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편

성경
시편4권

전능자의 그늘

시편 91편

과거 우리나라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미국 이민을 꿈꾸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가면 돈도 많이 벌고,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고, 찾아오는 기회를 붙잡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지 못하니, 미국이라는 강력하고 힘센 나라가 그늘이 되기를 바라며 그 그늘 아래 거하기를 갈망했던 것입니다. 또한 많은 자녀를 낳았지만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할 만큼 가난한 사람들도 그 시절에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학교에 보내는 것은 고사하고 한 끼 한 끼 먹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그 시절, 부자로 사는 친척 집이 있으면 자녀를 양자로 보내는 일도 흔했습니다. 자기 집의 그늘에서는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지만, 부잣집 그늘에 가면 먹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문제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든든한 뒷배경이 필요하며, 큰 그늘을 찾습니다. 그 그늘에 들어가면 쉴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를 걷다 보면 그늘이 간절하지 않습니까? 그늘 속에 들어가서 쉼을 누리고 땀을 닦으며 휴식하고 싶은 것처럼, 인생에도 그러한 그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그늘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어디로 숨어 들어가야 우리 인생이 참된 쉼을 누리고 안전함을 얻겠습니까? 사람은 궁극적인 그늘이 될 수 없고, 강대한 나라도 우리 인생을 구원하는 그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인생을 지키시고 돌보시며 품어 주시는 참된 그늘이 되십니다. 오늘 시편 말씀에서는 바로 이 전능자의 그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보호하시고 돌보시는 가장 좋고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삶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 91:1-2)

1절에 등장하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표현에서 지존자와 전능자는 모두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말씀이 더욱 중요합니다. 거주하며, 사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주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 그가 바로 행복하며 하나님께 의지하고 피할 수 있는 자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편안한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과 함께 부대끼며, 하나님과 함께 호흡하고, 생활하며 사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예수님이 포도나무가 되시고 우리가 그 가지,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는 것을 '산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이 삶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더운 여름날에 우리 가정에 손님이 오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두 시간 머물렀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그 손님이 갑자기 찾아오셔서 일주일 정도 함께 우리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반찬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옷은 어떻게 입고 다녀야 할지,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함께 사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한여름에 편한 차림으로 지내도, 반찬이 부족한 식사를 해도 불편하지 않습니다. 식구이기 때문에,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치 내 식구처럼 느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인데, 아버지 집에 사는 것이 불편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조금 더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 속에 거주하는 것이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합니다. 죄 짓고 살고 싶은데 하나님과 함께 살면 죄를 짓지도 못하고 불편하며,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고 싶은데 하나님과 함께 살면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불편한 구석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내 인생이라는 가지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매의 복을 누리며 살려면,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성장이요, 신앙의 성숙입니다.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수십 년간 참되게 믿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주의 말씀 가운데 사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이것이 어렵고 불편한 것은 우리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살고 전능자의 그늘에 거하는 것이 불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재앙을 면케 하시는 하나님

오늘 이 시편은 이렇게 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복과 은총을 노래합니다.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 91:3)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자, 하나님의 그늘 곧 전능자의 그늘에 사는 자를 하나님이 재앙에서 건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6절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선언합니다.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91:6)

전염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병균이 눈에 보입니까? 세균은 우리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는 전염병이 피해가고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시 91:7)

실제로 이러한 경험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은 한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그들은 고센 땅에 살았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애굽 전역에 임했는데, 고센 땅은 재앙이 피해 갔습니다. 하나님의 그늘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능자의 그늘에 살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철저하게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은 열 번째 재앙이었습니다. 애굽 백성들의 장자를 하나님께서 치셨습니다.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집 안에 들어가 있는 자에게는 죽음의 사자가 그날 밤에 건너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양을 잡았습니다.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숨었습니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 들어가 있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 잠을 청했던 애굽의 모든 사람들은 재앙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능자의 그늘에 거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 말씀에 약속한 바를 따르며 살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어떤 재앙이 닥치든지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그늘이 되시고, 주의 말씀을 지키며 살면 재앙이 지나가고 전염병이 지나갈 것입니다. 어떤 재앙과 환란도 우리를 피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숨어가고 스스로 피해가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가지가 되어서 포도나무 원줄기에 붙어 있는 지혜입니다.

천사의 보호와 구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 91:11)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전능자의 그늘에 거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말씀을 붙들고 지키는 자를 천사들을 보내어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오늘도 말씀을 지키고 살면 천군 천사들이 내가 가는 길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사업하는 일도, 우리 자녀들이 공부하는 학업의 길도, 우리가 걸어가는 모든 길도 천군 천사들이 보호하시면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 보호는 우리의 일생 동안 함께 이어질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천국 가는 날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시 91:16)

결국 하나님의 은혜,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까지 얻게 됩니다. 전능자의 그늘 곧 말씀의 그늘 아래 살게 되면, 이 땅에서 천군 천사들의 보호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이 땅을 떠나 천국 가는 길까지 하나님께서 건져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약속과 은혜를 붙들고, 오늘도 두려워하지 말며, 세상 한가운데서 전능자의 그늘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것이 불편하다면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편안하듯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고 평안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밤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안에 거함으로써 죽음의 재앙을 면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할 때 모든 재앙과 환란에서 보호받게 됩니다.

셋째는 천군 천사의 보호와 영원한 구원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어 모든 길에서 지키시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구원까지 베풀어 주십니다. 이 땅에서의 보호뿐 아니라 천국에 이르는 길까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진정한 그늘을 찾아 헤매는 존재였습니다. 한여름에 쉴 곳이 필요했던 것처럼 인생의 뒷배경이 필요해서 물질을 찾기도 했고, 강대한 나라를 의지하기도 했으며, 세상의 헛되고 헛된 것들을 쫓아 그늘 가운데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살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그늘이 되시니,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말씀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 아래 거하며,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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