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과 악인
시편 92편
세상에는 의롭게 사는 의인들도 있고, 악한 사람들인 악인들도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의인과 악인을 너무나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구분하려고 해보면 의인과 악인을 나누는 기준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법을 기준으로 의인과 악인을 구분해 볼 수도 있습니다. 법을 지키는 자가 의인이고, 법을 어기는 범법자들이 악인이라고 한다면, 과연 모든 사람이 이 기준에 동의할 수 있겠습니까? 법을 어기는 범법자를 악인이라고 하는 것은 동의할 수 있다 하더라도, 법을 잘 지킨다고 해서 모든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구석이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기준으로 선을 행하는 것을 가지고 의인과 악인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을 적극적으로 행하는 자를 의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을 악인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지나쳐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따져본다면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지, 어떤 기준으로 의인과 악인을 나누어야 하는지가 사실상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의 말씀은 어떤 사람이 의인이며 누가 악인인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의인과 악인, 성경이 말하는 의인과 악인의 기준이 바로 여기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감사와 찬양의 사람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 92:1-3)
한마디로 말하면, 감사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 자들, 이런 사람을 좋은 사람 곧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감사와 찬양과 주의 이름을 전하는 것이 과연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감사와 찬양, 주의 이름을 전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을 모든 사람과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보는 것이 육체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주의 이름을 전하며 선포하는 것은 믿음이 있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들은 감사 대신에 원망을, 찬양 대신에 불평을, 주의 이름을 전하는 것 대신에 자기 이름을 전하고 나타내려고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말합니다.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시 92:6)
깨닫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 무지한 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감사하고 찬양하고 전하는 일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 이런 자가 바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사실 세상에서 많이 배우지 못하고 학벌이 별로 높지 못한 사람을 어리석은 자, 무지한 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르는 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짜 없다고 생각하는 자, 이런 자들을 어리석고 무지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정체
그런데 성경은 이런 자들을 그저 어리석은 자로 끝내지 않습니다. 이런 자를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악인들은 풀 같이 자라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시 92:7)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인 동시에 악한 자들이라고 성경이 정의해 두었습니다. 어리석은 자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왜 이런 자들을 악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왜 이런 자들이 악인입니까? 우리는 악이라고 하면 남을 해코지하고, 때리거나,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자들을 악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감사와 찬양이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지 않는 자를 악인이라고 설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없이 사는 자들인데, 이런 자들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면 모두가 다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까?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다 자신을 위해서 삽니다. 나의 부귀영화와 나의 안전을 위해서 살고, 나만 좋으면 그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을 행할 수 있는 근본 뿌리가 됩니다.
시편 1편 말씀을 보면 악인을 정의하기를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바람에 나는 겨는 뿌리가 없지 않습니까? 바람에 나는 겨는 창공을 자유롭게 비상해서 날아다니지 않습니까? 전부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다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전부 다 누리고 다니며 행동하고 생활합니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바로 악을 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살아갔던 사람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인의 후손 중에 라멕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라멕은 자신의 몸이 상함으로 인해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자랑스럽게 노래하며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떠벌리며 다녔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 앞에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가 하나님을 믿었다면, 자신의 몸이 상했다는 이유로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습니까? 라멕의 조상이 되었던 가인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동생 아벨을 죽여버린 인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는 자라면 감히 이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악의 뿌리가 되고 악의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악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악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피를 묻히지 않아도, 내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지는 않아도, 내 입술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는다면, 내 입술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전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지 않고 감사와 찬양이 내 인생에 메말라 버렸다면, 오직 내가 생각하는 것이 자기중심적이라면, 우리는 악을 행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은 악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정의하는 악인의 범주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의인의 모습
그렇다면 의인은 어떤 자들입니까?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 92:12-13)
의인을 말하기를 나무로 표현했습니다. 그 나무가 어디에 심겼습니까? 하나님의 뜰 안에 심겼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의인을 성경은 나무라고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시편 1편의 말씀도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말하지 않습니까?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을 향한 노래인데,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했고, 오늘 이 말씀에도 의인은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나무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여러 가지 핸디캡이 많은 존재입니다. 나무는 뿌리를 한 곳에 두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다닐 수가 없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두면 오래 사는 나무는 수천 년을 그곳에서 살지 않습니까? 창공을 비상하며 날아다니는 바람에 나는 겨가 나무에게는 때로 부럽기도 합니다. 저 창공을 비상하는 바람에 나는 겨는 자기가 가고 싶은 곳,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다니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 뿌리를 두고 이곳에서 수천 년을 그냥 살아가고 있구나 하며, 나무는 그렇게 자신을 신세한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뿌리 박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나무에게는 하나님께서 선물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뿌리 박고 있는 인생,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나무에게 하나님이 분명히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 열매는 나무인 나를 영광되게 하고, 주인이신 하나님을 복되고 기쁘게 하는 열매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내가 의롭게 살아서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나무가 되면 열매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에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서, 내 인생이라는 나무를 통해서 맺어지는 열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의인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행위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께 뿌리박고, 하나님의 뜰 안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며, 조금 불편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면 그 사람이 바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이 이렇게 복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 92:14)
늙어도 여전히 결실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열매가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가도, 주의 뜰에 심겨진 나무 같은 존재가 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열매 맺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 열매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영화롭고 복되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악인의 삶을 살지 않고 의인의 삶을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와 찬양이 의인의 표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악을 적극적으로 행해서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과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지 않아서 악인이 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없고, 우리 마음에 나 자신의 부귀영화만 있으며, 하나님을 제거해 버린 가인과 라멕 같은 존재가 되면 그 사람이 바로 악인이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뜰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성장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뜰에 심겨져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뜰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결실하며, 나이가 들고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고 진액이 풍족하여 하나님께 내 열매로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선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박음으로 의인이 됩니다. 우리의 인생이 선한 행위를 많이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뿌리박고 있어서 의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진리이신 우리 주님 앞에, 말씀 위에 뿌리박고 살아서 진짜 의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의인의 기도를 주께서 들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뿌리 박고 기도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복된 의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