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문을 열면
시편 119편 129-136절
젊은 시절에는 열심히 다니고 바쁘게 움직이며 열심히 뛰어다니느라 몸에 군살이 붙을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움직임이 좀 덜해지고, 먹는 양에 비해서 활동이 떨어지기 때문에 몸에 군살이 여기저기 붙습니다. 군살을 빼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덜 먹고 운동을 많이 하면 됩니다. 운동을 하면 좋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움직이고 운동하고 뛰어다니면 몸에 신진대사도 좋아지고,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지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먼저 운동하고, 달려가고, 적게 먹고, 몸을 계속 움직이고,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운동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면 몸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10월은 가을이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입니다. 책을 열고 독서하면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책 읽고 독서하기 시작하면 지식도 생기고 마음의 양식이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면 내 영혼도 윤택해집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하는 것, 책 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책을 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성경 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성경 읽으면 내 영혼이 행복해지고, 죄를 이기는 능력도 생기고, 무기력도 깨칠 수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여는 것이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말씀을 열어야 할 이유를, 성경을 읽어야 할 이유를 우리에게 하나하나 조목조목 가르쳐 줍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 17번째 연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열일곱 번째 글자인 '페(פ)'로 시작하는 8절입니다.
빛이 비침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주의 말씀을 우선 열기만 하면 내 인생에 빛이 비친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빛이 처음 나오는 장면은 창세기 1장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은 창조의 장입니다. 창조 이전의 상태를 성경이 말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즉 창조 이전의 상태는 흑암의 상태, 캄캄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심에 빛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흑암이 물러가고 온 세상이 환한 빛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열면, 우리가 성경을 읽기만 하면, 성경을 읽으려고 말씀을 열기만 하면 내 인생에 빛이 비친다는 뜻입니다. 즉 내 인생이 새로운 창조로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열기 전에, 성경 말씀을 읽기 전에 그때 우리 인생의 상태는 어땠다는 말입니까? 흑암의 상태였다는 말입니다. 캄캄한 흑암의 상태, 말씀이 없는 상태, 우리 영의 상태는 바로 캄캄하고 소망 없고 희망이 없는 그런 어둠의 상태였습니다.
어둠의 상태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장애물이 있어도 장애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장애물에 걸려서 다치고 넘어지고 깨집니다. 또 어둠의 상태, 흑암의 상태는 죄악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주로 강력한 범죄는 한밤중에 일어납니다. 한밤중 캄캄한 상태는 범죄자들을 부추깁니다. 그들을 담대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말씀을 열기 전에는 죄가 관영하고, 장애물이 있어서 죄 가운데 약하고 넘어지기 일쑤였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생에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죄가 떠나가고, 장애물을 발견하고 피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역사가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인생에 들어와서 내 인생이 새롭게 리모델링됩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두 번에 걸쳐서 430년간의 긴 공백이 나오는 곳이 있습니다. 처음의 공백은 창세기가 끝나고 출애굽기가 시작되는 장면, 그 장면이 430년간의 길고 긴 공백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50장을 읽었다가 출애굽기 1장을 넘어갈 때 쉽게 넘어가지만, 사실은 430년간의 길고 긴 공백,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430년간 침묵하셨습니다. 말씀이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시고 모세를 찾아가셔서 처음 입을 여시는데, 그때부터 하나님 말씀이 시작됩니다. 그러면 이 430년 동안 말씀이 없던 상태, 그들의 인생의 상태가 어땠습니까? 그때는 죄악의 상태였고 노예의 상태였습니다. 430년 동안 그들은 애굽에서 말씀 없는 상태로 살면서 긴 노예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를 통해서 주어지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가 달라집니다. 말씀이 들어오니 그들은 길고 긴 노예의 사슬을 끊고 출애굽하게 됩니다. 죄를 끊어내게 된 것입니다.
말라기가 끝나고 마태복음이 시작될 때,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될 때 그때도 430년간의 길고 긴 공백입니다. 그런데 그 공백의 기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때 이 세상은 어땠습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이 세상의 상태는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상태였습니다. 로마 권력이 세상의 최고의 권력이었습니다. 그때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전부 다 타락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눌림이 있었고, 죄가 관영했습니다. 캄캄한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고 나서부터 질서가 생깁니다. 어둠의 시간은 질서가 없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 말씀을 열기 전 우리 인생은 무질서했습니다. 내 경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았지만 말씀의 문을 열면 빛이 들어오고, 죄가 떠나고, 질서가 생기고, 장애물을 분별하게 됩니다.
