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시는 하나님
시편 94편
복수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어떤 분은 시원하다, 통쾌하다, 기분 좋다라고 생각하실 테고, 어떤 분은 두렵다, 떨린다, 무섭다, 끔찍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나라 영화감독 중에 박찬욱 감독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분이 복수 시리즈의 영화를 3편이나 찍었습니다. 2002년에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를 발표했고, 2003년도에는 「올드보이」라는 영화, 2005년도에는 「친절한 금자 씨」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다 복수를 주제로 하는 영화들인데, 이 영화들은 작품성도 뛰어나고 흥행에도 성공했던 작품들입니다.
20년이 훨씬 더 넘는 그때도 복수라는 주제가 우리 사회에 이슈가 되고, 영화가 성공할 만큼 사람들은 복수라는 주제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주제는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관심을 가지는 주제입니다. 넷플릭스 OTT 드라마 중에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습니다. 역시 복수를 주제로 한 드라마였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또 그보다도 훨씬 더 이전부터 복수라는 주제에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는 것일까요?
공적인 공권력이 무너진 사회에서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호소할 데가 없습니다. 나는 힘이 없고 연약한데 너무너무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랜 기간 벼르고 또 벼르며 힘을 축적하고 길러서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혔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 나서서 복수합니다. 이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줍니다. 내가 하지 못했던 복수를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또 소설에서 저 사람이 대신해 주는 것을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복수라는 주제는 사회가 혼란하면 혼란할수록, 공적인 공권력이 무너졌으면 무너질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수라는 주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되겠습니까? 믿는 자에게도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원수라고 표현합니다. 다윗의 언어도 원수라고 표현했고, 시편 기자들도 그런 자들을 원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을 보면 원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일컬어서 복수하시는 하나님, 나를 위해서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복수라는 끔찍한 주제를 하나님과 결부시켜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어둠 속의 탄원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시 94:1)
지금 시인의 상황은 어둠 속에 있는 상황입니다. 빛이 필요한 만큼 그는 어둠 속에 잠겨 있습니다. 그가 왜 어둠 속에 잠겨 있습니까? 원수들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두 번이나 거듭해서 말하는 것을 보면,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 때문에 그는 너무나도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원수를 갚아서 복수해 주시면 내 인생에 빛이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캄캄하고 답답한 인생에 하나님의 복수만이 내 인생을 환하게 밝혀 줄 것 같습니다. 부디 복수하셔서 내 인생을 밝혀 주십시오. 이렇게 노래합니다.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시 94:2-3)
그가 말하는 원수, 하나님이 복수해 주셔야 될 원수는 교만한 자, 악인이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원수를 교만한 자인 동시에 악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악인이 시인에게 어떤 악을 행했는지, 이 교만이 시인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왔는지 구체적으로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미워하십니다. 시인이 굳이 하나님께 복수를 요청하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는 악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교만의 뿌리
세상에 악이 들어올 때 교만으로부터 악이 들어왔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때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이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그 교만의 죄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되고, 가장 뿌리 깊은 죄가 됩니다.
그런데 이 교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의 소유를 곤고하게 하며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며" (시 94:5-6)
과부와 나그네, 고아들은 하나님께서 성경 곳곳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그들을 섬겨 주라고 말씀하신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교만한 자, 악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시인의 원수들, 이들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죽이기도 하고 압제하기도 했습니다. 즉 이 사람들은 교만한 자인 동시에 악한 자들인데,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입니다. 성경 말씀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분명히 돌보고 섬겨주라고 했는데, 그들을 죽이고 그들에게 악을 행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무시하는 것이며, 그런 자가 바로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와도 그랬고 아담도 그랬습니다. "너희가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가 교만한 자고, 그런 자가 악한 자들입니다.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하나이다" (시 94:7)
이 악한 자들, 교만한 자들은 고아와 나그네와 연약한 자들을 압제하고 살해하며 죽이기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모를 것이라고, 하나님이 알았다면 과연 우리가 이렇게 죄를 행하고 악한 일을 행하는데 가만히 두고 보시겠느냐고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아는 자들입니다. 알고도 악을 행하는 자, 이런 자들은 시인에게도 원수인 동시에 하나님에게도 징벌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께 맡김
그래서 시인은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위탁하기로 결단합니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뭇 백성을 징벌하시는 이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이가 징벌하지 아니하시랴" (시 94:8-10)
귀를 만드신 이가 들으실 것이고, 눈을 만드신 이는 분명히 보고 계실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시고,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은 이렇게 악을 행하는 자,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자들을 가만히 보고 계시는 분이 결단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직접 갚아 달라고, 나를 압제하고 나를 괴롭히는 자,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들이니 이 교만하고 악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원수 갚아 주십시오, 복수해 주십시오 하며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심판이 의로 돌아가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가 다 따르리로다" (시 94:14-15)
심판이 의로 돌아간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런 자를 심판하실 것이고, 이 심판은 하나님의 의로움을 나타내실 거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그 악한 자, 교만한 자를 하나님이 복수하시고 원수 갚아 주시는데, 이것이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면 오히려 그들에게는 복이 됩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동안 심판하고 징계당하면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만히 내버려 두시다가, 정말 심판 날 그의 호흡이 끝나는 그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가운데서 그들을 심판하시면 그들은 돌이킬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서든 아니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서든, 하나님은 분명히 그들을 심판하시고 원수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시인은 이 기대를 가지고 심판이 곧 하나님의 의로움이 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복수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자기가 사적인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결단인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어도,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도 나의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평생 살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십시오. 원수를 갚아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대신 이 악한 자를 벌해 주십시오.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가 원수 갚는 것이 내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때부터 우리는 지옥을 살게 됩니다. 스스로 나를 파괴하고, 우리의 인격을 갉아먹고, 우리를 죽이는 일이 마음속에 원수를 품고 사는 일입니다.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다윗의 시편에서도 고백하지 않습니까?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셨다"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나에게는 기름을 머리에 부으셨다"고 다윗이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원수 사울을 직접 그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원수 갚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분명히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께 그저 아뢰고, 하나님께 던지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악을 적극적으로 행해서 악인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과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지 않아서 악인이 됩니다.
둘째는 마음에 원수를 품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악한 말로 원수를 비방하거나, 악한 마음을 마음에 가져서 내 인격을 파괴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탄은 원수 갚고자 하는 마음속으로 들어오며 우리 마음속의 분노를 조장합니다. 마음속의 분노를 버리고, 복수하시는 하나님, 원수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이 문제를 의탁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합니다. 나는 나의 십자가 길을 걷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이 땅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을 해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분한 마음, 억울한 마음, 눈물 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그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가득 차고 행복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