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대응 전략
시편 119편 105-112절
요즘은 과거에 비해 자연재해가 훨씬 더 자주, 더 심하게 발생합니다. 과거에는 비가 내려도 어느 정도 적당하게 내렸는데, 요즘은 매우 많이, 빠르게,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기후 위기를 넘어 기후 재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이런 일들을 예측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산불도 일어납니다. 그런데 과거의 산불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뭄이 일어날 때 산불이 겹치면 몇 달이고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큰 위기와 어려움을 겪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전 세계적 팬데믹 전염병 현상도 나타납니다.
이런 위기 상황, 이런 재해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하여 국가적으로는 대응 매뉴얼을 갖추고 있습니다. 국가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단계별로 위기 대책 매뉴얼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행동하면 좋을지 행동 요령을 알려줍니다. 전 국민에게 문자를 발송하기도 하고, 각 지자체별로 대응 대책들을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여 국가적으로 당면한 위기, 기후 위기, 전염병 위기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런 대응 전략들은 있으나, 우리 개인이 당하고 있는 영적인 고난들, 어려운 문제들에 대응하는 우리 개인의 대응 전략 매뉴얼은 가지고 있는지요?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지점을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내 인생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가 영적인 위기일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고난과 영적 위기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가? 오늘 이 시인이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져줍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오늘 우리는 열네 번째 연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14번째 글자인 '눈(נ)'으로 시작하는 8절입니다.
고난과 말씀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 119:107)
시인은 고난이 매우 심하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어떤 고난인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대체로 사람이 고난을 겪는다고 하면 육체적인 환란이거나 재정적인 어려움 등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육체적인 환란이 닥치면 사실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순서상 맞습니다. 재정적인 환란, 어려움을 겪는다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아가야 문제 해결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인은 자기 인생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큰 고난이 닥쳤습니다. 이 고난이 육체적 고난인지, 재정적 어려움인지, 아니면 이로 인한 심리적 불안인지 알 수 없으나 이 시인은 주의 말씀으로 나를 살아나게 해달라고 말씀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렇게 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어리석다고, 어떤 사람은 미련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왜 돈 많은 사람을 찾아가지 않고, 왜 은행에 구하지 않고, 병원을 찾지 않고, 왜 주의 말씀으로 나를 살아나게 해달라고 말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속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의사를 찾아가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한정적이지 않습니까? 내 인생에 위기가 닥쳤을 때 사실 나를 건져주고 도와줄 수 있는 나의 절친한 인연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는 욥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 문제가 닥칠 때 정말 가까웠던 사람들이 구원자가 될 수 있는지, 손을 내밀어서 우리 인생을 건져줄 수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존재합니까? 정말 그런 위기가 닥치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등을 돌리고 모른 척할 이들이 아마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의 위기
남유다의 선한 왕 히스기야를 살펴보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의 왕이 되었을 때 전 세계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는 앗시리아였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북이스라엘은 동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그 자리에 앗시리아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큰 위기였습니다. 이제 앗시리아의 다음 목표는 남유다입니다. 남유다를 정복하고 그다음 아래로 내려가서 애굽과 일대 격전을 벌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때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과 앗시리아의 군대 장관 랍사게가 남유다를 포위하고 쳐들어옵니다. 랍사게는 남유다의 왕과 백성들과 하나님을 조롱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히스기야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무력한 군대들과 나와서 싸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주변에서 앗시리아와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군사를 보내주는 나라가 있겠습니까?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 상황을 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히스기야는 랍사게가 그에게 보낸 편지를 하나님 성전에 가서 펴놓고 기도합니다. 이 편지를 보시라고, 저들의 조롱하는 무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시라고,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큰 고난이 닥칠 때 주의 말씀이 그를 진실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룻밤에 하나님의 군대가 나와서 앗시리아의 군대 18만 5천 명을 멸하셨습니다.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적군 18만 5천 명을 무찔렀습니다. 군사들을 잃고 그들이 어떻게 전쟁할 수 있겠습니까? 산헤립과 랍사게는 자기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그 후에 산헤립은 자기 부하의 손에 암살당하고 맙니다.
우리 인생에 위기가 찾아올 때, 큰 고난이 찾아올 때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들을 살아나게 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큰 고난과 위기가 닥치고 사람이 우리를 건질 수 없을 때, 그때 하나님께 엎드리면 말씀이 우리를 살린다는 위대한 교훈을 오늘 이 시인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위기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시 119:109)
나의 생명이 위기에 있을 때도 시인은 주의 법을 잊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생명이 촌각에 달려 있고 생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도 항상 주의 법을 잊지 않고, 말씀으로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보겠다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18만 5천 명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뒤돌아서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생명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를 찾아와서 말합니다. 네 생명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이제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이 나라를 잘 경영해 보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왕국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 말에 그는 다시 성전에 올라갑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셨는데 의사를 찾아가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생명 연장을 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15년 생명 연장을 허락받았습니다.
결국 믿음의 백성들은 나의 창조주가 누구이신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내 인생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붙들고 계시며 운행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그 창조주께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구하고 엎드리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도 연장시켜 주시고, 내 눈앞에 있는 적군들과 악인들도 해결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악을 선으로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 119:110)
이 말씀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악인들이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숨통을 조여 오지만,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여전히 시인은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악을 악으로 갚았다면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의 생명을 빼앗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그 악의 처분을 맡겼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합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그냥 훌훌 털고 다시 그다음 복음 전하는 자리로 또 걸어갑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그 전에 채찍 맞으셨을 때도 자신을 채찍질하고 못질한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그들에게 악한 말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악을 상대하는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이기려면 우리가 더 악해져야 합니다. 악한 사람을 상대할 때는 악으로 상대해서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만큼 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 그러나 나 스스로는 선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선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마다 주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악에 직면하지 말고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고 말씀을 붙잡으면 악을 누르고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다윗처럼, 바울처럼,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오늘 이 시인이 인생의 위기 대응 전략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고난이 닥칠 때도 말씀으로, 생명의 위기가 찾아올 때도 말씀으로, 악이 우리 인생을 집어삼키려 할 때도 말씀으로, 그는 모든 것을 다 주의 말씀으로 수렴시켜 주고 있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 중에 말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대군이 남유다를 포위했을 때 랍사게의 조롱 편지를 하나님 성전에 펴놓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룻밤에 18만 5천 명의 적군을 무찌르셨습니다. 큰 고난이 닥칠 때 주의 말씀이 우리를 진정으로 살아나게 하십니다.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엎드리면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둘째는 생명의 위기에서도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의 선고를 받았을 때 의사가 아닌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눈물로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15년의 생명 연장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 인생을 붙들고 계시기에 생명의 문제도 그분께 구하면 응답하십니다.
셋째는 악을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악인들이 우리를 해하려 해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이, 바울이,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힘은 내 안에 없고 오직 말씀을 붙잡을 때 생깁니다. 악에 직면하지 말고 말씀으로 돌아가면 악을 누르고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인의 위대한 인생관이 우리의 인생관이 되고, 우리 인생의 모든 위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극복한다는 이 한 가지 사실을 잊지 않는 하루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