부디 이렇게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며 말씀의 문을 닫지 말기 바랍니다. 오늘도 이 새벽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열었습니다. 말씀의 문을 여는 순간 우리 인생의 문이 열립니다. 내 인생에 꽉 막혔던 것이 새롭게 되고 문이 열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의 새로운 변화가 말씀의 문을 열면서 놀랍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발걸음을 세움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시 119:133)
말씀의 문을 열면 일어나는 변화, 나의 발걸음을 굳게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기 전 내 발걸음이 그렇다면 어땠다는 말입니까? 내가 걷기는 걷지만 사실은 나도 내 발걸음, 내 지평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까지는 항상 불안했습니다. 이것이 진흙탕인지, 여기가 늪인지, 여기가 단단한 땅인지, 허공인지 분별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땅을 파놓고 나뭇가지를 덮어놓고 함정을 파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까지는 매 순간 불안했습니다. 내 존재의 자리가 항상 불안한 허공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읽고 나서부터는 내 발걸음이 항상 단단한 바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하지 않고, 내 존재가 단단한 걸음을 굳게 세우시는 경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이 단단한 바위 위에 서 있는 경험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사울을 비교해 보십시오. 사울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었지만 불안했습니다. 왕이었지만 항상 불안하고 왕권이 두려웠습니다. 누군가가 이 자리를 뺏을까 봐, 누군가가 이 자리를 차지할까 봐 항상 불안하고 염려되고 걱정되었습니다. 왕의 자리가 자신의 입지를 굳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있는 사람은 광야를 헤집고 다니며 피해 다녀도 그의 발걸음은 굳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다리를, 그의 지평을 굳세게 지켜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 발을 딛고 삽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지켜주시고 세워주시는 놀라운 주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기를 바랍니다. 경험도 우리 인생을 굳게 세우지 못하고, 우리의 지위도, 물질도 내 발걸음을 굳세게 만들어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만이 우리 인생을 붙들어 주시고 굳세게 세워주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박해에서 구원
"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시 119:134)
말씀의 문을 열면 일어나는 또 놀라운 변화는 사람들의 박해에서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고, 혹은 우리를 무시하고, 혹은 우리 인생을 유린하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열면 그 박해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건지시고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박해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박해의 끝은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영광에 이르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에도 어려움과 고난, 박해와 십자가가 다가오고 닥친다 할지라도 염려하지 말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의 말씀이 우리를 박해에서 건지고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헐떡임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시 119:131)
입을 열고 헐떡이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을 때, 목이 너무 마른 사슴이 물을 찾을 때 짐승들이 헐떡이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열면 일어나는 놀라운 변화들, 그것을 알고 사모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문을 열면 박해가 사라지고, 내 인생을 굳건하게 세우시고, 캄캄한 어둠에 빛이 들어오는데 어찌 말씀을 향하여 헐떡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서 갈급해서 헐떡이는 영혼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돈이라면 사죽을 못 쓰고 물질에 헐떡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들의 사랑에 헐떡입니다. 사랑이 모자라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에 갈급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해서 헐떡이는, 물을 찾는 사슴처럼 갈급한 영혼들로 오늘 하루도 지혜롭게 믿음대로 능력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칩니다. 창조 이전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말씀의 문을 열면 내 인생에 빛이 비치고, 죄가 떠나가며, 장애물을 분별하게 됩니다. 430년간 말씀이 침묵하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노예 상태였고 세상은 어둠의 시대였습니다. 말씀이 들어오니 노예의 사슬이 끊어지고 질서가 생겼습니다.
둘째는 말씀이 우리의 발걸음을 굳게 세웁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말씀이 없어서 항상 불안했습니다. 다윗은 광야를 헤매면서도 말씀이 있었기에 발걸음이 굳건했습니다. 경험도, 지위도, 물질도 우리 인생을 굳게 세우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단단한 바위 위에 세워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셋째는 말씀을 사모하여 헐떡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에, 사랑에, 권력에 헐떡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헐떡여야 합니다. 말씀의 문을 열면 박해에서 구원받고, 인생이 굳건해지며, 어둠에 빛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새벽 하나님의 말씀의 문을 연 우리 인생에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