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121-128

성경
시편5권

변치 않는 소원

시편 119편 121-128절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이루고 싶은 소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원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10년 전 가지고 있었던 소원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람도 있고 바뀐 분도 있습니다. 아주 어릴 때 가졌던 소원이 지금까지 그대로 있는 분도 있고 바뀐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원은 나이에 따라,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조금씩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철 모를 때는 그저 학교 가지 않고 신나게 놀아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취업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결혼 적령기를 앞두고 있는 처녀 총각들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 소원이고, 노년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은 건강하게 살다가 하나님 부르시는 그날에 자는 듯이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소원은 이렇게 상황, 시대, 자기 환경에 따라 바뀝니다.

그런데 정말 바뀌지 않는 소원이 있다면,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소원이 있다면 그 소원이야말로 진짜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가져야 할 본질적이고 변하지 않는 세 가지 소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오늘 우리는 열여섯 번째 연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 중에 열여섯 번째 글자인 '아인(ע)'으로 시작하는 여덟 절입니다.

보증의 소원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119:122)

시인이 하나님께 담대하게 구하는 첫 번째 소원은 "주의 종을 보증해 주십시오"라는 소원입니다. 나를 보증해 주십시오. 우리는 보증이라는 말을 언제 사용합니까? "이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니 이분의 신원을 내가 보증합니다." 비록 이 사람이 지금 일시적으로 경제적 위기를 겪고 있으나 당신이 이분에게 돈을 빌려주시면, 이분이 꽤 괜찮은 사람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니 정해진 기한에 이자를 내고 돈을 꼭 갚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증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보증한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내가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하나님, 내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서 보증해 주십시오. 나를 비방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증해 주시고,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보증해 주십시오. 이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담대하고 당돌한 소원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자신을 보증해 달라고 말하는 이유와 까닭이 있습니다.

"내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나를 넘기지 마옵소서" (시 119:121)

정의와 공의를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렇게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와 '체다카'는 사실 구약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께서 이 나라와 백성들, 당신의 사람들에게 항상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정의와 공의, 둘 다 의로움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자기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정의롭고 공의롭게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제가 하나님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행했사오니, 이제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보증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실 다윗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보증해 달라고 부탁하는 당돌한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그때 쫓겨나서 그가 갈 곳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쫓겨난 다윗이 어디를 가겠습니까? 자신을 따르는 군사들과 함께 길을 나서긴 했는데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무기도 없습니다.

다윗은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갔습니다.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했더니 아히멜렉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성전에서 물려낸 진설병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떡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거라도 갖다 드릴까요?" 선택은 당신 다윗이 하라는 말입니다. 사실 구약시대에 율법이 얼마나 엄격합니까? 제사장들만 먹는 떡을 다윗이 먹었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떡을 달라고 합니다. 자기도 먹고 함께한 군사들에게도 나누어 줍니다.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이 자기 인생을 보증해 주신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이루어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특별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정도로 나를 벌하시지 않는다고, 지금 내 처지와 형편이 이거라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온 당돌하고 담대한 행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이 정도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고 순종하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라면, "하나님 내 인생 보증해 주십시오"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어기기가 일쑤고 말씀대로 제대로 살지 않는다면 이런 담대한 소원도 아뢸 수가 없습니다. 염치가 없어서입니다. 부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정도 소원을 말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가 잘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매 순간 말씀을 뿌리에 두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서 "하나님 내 인생 보증해 주십시오, 누구에게라도 하나님 나를 확실히 보증해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는 당돌하고 능력 있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르침의 소원

"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시 119:124)

시인이 부탁하는 두 번째 소원은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입니다.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에게 깨닫고 알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시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앞에 앉혀놓고 성경을 읽어주며 마치 과외 선생님이 학생을 지도하는 것처럼 하나하나 일일이 가르치는 것, 그것만 포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포함해서 예배드릴 때 말씀 주시고, 성경 읽을 때 깨닫게 하시고, 성경 공부를 통해 가르치시는 것까지 포함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례들을 가르치시는 것은 전반적인 것을 다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출애굽 40년 여정 동안 그들에게 자연환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가르치십니다. 홍해 앞에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홍해를 갈라주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가르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니 바다가 갈라지고 사막에 길이 생기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글로 아무리 읽어 봐야, 우리 인생의 눈앞에서 그런 일이 정말 생겨나지 않으면 주의 율례들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농사짓지 않았는데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기도하고 구하며 주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을 굶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주의 율례들을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환경과 상황으로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깨달음의 소원

"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시 119:125)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항상 가르쳐 주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민하지 못해서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세 번째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이 전심을 다해서 가르치시는데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그 가르침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매 순간 가르치십니다.

우리 하루하루 인생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오늘 하나님이 나를 교육하기 위해서 동원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의 해와 달을 동원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행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교훈을 알려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배우는 자세로,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구나, 가르치시는구나"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보여주시는데 보지 못하고, 들려주시는데 듣지 못하고, 알려주시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영적으로 무지하고 아둔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소원이 변하지 않는 아주 중요한 본질적인 소원입니다. 이 소원이 현실이 되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 인생을 보증하시고, 율례들을 가르치시고, 가르치시는 말씀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삶에 소원이 성취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보증을 구하는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이 제사장들만 먹는 진설병을 달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말씀대로 살아온 사람만이 "하나님 내 인생을 보증해 주십시오"라고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매 순간 말씀을 뿌리에 두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하나님께 당돌하게 보증을 구할 수 있는 깊은 관계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말씀애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만이 아니라 자연환경과 상황을 통해서도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가르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며,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모든 환경을 통해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십니다. 글로 아무리 읽어 봐야 실제로 경험하지 않으면 참된 배움이 되지 않습니다.

셋째는 깨달음을 구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심을 다해 가르치셔도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그 가르침은 헛됩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매일 겪는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는지 예민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보여주시는데 보지 못하고, 들려주시는데 듣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무지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변치 않는 소원이 우리 삶에 온전히 성취되고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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