순간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채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 첫머리는 바로 이 고백입니다. "저는 영적 갈급함을 유지하는 자입니다. 매 순간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은혜를 사모하는 자세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시 86:2)
여기서 '경건하오니'라는 표현에 대해 성경 각주를 보면 '주께서 은혜를 주신 자니'라는 뜻으로 풀이되어 있습니다. 곧 이 '경건하다'는 말은 "나는 주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입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내가 원할 때마다 버튼을 눌러 받을 수 있는 자판기 같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저는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주께서 은혜를 주신 자입니다"라는 고백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만 자신이 받을 수 있다는 겸손의 표현이며, 하나님 앞에 겸손을 유지하고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는 태도의 발현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은혜란 어떤 것이었겠습니까? 다윗은 참으로 은혜를 받은 인물입니다. 이새의 막내아들에서 입지전적으로 성공하여 왕까지 된 인물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은 세속적인 성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왕이 된 이후의 그의 인생입니다. 왕이 된 이후 그의 삶에는 참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는 잠시 잠깐 겸손을 잃어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를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생도 매순간 위로부터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우리는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동안 이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은혜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실로 많습니다.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의 만류를 뿌리치며 에덴 동편 놋 땅에 가서 성을 짓고 살았던 가인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다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필요 없다며 뿌리치고 도망간 사람이 아닙니까?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은 가인을 하나님 백성의 계보에서 제외시키셨습니다.
노아 시절에 사람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기록에서 사람의 딸들의 삶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은혜가 필요 없는 자들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방주를 준비하시고,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세상에서 죄를 짓고 죄의 쾌락을 누리던 사람들은 백이십 년 동안 방주가 주는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노아가 백이십 년 동안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들어도 그들은 하나님이 이미 주신 은혜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은혜가 필요 없다 여기는 자들의 마지막은 결국 멸망입니다.
우리가 수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구원이 필요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아버지 앞에 기도하면서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은혜이기에, 매 순간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시 86:4)
다윗은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본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시선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시선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사실 시선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기에 다윗의 일생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가 광야에서 사울을 피해 다닐 때, 하나님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어디에서 숨어 지내야 할까, 어디로 도망가야 하며, 누구에게 가서 하루치 양식을 구해야 할까를 생각하면 하나님만 바라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어려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왕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이 되고 나면 운영해야 할 국정이 산적해 있습니다. 전념해야 할 일들이 많고 만나야 할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매순간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탁월한 점입니다. 전쟁을 치르더라도 그는 적들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께 기도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여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매일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만 바라보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진정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주를 향해 바라보는 시선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게 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 은혜의 관점에서 내 문제를 보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고 별것 아닌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내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홍해를 보면 홍해는 가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에서 광야를 보면 광야는 건너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이 아닌 내 시선에서, 내 눈높이에서 광야와 홍해를 보면 건널 수 없고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강과 바다와 광야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부디 다윗처럼 하나님의 시선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시선으로 문제를 보며, 세상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시 86:7)
다윗은 환난의 때가 되면 항상 주를 찾겠다고 고백합니다. 환난이 있을 때 주를 찾는 것, 사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는 환난 때 주를 찾기가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주를 찾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고 주변에 사람이 있는데, 돈과 권력과 사람을 먼저 찾지 않고 하나님을 먼저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평생 동안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다윗이 이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갈급함을 평생 유지해야 합니다.
물질적 필요가 채워졌다고 해서 영적 갈급함까지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그날까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목마르게 사모해야 합니다. 매일 말씀으로 영혼을 채우는 삶이 진정한 신앙인의 삶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구해야 합니다.
은혜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겸손하게 아버지 앞에 나아가 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은혜가 필요 없다고 여기는 교만은 결국 멸망으로 이끌지만, 은혜를 사모하는 겸손은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셋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 속으로 빠져들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은혜의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환난 날에도 돈과 권력과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만을 먼저 찾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가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우선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를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붙잡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로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정의와 공의가 실종되고 복잡하고 험악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주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백성으로 굳건히 서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