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161-168

성경
시편5권

말씀 사랑의 변주

시편 119편 161-168절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라면과 떡볶이 정도를 꼽을 것입니다. 라면을 좋아하고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조리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입니다. 라면을 무슨 조리해서 먹는가, 그것을 조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음식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나, 레시피를 찾아보면 수백 가지가 넘습니다. 물의 양이 각자가 다 다르고, 취향에 따라서 물을 끓이고 난 다음에 면을 먼저 넣는 사람, 또 수프를 먼저 넣는 사람, 파를 넣는 사람과 넣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계란을 풀어서 넣는 사람, 통째로 넣는 사람, 넣지 않는 사람 등등 각자 전부 다 다양한 방식으로 라면을 끓여서 먹습니다.

떡볶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쌀떡이냐 밀떡이냐, 맵냐 맵지 않느냐, 국물이 있느냐 없느냐, 야채를 넣느냐 넣지 않느냐, 어묵을 넣느냐 넣지 않느냐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서 먹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의 조리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라면을 사랑하고 떡볶이를 사랑한다는 반증입니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해서 먹고 변주해서 즐깁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 상황과 내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다 각각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떨 때는 시편 23편의 말씀이 하루 종일 내 입에 맴돌다가도, 어떨 때는 시편 1편의 말씀이 맴돌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다윗이 남긴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있기도 하고, 어떨 때는 사도 바울이 준 말씀이 내 인생의 이정표가 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예수님의 고난이 내 인생에 붙잡아야 할 말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내 상황, 처지, 형편, 연령, 하고 있는 일 등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 인생에 항상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말씀을 항상 다르게 느끼고 또 내 인생의 형편과 처지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역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인이 바로 그 지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22개 연 가운데 오늘 우리는 21번째 연을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 가운데 21번째 글자 '신(שׁ)'으로 시작하는 8구절입니다.

말씀을 경외함

"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시 119:161)

이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관들이 나를 핍박하는데, 고관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한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경외한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관들은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고대 시대의 권력은 돈이 곧 권력이고, 정치적 힘이 곧 권력이며, 물리적인 힘이 곧 권력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고관들,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그런 고관들보다 하나님을 더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인생, 내 육체를 능히 죽일 수 있는 세상의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영혼을 능히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은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권력자들, 고관들은 기껏해봐야 내 육체를 괴롭게 하고 내 육체에 해로움을 끼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자들은 주의 말씀을 더 경외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의지했습니다. 사울이야말로 내 인생을 죽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진실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언제나 기뻐하고 사랑해야 할 이유는 우리 영혼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리 영혼을 유지시켜 주고, 앞으로 내 영혼이 갈 바를 알려주는 주의 말씀 앞에서, 언제나 옷깃을 여미는 경외감이 주의 백성들 각 사람에게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을 즐거워함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시 119:162)

이제 이 시인은 주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주의 말씀을 경외한다고 하고, 이제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합니다. 곧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것보다 주의 말씀을 더 기뻐합니까?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기뻐합니다. 여기 탈취물이라고 하는 것은 전리품을 뜻합니다.

고대 시대는 항상 재화가 부족했습니다. 먹거리가 부족했고, 먹고 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것들이 항상 부족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늘 빈곤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약탈 경제였습니다. 전쟁에서 전리품을 가져와서 나누는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경제를 채웠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하면 항상 권력자들은 그 전쟁에 참여한 자들에게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큰 기쁨이겠습니까? 일단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목숨을 걸고 나간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것도 기쁜데 부족한 재화를 나누어 가지고 내 것으로 만듭니다. 큰 기쁨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전리품, 탈취물을 나누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더 즐겁다고, 더 기쁘다고 노래합니다.

이것도 참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전리품은 눈에 보이는 재물, 재화들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다가 써버리면 사라지지 않습니까? 눈앞에 신기루처럼 왔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고 항상 내 눈앞에 그대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사라지지 않느냐고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전리품은 눈에 보이는 것인데 말씀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잘 성장한 사람을 보십시오. 말씀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말씀을 받기 전 나의 상태는 형편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에 주어지기 전에 나의 인생은 그야말로 쓸데없는 인생이었는데, 말씀을 받아먹고 성장한 우리 인생은 바로 우리 눈앞에 내가 거울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을 먹여서 성장시킨 사람들을 보십시오. 우리 자녀들을 내가 말씀으로 양육했다면, 그들이 자란 모습을 보십시오. 말씀은 절대로 다른 데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말씀이고 손에 잡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전리품이야말로 물질이야말로 금방 사라지고, 마치 내 손 안에 있는 모래처럼 금방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함

"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시 119:163)

이제는 주의 율법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주의 율법을 경외했다가, 주의 율법을 즐거워했다가, 이제는 주의 율법을 사랑합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언제 거짓말을 하게 될까요? 속이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감추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거짓말을 합니다. 또한 얻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감추고 싶은 위선, 그리고 얻고 싶은 것, 이것보다 오히려 주의 말씀을 훨씬 더 사랑하니 이 시인은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속이고 감출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속일 수 있는 것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를 감출 수 있습니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해도 하나님 앞에 감출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깨닫습니다. 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 보니 내 심령과 폐부를 찔러 쪼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니,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속이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종일토록 찬양함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시 119:164)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한다고 합니다.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입니다. 곧 나는 종일토록 주를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날이 새도록 주를 찬양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은 주의 말씀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했고, 물질, 탈취물, 전리품보다 주의 말씀을 더 즐거워했으며,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기보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정직했습니다. 가장 본질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맛보는 말씀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시인이 참 낯설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도 졸리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봐도 그것이 나에게 별로 와닿지가 않습니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말씀을 경외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시 119:166-167)

"행하였나이다", "지켰사오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지키는 자가 이런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행하지 않으면, 지키지 않으면 이런 경험들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단 몇 구절, 단 한 구절이라도 말씀을 붙들고 지켜보면, 그 말씀이 정말 경외해야 할 말씀이고 즐거운 말씀이며 사랑해야 할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전히 지루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고, 여전히 나와 동떨어지고 상관없다고 느끼시는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도 붙들고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투쟁하고, 살아내고, 그 말씀대로 견디고, 그 말씀을 휘어잡고 내 인생으로 한번 버텨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이렇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의 권력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경외해야 합니다.

고관들이 우리를 핍박할지라도, 그들은 기껏해야 우리의 육체를 괴롭힐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을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영혼과 직결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경외함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물질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즐거워해야 합니다.

전리품과 물질은 신기루처럼 왔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고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말씀을 받아먹고 성장한 우리 인생, 말씀으로 양육된 자녀들의 모습이 바로 눈에 보이는 말씀의 열매입니다. 손 안의 모래처럼 사라지는 물질보다 영원히 남는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셋째는 말씀을 행하고 지켜야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지루하고 와닿지 않는다면, 아직 말씀을 붙들고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한 구절이라도 말씀을 붙들고 투쟁하고, 그 말씀대로 견디고 버텨본 사람만이 말씀을 경외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행하고 지키는 자에게 그 참된 맛이 열립니다.

다양한 형태로 변주된 말씀이 오늘도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고, 그 말씀 붙들고 이 복된 하루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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