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113-120

성경
시편5권

한 마음의 신앙

시편 119편 113-120절

남녀가 만나서 서로 교제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호감이 생깁니다. 그 호감이 잘 발전하면 본격적인 교제로 나아가고, 교제가 잘 이루어지면 열매를 맺어 결혼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교제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고 문제가 생겨서 이별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남녀가 이별하는 데는 수십 가지 혹은 수백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교제하다 보면 잘 몰랐는데 서로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르며 관심사가 달라서, 이 사람과는 도저히 결혼에까지 이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는데 두 집안의 반대가 너무 심해서 두 사람이 그 반대를 넘어서지 못하기도 합니다. 혹은 장거리 연애가 너무 힘들어서 이별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별의 경우 중에 최악의 경우는 상대방이 양다리를 걸친 것을 알았을 때입니다. 이런 경우는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상대에 대한 배신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고, 동시에 이런 사람을 잠시나마 사랑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서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도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다 감찰하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마음 중심이 어디로 치우쳐 있는지, 우리 마음이 두 갈래 혹은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는지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괴로우시겠습니까? 차라리 그 속마음을 모른다면 모를까, 마음의 생각을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살피고 들여다보고 계실 때마다 배신감을 느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 우리는 15번째 연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15번째 글자인 '사멕(ס)'으로 시작하는 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시 119:113)

시인은 주의 법을 사랑한다고 확언합니다.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오직 유일한 한 가지 마음,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한다고 하나님 앞에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그렇다면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시인이 이 시를 기록할 당시, 이 시를 노래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아니면 바알을 섬겼습니다. 혹은 하나님과 바알을 둘 다 섬기는 혼합주의자들이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바알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위선적인 신앙인들도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이 알려진 것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그들은 바알 신앙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니 가나안 원주민 일곱 족속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바알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그들을 진멸하고 다 내보내라고 명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 신이 무엇인가 물으니 그들은 말했습니다. 풍요의 신이라고, 너희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신이며 농사를 잘 되게 해주는 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에 이스라엘은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자동적으로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과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셨던가? 하나님이 풍요의 신이셨던가?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하나님은 적어도 풍요의 신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종으로 두고 보셨지, 풍요의 신으로 그들에게 군림하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를 헤맸습니다. 광야에서 만나도 주시고 메추라기도 주시고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지만, 그들을 부자로 살게 하신 적은 없었습니다. 풍요의 하나님은 아니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알이 풍요를 안겨준다고 말하니, 실제로 그들이 눈으로 보니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보다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좋은 집에 살며, 그들은 농사도 잘하고 목축도 잘했습니다. 그러니 그때 바알 신앙이 그들 속에 깊이 침투하게 된 것입니다.

참된 풍요의 하나님

그런데 참으로 그들은 단견이었고 미련했으며, 하나님을 입체적으로 전체적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바알이 어떻게 그들에게 풍요를 안겨줄 수 있겠습니까? 바알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인데, 그들이 손으로 우상과 형상을 만들어 놓고 바알이라고 칭했을 뿐입니다. 그 신이 우리에게 풍요를 안겨준다고 말했을 뿐, 정말 그들에게 풍요를 안겨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삭은 원래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삭은 목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기근이 들자 이삭이 목축하던 짐승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가기 위해서 남으로 가다가 블레셋 지경 그랄까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멈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했고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농사꾼도 아닌데, 목축하는 사람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해에 백 배나 얻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심에 그가 마침내 거부가 되어 부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삭은 단 한 번도 땅을 파서 우물을 얻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땅만 파니 우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풍요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무엇이겠습니까? 농사 한 번도 짓지 못한 사람을 그 해에 백 배나 얻게 하셨고, 땅만 파면 우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시는 풍요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들어 사용하시니 다윗이 전쟁하는 곳마다 승리하고 이기게 하셨으며, 다윗의 창고에 전리품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이 풍요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무엇이겠습니까?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련하고 어리석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의 하나님이시기는 하나 풍요를 주시는 물질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총괄적으로 다 돌보시고 세우시며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마음이 악으로 드러남

"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시 119:115)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 마음을 품어서, 이 두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 자들은 그 다음 단계로 진행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을 단언컨대 행악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시인은 이런 행악자들과 함께하지 않겠다며, 나를 떠나라고 선언했습니다.

두 마음만 품었을 뿐인데 어떻게 악을 행하는 자가 됩니까? 그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두 마음이 언젠가는 밖으로 터져 나온다는 뜻입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우상을 섬기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바알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재물을 섬기는 혼합주의의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는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시내산에 율법 받으러 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아론을 통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뛰어놀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금송아지도 섬기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항상 물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 그것이 악이 되어서 뛰쳐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을 잘 살펴야 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은 내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시간입니다. 마음이 나뉘어져 있으면 나뉘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마음을 살피고 돌이키며, 마음을 가지치기하고 돌보고 끊어내서 그 마음이 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찌꺼기처럼 버림받는 자

"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시 119:118)

두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멸시한다고 하셨습니다. 멸시한다는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멸시하시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올려드리는 기도를 받지 않으시고 우리를 멸시하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탓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을 가지지 않고 두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히 하나님 자리에 바알을 가져다 놓고, 감히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물질을 가져다 놓고 사람을 두었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존귀하게 여김을 받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 받기를 원하시지, 마음은 분심으로 갈기갈기 찢겨 있는데 물질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마음은 나뉘어져 있으면서 하는 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치 않으십니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시 119:119)

하나님은 이런 두 마음을 가진 자를 악인들이라고 하셨고 찌꺼기같이 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찌꺼기는 모아서 버립니다. 결국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을 하나님은 모으고 모으고 또 모아서 한꺼번에 처리하실 것입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어서 불태워 버리시는 것처럼, 가라지를 가만히 두시다가 심판 날에 뽑아다가 한꺼번에 불태워 버리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두 마음 가진 자를 찌꺼기같이 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여김받고 찌꺼기같이 여김받지 않으려면 오늘도 우리 마음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하나님의 제단에 올려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혼합주의, 하나님도 사랑하고 재물도 사랑하는 분심은 결국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오직 한 가지 마음,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는 두 마음이 악으로 드러남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품은 두 마음은 언젠가 반드시 악한 행동으로 터져 나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내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시간입니다. 나뉘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마음을 살피고 돌이키며, 악이 되기 전에 끊어내는 영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존귀히 여김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멸시하시고 찌꺼기같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를 하나님은 존귀히 여기십니다. 물질이나 행위가 아닌, 온전히 하나로 모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참된 복을 누리게 됩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온 이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핍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있는 마음, 물질을 향해 달려가는 마음,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걱정과 염려와 근심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을 다시 주님 앞에 이끌고 와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유혹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나뉘어지지 않도록, 오직 한 가지 마음 주를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오늘 하루를 견디며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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