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1-8

성경
시편5권

복 있는 사람

시편 119편 1-8절

시편 119편은 시편 가운데 가장 긴 시편일 뿐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한 장으로서는 가장 긴 장입니다. 시편 119편은 176절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은 단순히 길게 나열된 것이 아니라 매우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 모두 22자인데, 시편 기자는 각각의 히브리어 알파벳에 8절씩을 대칭시켜 놓았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각각의 여덟 절을 모두 더하면 정확히 176절이 됩니다.

시편 119편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 말씀의 완전함, 곧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입니다. 8절씩으로 구성된 각각의 연들도 조금씩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119편을 읽을 때는 8절씩 끊어서 읽어야 하나의 연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19편 1절에서 8절까지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 번째 글자인 알렙(א)으로 시작하는 연이며, 이 첫 번째 연의 주제는 바로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따르는 복

우리는 '복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이미 시편 1편에서 들었습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 이야기는 시편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은 주로 성도를 나무로 표현하고 있는데, 특별히 시편 1편에서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했습니다. 시냇가는 맑고 청량하게 흘러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뿌리를 두고, 그 말씀을 먹고 마시며, 그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나무는 사람들이 보기에 불행한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면 영원토록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관점에서 보면 성도의 삶은 나무와 같되, 반드시 열매가 있습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매는 자기 혼자 먹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먹이고 복되게 하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는 참으로 복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나무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은 뿌리인데, 그 뿌리가 하나님 말씀에 닿아 있으면 그 자체로 복 있는 나무가 됩니다. 시편 1편에서는 복 있는 사람의 반대 개념도 제시합니다. 반대 개념의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으며, 그를 악인이라 불렀습니다. '복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악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악인은 뿌리가 없는 겨와 같습니다. 자유는 있어서 창공을 훨훨 날아다닙니다. 그러나 뿌리가 없기 때문에 열매도 없습니다. 악인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지만,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며, 악인의 길이요, 열매 없는 인생입니다.

시편 119편 첫 번째 연의 주제도 복 있는 사람이며, 이것은 시편 119편 전체의 주제가 됩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시 119:1)

어떤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어떤 존재이건 무엇인가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따르기도 하고, 자기 욕망을 따르기도 하며, 사상을 따라가기도 합니다. 욕망을 따르는 것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만히 놔두어도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죄악된 본성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을 따라가는 것은 그 사람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마음이 가는 사람, 그 사람이 행하는 대로 따라가고 그 사람이 가는 길을 걸어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상을 따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굵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이데올로기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데올로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욕망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복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온 세계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시간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를 알고 계시며, 미래도 알고 계십니다. 종합해 보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당연히 복이 됩니다.

나는 나의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나의 현재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나를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강점과 약점, 어떤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도 평생 동안 알아가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이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참된 복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서 복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4)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따라갔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 중에 가장 큰 복인 믿음의 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러합니다. 주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그물과 배는 가장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었습니다. 마태는 세리로서 세관을 떠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확실한 직업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더니, 그들은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도 있습니다. 도무지 지금 내 상황과는 맞지 않는 말씀도 있습니다. '나더러 이걸 어떻게 따르라는 것인가, 나더러 어떻게 이걸 순종하라는 것인가' 하는 반감이 마음속에 일어나게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지으셨고 내 미래와 장래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잘 모르지만 이 말씀을 따라가고 순종하면 그것 자체가 이미 나에게 복이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신다면 우리는 말씀을 따라갈 힘이 생기고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전심의 복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19:2)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전심의 반대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전심은 온 마음이라는 뜻이고, 전심의 반대말은 분심입니다. 나뉘어진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나뉘어지지 않고, 우리 마음이 분심으로 일관하지 않고, 하나님 마음을 닮아서 하나가 되어 아버지를 따르면 그 자체가 복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다루실 때 분심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살펴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후에 13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분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전심이었는데, 아들을 낳고 나서는 마음이 나뉘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7:1)

이 '완전'이라는 말씀은 행위의 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심을 가지지 말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나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할례를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한 번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삭을 낳은 후에도 역시 마음의 분심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과 이삭 사이에 마음의 갈라짐이 일어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분심을 정리하라는 뜻입니다. 마음에 일어나는 갈갈이 찢겨진 생각들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전심이 곧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 분심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내 마음이 갈라지는지, 무엇 때문에 나뉘어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도 분심을 허락하지 않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우리의 생각도 다 보고 계십니다. 사람은 우리의 표정은 읽어도 마음은 읽어내지 못합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뉘어진 마음들을 사람들은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부디 오늘 우리가 우리 마음을 잘 살펴서 분심을 정리하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복 받는 길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복의 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사람과 내 속의 죄악된 욕망과 사람들이 다 몰려다니는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참으로 복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시고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시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진실로 복 받는 길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씀을 놓지 않고, 그 말씀이 인도하는 바를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셋째는 분심을 정리하고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 때문에 나뉘어진 마음, 이삭으로 인하여 분열된 마음을 하나님은 다시 전심으로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재물과 하나님 사이에, 자녀와 하나님 사이에, 건강과 하나님 사이에, 세상 염려와 하나님 사이에 갈라지고 찢겨진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하나님 앞으로 하나가 되어 정리하고 정돈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서 복이 되고, 마음의 분심을 정리해서 복이 되는 오늘, 진실로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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