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5편

성경
시편4권

구원의 반석

시편 95편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여정을 생각해보면 생각할수록 이 여정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우선 인원적인 면에서 생각해보면 남자만 60만 명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자, 노인, 어린아이까지 합하면 적어도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애굽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인원이 홍해를 건너는 장면을 상상해 보면 실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광야 40년 여정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토록 많은 수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굶기지 않으셨고, 항상 선한 손길로 그들의 요구와 또 그들이 필요한 것들을 들어주시고 채워주셨습니다. 이것이 광야 40년 출애굽 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여정 동안 원망도 많았고 불평도 많았습니다. 물이 없어서 원망했고, 애굽의 고기 가마 곁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부추를 먹던 것을 그리워하면서 고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항상 입에 원망과 불평을 달고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건이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맛사와 므리바 사건입니다. 역시 그날도 물이 없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찾아갑니다. 모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죽을 곳이 없어서 너희가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여기서 죽게 하려고 하느냐?" 그런 말로 모세의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들을 반석 앞으로 인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반석을 지팡이로 치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그 반석에서 물이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시게 했습니다. 맛사는 '시험'이라는 뜻이고 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맛사와 므리바, 곧 하나님을 시험했고 하나님의 백성들끼리 서로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 중에 대표적인 사건인 맛사와 므리바 사건을 오늘 이 시편의 저자인 시인은 기억하며 이것을 다시 한 번 언급합니다.

완악한 마음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시 95:8)

출애굽기 17장의 맛사와 므리바 사건을 떠올리면서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여정 중 맛사와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던 근본적인 이유를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언제 마음이 완악해집니까? 많이 가지고 있고 넘쳐 흘러가고 있고 부족한 것이 없으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여유로워집니다. 그런데 재화가 부족하고 먹거리가 부족하고 내가 먹을 것도 내가 쓸 것도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그때부터 마음이 좁아집니다. 완악해집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항상 경쟁자로 여깁니다. 내가 쓸 것도 마실 것도 가지는 것도 적은데 혹시 내 것을 저 사람이 다 가지고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좁아지고 완악해집니다. 혹시라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이 한두 가지를 더 가지면 견디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사람들과 다투고 싸웁니다. 조금 더 지나치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주변 사람들과 다투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시 95:9-10)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 다투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조사하는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고서도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보았다는 말이겠습니까? 10가지 재앙을 행하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것을 그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영험하게 생각하는 나일강을 하나님이 피로 물들게 하셨습니다. 고센 땅은 안전하게 지켜 주셨는데 애굽 사람들이 사는 곳은 항상 재앙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설주와 인방에 피 바르고 그 안에 있었던 자는 다 구원해 주셨는데, 애굽 백성들은 바로의 왕자부터 시작해서 모든 백성들이 모두가 다 그날 밤 장자의 죽음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보고서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당신을 시험하고 조사한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논리가 적용됩니다. 지금껏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살면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크고 놀랍습니다. 때마다 채우시고 돌보셨고, 돌아보면 하나님이 하신 일 아니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던 사건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의 입술에는 원망이 달려있고 불평이 늘 따라다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것입니다. "맛사와 므리바에서처럼 너희는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고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는구나."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반석을 찬양

그래서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인이 요청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시 95:1)

반석을 '구원의 반석'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이 시편을 기록한 시인의 먼 조상 되는 사람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되는 사람들은 반석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맛사와 므리바 사건을 행하실 때 반석 앞에 사람들을 모으시고 모세에게 그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반석의 상징적인 의미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항상 반석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구원의 반석이시오, 나의 피난처시오, 나의 요새시오, 항상 그 자리에 계시고 흔들리지 않으시고 나를 건지시고 도우시는 하나님. 세상은 이렇게 매순간 변하고 사람을 속일지라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은 반석처럼 변함없는 분이심을 노래했습니다.

그 반석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물을 내셨으니 우리가 그 반석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자, 이제는 우리가 반석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그 반석 앞에서 노래하자고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반석인데 그들의 조상들은 그 앞에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고, 이 시인은 그 일을 경계해서 교훈 삼아서 반석을 '구원의 반석'이라고 부르자, 이 반석 앞에서 하나님을 무조건 찬양하자, 우리를 구원하고 건져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입니다. 똑같은 반석인데 누구는 그 앞에서 원망을 하고 누구는 그 앞에서 찬양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같은 것을 보더라도 관점이 달라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족한 사람, 자기 일을 잘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시합니다. 덜 떨어졌다고, 저것도 잘 못한다고, 저 사람이 저 일을 못해서 내가 고생하고 수고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부족한 사람들을 보면 내가 채워주고 내가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관점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달라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재화가 부족하고 먹거리가 부족한데 사람들이 많으면 내가 먼저 챙겨야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연약한 자들이 먼저 먹도록 배려해줘야 합니다. 가정을 보더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의 가정에서는 항상 다툼이 넘쳐납니다. 남편을 원망하고 아내를 원망하고 자녀들을 저주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가정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해야 합니다. 관점이 달라야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똑같은 반석을 보더라도 그 앞에서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노래하고 구원의 반석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감사로 나아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시 95:2)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킬 때 실제로 그들에게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한 번도 그들은 사막을 걸어보지 않았는데 사막의 모래바람이 얼마나 거셉니까? 문제가 그들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문제로 여기고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인생길 살다 보면 어려움도 고난도 문제도 닥칩니다. 문제가 다가오면 이 문제 때문에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고 상황을 탓하고 그리고 스스로 자기를 비하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여겨야 합니다. 크신 하나님께서 이것도 해결하시고 풀어가실 거라고, 하나님의 능력이라면 이 모든 문제는 문제도 아니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우리 입술에 넘쳐나야 합니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 95:4-6)

땅과 산과 바다, 온 세상을 하나님이 지으셨는데 불평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입니다. 이 고백입니다.

우리 인생에 물질이 없고 돈이 없고 여러 가지 인간적 난관을 만날 때 원망하지 말고 온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입술에 감사가 넘치게 하시고 내 앞에 있는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실 것입니다. 그 귀한 은혜와 놀라운 경험을 오늘 하루도 경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같은 반석인데 조상들은 그 반석 앞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지도자 모세에게 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맛사와 므리바 사건을 교훈 삼아서 그들은 반석 앞에서 구원의 반석을 찬양했습니다. 오늘 우리 앞에 있는 똑같은 어려움과 시험의 문제들 앞에서 우리 조상들처럼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나를 건지시고 도우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행한 일을 보고서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조사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시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의 반석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땅과 바다와 육지와 온 산과 들을 만드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있는 난관도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건너게 하시고 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인생을 개척하게 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복 주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서도 원망하는 완악한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0가지 재앙, 홍해를 가르심, 구름 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직접 보았으면서도 물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당신을 시험하고 조사하는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작은 어려움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완악한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는 반석 앞에서 원망이 아닌 찬양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똑같은 반석인데 조상들은 그 앞에서 원망했고, 시인은 그 반석을 구원의 반석이라 부르며 찬양했습니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같은 상황을 보더라도 관점이 달라야 합니다. 부족함을 보며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찬양해야 합니다. 문제 앞에서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감사로 나아가야 합니다.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 바다와 육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도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물질이 없고 여러 가지 난관을 만날 때 원망하지 말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셨듯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앞에 있는 어려움과 시험의 문제들 앞에서 원망하지 않고,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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