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169-176

성경
시편5권

신앙의 균형

시편 119편 169-176절

잔잔한 호수 위에서 배를 띄우고 노를 젓는 모습들을 멀리서 보면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배가 앞으로 쭉쭉 나가는 배가 있고,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배가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두 가지 유형의 배가 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노를 젓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노 젓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른손, 왼손, 양쪽 노에 똑같은 힘이 전달되어야 하고, 같은 방향으로 열심히 노를 저어야 배가 앞으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힘 전달이 잘못되거나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 앞으로 배가 나가는 것이 아니고 계속 그 자리에서 배가 뱅글뱅글 돌 수밖에 없습니다. 균형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도 역시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가정과 일터의 균형도 매우 중요합니다. 몸의 건강이 무너지면 그 건강이 내 영혼과 마음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건강은 항상 영육 간의 건강이 중요해서 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가정과 일터 양자의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우리 인생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불행해지면 또 다른 한쪽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또 어떻습니까? 우리 신앙생활은 영성과 지성이 함께 어우러져야 성장이 가능합니다. 어떤 분은 영성은 충만하다고 말하는데 지성에는 관심이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영적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지성만 가득해서는 끊임없이 우리가 궁금하고 질문만 던질 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에 약하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의 성장, 영적 성장은 잘 이루어지지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지점을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22개의 연 가운데 오늘 우리는 마지막 22번째 연을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과 정확하게 대응되는데,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 중 마지막 글자 '타우(ת)'로 시작하는 8구절입니다.

부르짖음과 깨달음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시 119:169)

시인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말합니다. 부르짖음과 주의 말씀의 깨달음,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하나님께 아룁니다. "나의 부르짖음"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시인은 지금 아주 간절하게 하나님 앞에 청원하는 중입니다. 어떤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지 그것은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뢰는 것으로 보면 시인은 지금 간절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어서, 내 능력으로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중입니다.

이렇게 구하는 중에 있는 시인은 감정적으로 아마 최고조에 올라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다가 격해지고, 처음에는 조용히 기도하다가 그 기도가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부르짖음이 강해질수록 우리의 감정은 극에 달하고 최고조에 이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끝내 버리면, 그렇게 외치고 기도하고 끝내 버리면 우리 감정의 정화는 일어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원하시는 주의 음성을 듣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도 드리는 동시에 주의 말씀대로 깨닫게 해달라고, 말씀의 문을 열고 말씀의 장을 열고 하나님 앞에 깨달음을 함께 구하는 중입니다. 곧 기도와 말씀이 함께 가고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한 이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이토록 간절해서 아버지 앞에 나와서 부르짖어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부르짖음에 대한 아버지의 말씀과 음성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알고 내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이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실지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한쪽 손으로만 인생의 노를 젓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부르짖음과 말씀으로 깨달음을 동시에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구와 말씀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시 119: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시인은 지금 간구하는 중입니다. 간절하게 구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자기 간구대로 자기 인생을 건져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대로"라고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간구하지만,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것은 나의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대부분의 기도자들은 내가 간구하는 대로 내 인생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간구대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기를, 내가 10가지를 간구하면 하나님은 10가지를 이루어 주시기를, 내가 이쪽으로 간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이곳에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내가 간구하는 것은 내가 아직까지 미련하고 지혜가 없어서 내 방식대로 구하는 것이오니, 응답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응답을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 달라고 구하는 중입니다.

역시 이것도 기도와 말씀의 균형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이 양자가 함께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도 이와 똑같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간구는 이 잔을 내게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완벽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견디기 힘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룁니다. "할 수만 있거든 하나님, 내게서 이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주님의 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 뒤에 또 이어서 기도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간구하오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원대로 내 인생을 이끌어 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믿음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혹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믿음 성장이 더딘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와 말씀을 함께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생활을 하실 때 이 두 가지 양자를 함께 하셨습니다. 새벽마다 우리 주님은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을 깨우지 않고 먼저 앞서서 기도하러 가시면 제자들이 그 뒤를 따라왔습니다. 아직도 밝기 전에 우리 주님은 기도하셨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평소에도 기도하셨고, 큰 일을 앞두고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 사역도 성실히 열심히 감당하셨습니다. 산상수훈 말씀도 전하시고, 비유의 말씀도 전하시고,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환경이 될 때마다 말씀하신 분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항상 놓지 않고 함께 가셨습니다.

율례와 찬양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 119:171)

율례와 입술의 찬양을 역시 또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율례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입니다. 찬양은 우리의 감정,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율법, 율례, 이것은 차가운 느낌이 있습니다. 지성에 관계된 것입니다. 하지만 찬양은 나의 뜨거운 가슴, 감성에 관계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시인은 함께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이라고 해서 찬양만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119편 말씀, 오늘 마지막 연을 살펴보았는데, 시편 119편 말씀은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이지만 하나님 말씀의 완전성, 하나님 말씀의 깊이, 하나님 율법의 완벽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말씀과 찬양이 함께 서야 된다는 뜻입니다.

봉사와 기도

이뿐만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몸으로 봉사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과 동시에, 차분히 하나님께 앉아서 기도하고 말씀 읽는 것, 이 양자의 균형도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은 평생 동안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앉아서 하나님께 조용히 있기보다는 늘 뛰어다니고, 늘 적진을 헤집고 다녔던 인물입니다. 골리앗을 때려 눕힌 후로부터 그는 한시도 쉴 틈이 없었습니다. 왕궁에 들어와서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다녔고, 사울에게 쫓겨서 그는 광야를 전전하며 다녔습니다. 남유다 유다 지파의 왕이 되기도 했고,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도 그는 열심히 뛰어다닌 인물입니다.

그는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난 이후에 하나님께 성전 건축을 해드리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는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들어가서 잠잠히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니는 다윗도 귀하게 여기셨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앉아서 차분히 기도하는 다윗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주의 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봉사하는 것, 하나님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차분히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를 가지고 주의 말씀을 듣는 것,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어느 하나만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백성은 항상 균형이 중요합니다. 기도와 말씀의 균형, 율법과 찬양의 균형, 봉사와 섬김 그리고 기도의 균형, 이 균형들이 우리 믿음을 성장하게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부르짖음과 말씀의 깨달음이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부르짖고 그냥 가버리면 감정의 해소로 끝날 뿐입니다. 부르짖음 이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쪽 노만 젓는 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 뿐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함께 갈 때 우리 인생의 배는 앞으로 나아갑니다.

둘째는 간구하되 주의 말씀대로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내 간구대로가 아니라 "주의 말씀대로" 건져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간구하되 응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기도자의 태도입니다.

셋째는 봉사와 기도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다윗처럼 흙먼지를 일으키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도 귀하고, 하나님 앞에 차분히 앉아서 기도하는 것도 소중합니다. 어느 하나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영성과 지성, 감성과 이성, 봉사와 기도, 이 양자의 균형과 조화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혹시 치우쳐 있는 것이 있다면 그 치우침을 걷어내고, 균형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어서 성장하고 성숙한 믿음의 백성들이 되어 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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