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시는 하나님
시편 93편
회사를 보면 그 회사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각각 자기의 직급과 위치에 따라서 자기가 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권한과 권위가 분명하고, 또 그에 따른 책임 소재가 분명합니다. 또한 자기 일의 업무 영역과 범위가 분명해서 그 일을 벗어나서 일할 수도 없고 일해서도 안 되며,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하려고 침범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고 불쾌하게 여깁니다. 이를테면 회사를 운영하는 최고경영자는 그 회사의 방향을 정할 것입니다. 그가 정한 방향대로 지휘라인에 있는 분들이 함께 모여서 업무의 내용을 함께 정리할 것입니다. 그 후에 그 다음 일을 실무적으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업무 지시를 내립니다.
이런 부분들이 명확해야 회사가 잘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이제 막 입사한 말단의 신입사원이 회사의 방향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에 방향이 있고 모든 것에 흐름이 있으며, 보고 라인이 분명히 있습니다. 만약 그 보고 체계와 라인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런 조직, 그런 기업은 오래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돌아갑니다. 누가 그 회사의 오너인지 지도자인지가 분명해야 그 기업이 건강하게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는 우리는 이 부분을 명확하고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누가 나의 창조주이신지, 누가 나를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이시요,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고 지금도 붙들고 계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입술로는 그렇게 고백을 하는데,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보면 하나님이 과연 이분에게 창조주이신가, 하나님이 지금도 이분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이 분명한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을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이 부분을 한 번 더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통치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시 93: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스린다'는 말에 목적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즉 여호와께서 누구를 다스리시는지, 여호와께서 무엇을 다스리시는지, 여호와께서 어디를 다스리고 계시는지를 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왜 목적어를 빼고 기록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고 계시고, 우리 가정도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이 나라도 다스리고 계시고, 온 세상 만물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굳이 목적어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다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다스림의 권위는 누구에게 부여받은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권위를 가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하나님께 여기를 다스리십시오 하고 권위를 준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직접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는데, 누가 하나님에게 감히 권위를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창조주이면서 지금도 우리를 다스리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깊이 묵상해보면 하나님은 책임을 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당연히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하고 계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지금도 다스리고 계셔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고 기억한다면,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고 지금도 나를 지배하고 계시고 나를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되고 하나님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관리 감독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와서 문제를 호소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저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나를 관리하시는 분이시니 알아서 하십시오,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그렇게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인생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나 스스로 나를 치료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더 망가뜨립니다. 사실 내가 나를 고칠 수 있습니까? 내 마음의 문제를, 내 인생에 일어나는 수많은 복잡한 문제를 내가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자꾸만 수렁으로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문제도 그러하고, 이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모든 문제 또한 그러합니다. 인간들이 다스리는 세상을 보면 전부 다 문제투성입니다. 전쟁이 또 다른 전쟁을 부르고, 갈등이 또 다른 갈등을 낳고, 환경오염과 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는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지금도 다스리는 하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가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복잡한 상황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영원부터 계신 분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 93:2)
'예로부터', '영원부터'라고 기록했습니다. 예로부터 계셨고 영원부터 계셨다고 시인이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언어의 한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 이전에 있었던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예로부터', '영원부터'라는 말을 쓰는데, 이 언어로조차도 하나님의 창조를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옛적부터 계셨고 영원부터 함께 하셨던 분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창조한 사람이 없고, 누구도 하나님께 권위를 준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처음 만나서 자기를 소개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제가 애굽 사람들에게 가서, 내 동족, 고난받는 내 동족에게 가서 누가 나를 당신들에게 보냈다 하리이까. 그때 하나님께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냈다고 말하라."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애매모호하고 알쏭달쏭한 말씀이지만, 그러나 이 말씀밖에 하나님은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시겠습니까? 나는 누구의 피조물이다, 누군가가 나를 창조했다, 이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창조하고 다스리고 계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보다 크신 분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시 93:3)
'큰 물'이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되어 나오고, '높였다'는 말이 또 세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높였습니다. 두 가지가 시인을 압도합니다. 큰 물의 위용이 시야를 압도합니다. 큰 물결이 내 눈앞에서 나를 덮칠 것만 같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견딜 수가 없고 고막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즉 자신의 인생에 다가오는 위험과 고난과 어려움을 큰 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런 위기를 겪을 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큰 물이 내 인생을 집어삼킬 듯이 바로 내 눈앞에 있을 때, 큰 물이 다가오는데 그 소리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내 비명조차 그 소리에 묻혀버릴 때, 그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이제는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 물결이 나를 덮치면, 물결이 나를 휩쓸고 가버리면 나는 저 물결 끝에서 죽은 목숨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 앞에서, 고난 앞에서 힘없는 한 인간의 어려움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시 93:4)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을 말했습니다. 큰 물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을 고백합니다. 큰 물이 나를 휩쓸어 가버릴 것 같은데, 하나님의 능력은, 여호와의 능력은 그 물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소리는 많은 물 소리보다 더 크다고 고백했습니다.
시인이 고백하는 본뜻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보다 하나님이 더 크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큰 물결 같은 고난이 닥쳐올 때 이것이 크다고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그것만 보지 말고, 그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훈련과 이 교육을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 순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왔습니다. 바다 앞입니다. 압도적인 바다입니다. 큰 물결입니다. 저 바다를 어떻게 건너갑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바다보다 크신 분이었습니다. 바다를 갈라주셨습니다. 이제는 사막 앞에 섰습니다. 사막을 어떻게 건너갑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사막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지금도 사막을 다스리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뜬히 사막을 건널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애굽 군대가 앞은 홍해인데 이스라엘 백성들 뒤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큰 물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애굽 군대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애굽 군대의 큰 말발굽 소리보다 하나님의 소리가 더 크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훈련시켰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큰 물결이, 그 소리가 나를 휩쓸어 가고 내 인생을 덮치면 난파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창조주이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고 스스로 계신 하나님, 그분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내 인생의 고난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어려움과 고통도 얼마든지 건너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40년 동안 눈동자같이 살피신 하나님의 손길과 도우심이 오늘도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을 도우시고 더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허락하실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나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의 문제를 고스란히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큰 물결이 소리를 높이고 큰 물결이 나를 덮쳐 올 때, 그때 그보다 더 높이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건져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홍해 앞에 섰을 때 절망하고 포기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홍해보다 더 크신 분이었고, 하나님은 사막보다 더 크신 분이셨으며, 하나님은 인생에 다가오는 어떤 고난보다, 바로의 군대보다 더 크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인생에 다가오는 어떤 큰 물결보다 더 높이 계시고 더 크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어떤 고난을 당하고 있든지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내 고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내 인생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가정은 분란하고 내 마음은 어지럽고, 우리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지금도 눈물로 지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이 문제 속에서 쓰러지지 않게 하시며,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나를 다스리고 계심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보고 체계와 라인이 분명해야 조직이 건강하게 운영되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누가 나의 창조주이신지, 누가 나를 다스리고 계시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권위를 입으신 분이시며,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십니다. 문제가 생기면 창조주 하나님께 나아가 호소해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해결하려 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영원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권위를 부여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창조한 자도, 하나님께 권위를 준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없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셋째는 우리의 고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시인은 큰 물결이 자신을 덮칠 것 같은 위기 상황을 묘사했지만,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그 큰 물결보다 더 크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보다, 사막보다, 애굽 군대보다 더 크신 분임을 40년간 훈련시키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그것만 보지 말고, 고난보다 더 높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조주이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문제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살피셨던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스리시는 하나님, 스스로 계신 하나님, 고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