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고 순수한 말씀
시편 119편 137-144절
저녁에 회식을 하게 되면 그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러면 혼자만 먹는 것이 어떨 때는 좀 미안하고 집에 있는 가족들이 생각납니다. 부모님, 자녀들, 아내, 가족이 생각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고 여건이 되면 꼭 함께 와서 이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직장인들이 멀리 출장을 가면 마침 출장 간 곳이 경치가 정말 좋으면 또 집에 있는 가족이 생각납니다. 함께 이 자리에 와서 이 좋은 경치를 보고 함께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좋은 것을 먹거나 좋은 것을 보면 가장 사랑하고 또 가까운 사람이 생각나는 법입니다.
전도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되면 내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빛나는 진리를 마음속에 깨닫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여태껏 몰랐던 이 놀라운 구원과 복음의 역사를 아직도 모르고 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해방감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데, 이 놀라운 복음의 말씀을 내 가족에게, 친지에게,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전도는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현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고 귀하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열기 전에는 몰랐던 그 귀한 역사를 경험한 후에 변화된 자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 말씀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지를 깨닫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직까지 말씀의 깊이를 모르는 자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오늘 우리는 열여덟 번째 연을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열여덟 번째 글자인 '차데(צ)'로 시작하는 8절입니다.
의롭고 옳은 말씀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시 119:137)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의로우시고 그분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의롭고 주의 판단이 옳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냥 말씀대로 쭉 살았더니, 다른 길로 가지 않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이 하라는 대로 했더니, 처음에는 몰랐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의 말씀이 의롭고 주의 판단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성경에서 디모데와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합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서 성장하지 않습니까? 한 번도 이 아이가 빗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아직 성인이 되기 전에 그는 사도 바울을 만났고 바울을 따라서 2차 선교 여행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평생 동안 바울과 함께 동역하면서 그는 주의 말씀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가 어려서, 아주 어려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의로운지 옳은지 그것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떠나지 않았더니 나중에 시간이 한참 가서야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옳았습니다, 주의 말씀은 의롭습니다, 제가 떠나지 않기를 잘했습니다 하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다른 데 갔다가 온 사람들, 한 번 멀리멀리 떠났다가 온 사람들은 더 절실하게 주가 의로우시고 옳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 같은 분이 바로 그런 사람 아니겠습니까? 다른 데 길이 있는 줄 알고, 세상에 여기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 줄 알고 멀리멀리 갔다가 실패하고 쓰러지고 무너졌는데, 그런데 다시 돌아와 보니 하나님 같은 분이 없었고 그의 말씀이 의롭고 옳다는 것을 그제서야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어떤 경우든지 그 자리에 있다가 깨달았든지, 멀리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깨달았든지, 어쨌든 주의 말씀은 지금 우리가 판단할 때는 잘 몰라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의롭고 옳다는 것을 우리는 누리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홍해와 사막의 길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신 길이 홍해를 건너고 또 사막에 길을 내신 아주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 길을 좀 아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이곳으로 인도하시는지 몹시 의아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빠른 길은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입니다. 성경도 그 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길은 두 가지 의미에서 아주 좋습니다. 첫째는 빠릅니다. 애굽에서 출발하여 가나안 땅까지 가는 아주 빠른 길입니다. 두 번째는 경치가 좋습니다. 왼편으로는 지중해의 좋은 바다 경치를 구경하면서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을 맞아가면서 정말 행복한 지중해성 기후를 느껴가며 행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인도하지 않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이들은 호전적이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한 번도 전쟁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들과 전쟁하게 되면 돌이켜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까봐 하나님은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돌이킬 수 없는 곳,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 길이 홍해를 건너는 길이었고 그 길이 사막을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제는 최악의 도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더 이상 갈 길이 없습니다. 길을 모릅니다. 다시 어떻게 바다를 건너서 돌아갑니까? 다시 어떻게 사막을 횡단해서 돌아갑니까? 