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배
시편 96편
허리와 무릎, 골반, 어깨 등 근골격계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세가 있는 분들이 이러한 질환으로 병원을 방문하면 퇴행성 질환이려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0대, 30대의 젊은 청년들 가운데 근골격계 질환을 앓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왜 이러한 질환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는지 살펴보면, 진정 피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도 있지만, 운동을 잘못해서 병원을 찾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운동은 해야 하는데 무분별하게 운동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잘못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잘못된 자세로 오랫동안 꾸준히 운동했기 때문에 몸이 뒤틀리고 문제가 생겨서 병원을 찾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우선 통증을 잡아야 하고, 잘못된 자세를 다시 교정해야 하며, 그 이후에 다시 운동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이 굉장히 많이 따르고 시간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운동은 꼭 필요한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당연히 운동해야 하고 그래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운동은 또 한편으로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잘 배워야 하고 바른 자세로 제대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예배의 위험성
이와 같이 예배도 위험한 것입니다. 예배가 왜 위험하냐고요? 우선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니 마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단순히 쉬라고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예배를 전제로 한 안식이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시고 예배의 주인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를 제대로 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배드리다가 사람을 죽인 자들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사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입니다. 형이 동생을 죽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첫 시작이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시고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거기에서 격분한 가인이 결국은 동생을 죽입니다. 예배는 이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아론의 아들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성전 제단에서 불이 나와 그들이 타 죽고 맙니다. 잘못된 예배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방식으로 제대로 예배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예배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이 죽기도 하는 실로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이 드리라고 하시는 방식대로 잘 드려야 우리 영혼이 살고 우리 영혼이 착각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잘못 드리면, 나는 예배를 잘 드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독이 되고 문제가 되어서 우리 영혼을 죽일 수도 있고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시 96:1)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씀합니다.
새 노래의 의미
우선 예배를 제대로 드리려면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예배 드릴 때마다 새로운 노래를 하나님께 불러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우리가 매번, 매일같이 새 노래를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새 노래로 하나님께 나아와 찬양하라는 말은 매일 드리는 예배가 마치 우리 인생에 처음 드리는 예배처럼, 새 마음과 새 뜻으로 하나님께 설레는 마음으로 올려드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길게 신앙생활 하면 할수록 예배드리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50년 정도 신앙생활을 하면 예배를 도대체 얼마나 드렸겠습니까? 1년에 50번씩만 예배 드린다 해도 50년이면 엄청난 횟수입니다. 수요일도, 새벽도, 금요일도, 주일 저녁도, 그렇게 해서 쌓인 예배 횟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 예배가 저번 예배와 같고, 오늘 예배도 지난 주일 예배와 같아서, 전혀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고 즐겁지 않게 됩니다. 예배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새 노래가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오늘 드리는 이 예배가 내 인생의 첫 예배인 것처럼, 혹은 마지막 예배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항상 하나님께 새 노래로 올려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 만나셔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왜 예배드리는 자가 영으로 예배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이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말은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과 생각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며, 감찰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속이겠습니까?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어도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고, 각자 원하고 소망하는 바가 다 다른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 새 노래로 올려드리는 마음입니다. 과거와 똑같은 마음으로, 전혀 기대감 없이, 기쁨 없이, 설레는 마음 없이 나와 있지 말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처음 드리는 예배처럼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항상 나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시 96:2)
예배드리는 자는 전파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는 자입니다. 예배는 예배당에서 나 혼자 은혜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예배의 시작은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배는 예배드리고 난 후에 우리 인생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고 선포하며, 우리 삶으로 예배가 연결되고 이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부르셨습니다. 왜 가나안 땅이었을까요? 가나안 땅에는 믿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그가 참된 예배자였음을 알게 해 주는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사라가 죽었을 때 사라의 장례를 준비하는데,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운 지도자이십니다. 우리 땅 가운데 어떤 것이나 골라 가지셔서 당신의 묘지를 삼으소서." 믿지 않는 헷 족속이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세운 지도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진정한 예배자로 잘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불신자들의 입을 통해서 이런 고백을 듣게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삭이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때 그가 땅을 팔 때마다 우물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빼앗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분쟁하지 않습니다. 다투지 않습니다. 르호봇, 넓은 땅을 주실 때까지 이삭은 다투거나 분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그에게 와서 화친을 청합니다. 조약을 맺자고 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가 승리한 삶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3년간 훈련시키신 다음에 그들을 가두어 두지 않으시고 세상으로 내보내십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고 하십니다. 예배는 예배당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예배를 잘 드렸는지, 우리가 진정 좋은 예배자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나가봐야 합니다. 일터에 가서 시험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지, 그 말씀대로 어렵더라도 제대로 살아내는지를 실천해 볼 때, 그때 우리가 정말 제대로 된 예배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예배를 드린 후에 각자의 삶의 자리로 갑니다. 우리 일터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전하며,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삶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광 돌리는 예배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시 96:6-7)
예배는 영광과 권능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행위입니다. 예배는 내가 영광 받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것이지, 그 어떤 영광도 사람이 그 중간에서 가로채서는 예배가 예배다울 수가 없습니다.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다윗 성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이제 전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통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 성에 앉아서 자기 궁궐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딱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언약궤, 법궤였습니다. 다윗 성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없습니다. 과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터에 나갔다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를 빼앗긴 이후로 아직까지 찾아오지 못했습니다. 저 시골 구석에 내버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오기로 작정합니다.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크고 화려한 수레였습니다. 소가 끌게 합니다. 연도의 백성들을 준비합니다. 찬양합니다. 노래하고 악기가 연주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 오는 일에 동참하고 그것을 살피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들이 뜁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넘어질 것 같아서 웃사가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돌아와서 다윗이 곰곰이 돌아보고 생각하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나님 말씀에 언약궤는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쉽게 생각하고 지나쳐버렸습니다. 자기가 영광 받으려고, 자기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이용한 것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자기 영광을 위한 예배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특별히 설교자, 기도자, 찬양 인도자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 강단에서 기도하는 기도자, 찬양을 지휘하고 찬양을 인도하며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분들은 본인이 영광을 가로채기가 쉽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겠습니까? 결코 그 예배는 좋은 예배가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참된 예배가 어떤 것인지, 예배는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이지만 대단히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예배 방법과 매뉴얼에 따라서 잘 예배드려서 안전하고 복되고 기쁜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는 위험한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예배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죽을 수도 있고, 가인과 아벨처럼 서로가 서로를 살해할 수도 있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엄중함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둘째는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예배, 습관적인 예배,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마치 처음 드리는 예배처럼, 마지막 드리는 예배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는 예배당 밖에서도 예배가 이어져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 예배가 끝나지 않도록,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을 전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참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가로채지 않아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아름다운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