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의 변호인
시편 119편 153-160절
평생을 살아도 법원에 갈 일이 거의 없습니다. 법정에 서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또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살다 보면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에 악의를 품고 엉뚱한 사람들,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인생이 그들로 인해서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과정과 절차적 정의, 증거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고, 법정에서 내 억울함을 호소하고 해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법적 공방에서 반드시 내가 승리한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면서, 결국은 법의 도움을 받으려면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사람이 나를 변호해 줄 사람입니다. 변호사를 만나서 나의 법률 대리를 부탁하는 순간, 그때부터 법률 서비스가 시작됩니다. 정말 내가 억울하다면, 나에게는 하나의 문제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변호사가 힘껏 도와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승리를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진술만으로는 이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시인은 세상의 변호사가 아닌, 세상의 권세 있는 자,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자기의 변호인으로 삼습니다. 시편 119편 22개의 연 중에서 스무 번째 연을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 중에 스무 번째 글자 '레쉬(ר)'로 시작하는 여덟 구절입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음
"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시 119:153)
나의 고난을 봐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봐서 시인은 대단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나를 건져달라고 부탁합니다.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고난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고, 하나님께서 나를 건져 달라고 호소합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런데 이런 일이 나에게 찾아와 버렸습니다.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내가 수렁에 빠졌는데 이 고난을 풀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 지금 처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고난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옵니다.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삼음
그런데 특별히 의미 있는 말을 합니다.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시 119:154)
주께서 나를 변호해 달라고, 곧 하나님께서 나의 변호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실 시인이 하나님께 나를 건져 달라고, 내 고난을 직접 살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탁, 이런 청원 기도를 수없이 많이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변호해 달라고, 나의 변호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구절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이렇게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내가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변호인으로 선임한다는 것, 이것은 첫 번째로 내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에 문제가 있으면 감히 하나님 앞에 나를 변호해 달라고 부탁할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깨끗해야만 하나님께 변호를 부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의뢰인들도 자기가 선임한 변호인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문제적 상황을 그대로 다 설명해야 합니다.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 한 점 껄끄러움이 있어서는,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법정에서 100퍼센트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가 숨기는 것이 있는데 그 문제를 상대방이 알고 법정에서 드러내면, 우리 변호인이 방어하고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나의 변호인으로 선임할 때는 내가 정결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나를 변호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 내 속을 보이며 기도할 때, 우리가 우선 정결하고 깨끗해야 하나님께 호소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죄가 있는데, 내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온다면, 하나님은 그 죄를 보시고 우리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 그것부터 해결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잘못한 것이 생각나면 가서 형제와 화해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곧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열납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문제가 없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예배드림이 정말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이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내 억울함을 호소하려면 우선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깨끗한가? 나는 문제가 없는가? 죄가 없는가? 이것부터 제대로 살펴야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 사람은 완전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 시인이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삼는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억울한데 사람을 찾아가서는 이 억울함을 100퍼센트 해결해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불의한 재판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 주님께서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어느 한 도시에 불의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재판장이 그분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과부는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 자신의 원수에 대한 모든 문제들을 이 재판장에게 가서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재판장 자체가 불의합니다. 불의하다는 말이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뇌물을 받아먹는다거나 권력 앞에서 굴복한다거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부는 이 사람이 불의한 재판관인 줄 알면서도 계속해서 찾아갑니다. 그러자 이 불의한 재판관이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귀찮아서, 매일 찾아오니까 귀찮아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되겠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결국 세상의 불의한 재판관도 자신이 거추장스럽고 불편해서라도 문제 해결을 하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을 지으시고 돌보시고 내가 죄 없는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변호하신다면, 우리 인생은 그야말로 그때부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찾아가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세우는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문제가 닥치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하나님을 찾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분명히 반드시 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셋째,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이 시인이 정말 잘한 것, 하나님께 찾아와서 변호를 부탁한 것의 세 번째 이유는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법적 절차를 밟는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답답한 일이 계속해서 자기 인생에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사실 악한 사람을 만나면 내가 더 악해져 버리면 오히려 쉽게 풀릴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방식이 그렇지 않습니까? 주먹에는 주먹으로, 돈에는 돈으로, 악에는 악으로 대응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내가 훨씬 더 악해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상대는 더 악해져서 나를 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사람과 같은 방식으로 상대하지 않고 방향을 돌려서 하나님께 찾아온 것,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삼는 것은 정말 잘한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억울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호소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정확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말씀이 판결의 기준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시 119:154)
시인은 하나님 앞에 막무가내로 나를 변호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법전이오니, 이 말씀을 기준으로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를 벌주시고, 상대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를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공평과 하나님의 정의는 그 기준이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 내 인생을 끌고 갈 때, 그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말씀을 기준으로 판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시 119:160)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면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우리가 하나님을 굳이 변호인으로 선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직접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 그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자를 도우실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억울할 때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변호사나 권세 있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우리의 변호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람은 우리의 억울함을 100퍼센트 해결해 줄 수 없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공의롭게 판결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호소에 응답했는데,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시겠습니까?
둘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변호인으로 선임하려면 내게 숨기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 한 점 껄끄러움이 있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와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인생에 죄가 없어야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악을 악으로 대응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악한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더 악해지면 문제가 쉽게 풀릴 것 같지만, 결국 악의 순환만 계속됩니다. 방향을 돌려 하나님께 찾아오는 것이 문제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해결하는 길입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판결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변호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하루 살아가시면서 주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변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능력을 늘 기억하고, 승리하며 복된 하루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