그래서 출애굽을 다 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하나님의 판단은 옳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의로우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생 지금까지 살아오신 인생 여정들을 돌아보면 그때그때는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가면 갈수록 그때 하나님이 나를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사막길을 횡단하게 하셨고, 그래서 지금 나를 여기 이곳에 오게 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판단은 의롭습니다, 당신은 옳으십니다 하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우리 인생에 매순간 매순간 하나님은 의롭고 옳다는 것을 늘 경험하고, 아직까지 그것을 잘 모르는 자들에게, 아직까지 여전히 암중모색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믿음이 어린 우리 가족들과 자녀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옳다는 것을 전하고 또 알려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순수한 말씀의 능력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시 119:140)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해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순수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 자체가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곧이곧대로 잘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사기도 당하고 실망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너무 순진해서 세상 사람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으면 우리는 항상 큰 코 다치기가 일쑤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가려서 듣고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자기 자랑도 섞여 있고, 그 안에는 남을 등쳐먹으려고 하는 못된 사기꾼의 기질도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피곤합니다. 이 사람들의 말을 어디까지 들어야 되고 어디까지 믿어야 될지, 도대체 이 거짓말을 내가 언제까지 듣고 있을까 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사람을 항상 의심하는 의심병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순수합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순수한가, 그대로 믿어도 되는가, 거기에 거짓이 없는가 하는 것은 그 말씀 붙들고 살아본 자들이 간증하고 고백합니다. 말씀대로 살았더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더니 정말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다 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사랑했더니 내 마음속에 사랑이 더 넘쳐났습니다. 너희가 받고 싶은 대로 먼저 베풀고 나누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내 곳간과 창고가 더 채워졌습니다. 이런 간증들이 얼마나 많이 넘쳐납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의 말씀을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여도 됩니다. 그것을 우리가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의심 없이 그대로 받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성경을 분석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가짜인지 진짜인지 따질 필요 없이 그냥 그대로 받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성경이 죄라고 하면 죄고, 성경이 옳다고 하면 옳은 것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다는 것은 원어에서 '차라프'라는 단어가 정결하게 하다는 뜻을 가진 타동사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순수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순결하게 만듭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갔더니 나도 모르게 나도 순결해졌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거짓과 위선으로 뒤덮여져 있었습니다. 믿는다고는 했는데 건성건성 대충 믿었기 때문에 우리 인생도 항상 뒤죽박죽이었고 나도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우리도 순수한 삶이 되었습니다.
말씀은 우리 속에 있는 불순물을 빼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오면 정화작용을 하는데, 거짓과 위선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이것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말씀 좀 읽으라고, 말씀대로 살아보라고, 우리를 순수하게 만들어주니, 거짓 없이 만들어주니, 새 사람 되게 해주니, 말씀 읽으라고 나누고 싶지 않겠습니까?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의 말씀이 의롭고 옳다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넓은 길, 경치 좋은 길, 빠른 길을 두고 왜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사막을 횡단하게 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말입니다. 주의 판단은 의롭고 그분은 옳으십니다.
둘째는 주의 말씀이 순수하므로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에는 자기 자랑과 속임수가 섞여 있어서 분별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순수하여 불순물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았더니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한 자들은 성경을 분석할 필요 없이 그대로 받고 그대로 믿습니다. 이것이 참된 행복입니다.
셋째는 주의 말씀이 우리를 순결하게 만드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들어와 정화작용을 합니다.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우리를 순수하게 만듭니다. 이것을 경험한 자로서 아직 믿지 않는 자들에게, 믿음이 어린 분들에게 전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경험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것이 당연하듯, 말씀의 능력을 경험한 자는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귀한 말씀, 주의 말씀이 의롭고 항상 옳은 말씀, 우리를 순결하게 하고 순수하게 만들어주는 말씀을 붙잡고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도 경험한 자로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혹은 아직까지 믿음이 어린 분들에게 전하고 나누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