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확장
시편 119편 25-32절
맹자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의 장점이 무엇입니까? 당신은 어떤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때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대답했습니다. 호연지기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뜻합니다. 보다 넓은 의미로 말하자면, 넓은 마음을 뜻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넓은 마음을 가지는 것은 삶을 상당히 편안하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도 용납하고, 환경과 상황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수용한다면, 분쟁할 거리도, 싸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염려할 것도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이 호연지기, 곧 넓은 마음을 가지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잘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의 문제이고, 내 생각의 문제이며, 내 인생의 그릇 크기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과 상황과 환경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결단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할 때, 상황과 환경, 사람을 수용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어려운 일들과 개인적인 비극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지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연은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로 시작하는데, 오늘 본문은 네 번째 연으로서 히브리어 알파벳 네 번째 글자 ‘달렛(ד)’으로 시작하는 여덟 절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시 119:32)
마음을 넓히는 것과 주의 계명을 연결시켜 시인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본문의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넓어지지 않은 것 때문에 고민하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좁은 마음, 상황과 환경을 수용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한 마음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이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바로 주의 계명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는 것입니다.
진토에 붙은 영혼
그렇다면 환경이나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고통을 겪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시 119:25)
영혼은 원래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사람이 생령, 곧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혼은 항상 자유로워야 합니다. 죄로부터도 자유롭고, 환경과 사람으로부터도 자유롭고, 생각과 상상력, 창조력이 우리 영혼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로워야 할 영혼이 진토에 붙어 버렸다는 것은 영혼이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진흙에 영혼이 짓이겨져서 숨쉬기가 어렵고, 몹시 아프고 상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넓은 마음을 가지지 못할 때, 내가 누군가를 용납할 수 없을 때,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을 때, 그때 우리 영혼이 진토에 붙어 버린 것 같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면 이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25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말씀이 내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내 영혼이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 혹은 나의 마음을 호연지기처럼 넓은 마음으로 가져가기 위해서, '마음을 넓혀야지, 넓혀야지' 그렇게 애쓰고 힘써도 그것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우리 마음이 넓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에 강박을 가지거나 '마음을 넓혀야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따라가고 말씀대로 살면 마음이 넓어지는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삶
우리 예수님은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로고스이시며, 예수님은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자 말씀 자체이십니다. 예수님이 하신 행적들, 하신 일들을 보십시오.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 베드로도 있었고 가롯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팔 자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사람인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들 앞에서 주님은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 대야를 가져다가 그 발을 한 사람, 한 사람 씻어 주셨습니다. 다 알고 계시면서도 주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로마 병사에 의해서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살점이 뜯겨 나갔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께 부르짖으셨습니다.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이러했습니다. 말씀 자체이신 주님, 그 주님을 따라가면, 우리도 말씀을 쫓아가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믿음 생활의 경륜이 깊어지고 넓어지다 보면,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람도, 수용할 수 없던 환경도 받아들이고 수용하며 넓어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바울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정신을 가진 극단적인 유대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난 이후에 선교 여행을 떠났습니다. 1차 선교 여행 기간 중에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털고 일어나서 그곳으로 가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전에 말씀을 따르지 않던 시절, 사울 시절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따라가다 보니 사울이 바울 되고, 큰 자가 작은 자가 되고, 그러나 오히려 마음은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 12장 4절을 보면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고 말씀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그의 행적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아버지 없는 조카 롯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조카 롯이 하는 짓을 보십시오. 삼촌을 떠나서 자기 소유를 이끌고 소돔 땅으로 가버렸습니다. 배은망덕한 일입니다. 섭섭하고 서운하기로 따지자면 어디에 비길 데가 없고, 억울해서 말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친족에게 아버지 없는 자식을 거두어 주었는데 배신당한 삼촌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그 조카 롯이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서 포로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서 구해왔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땅을 멸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그 앞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50명으로부터 시작해서 10명이 될 때까지 계속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넓혀 주십시오"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을 뿐입니다.
말씀 따라가다 보면, 주의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고 애쓰며 믿음 생활 잘 하다 보면,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속 좁은 우리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넓어지리라 믿습니다. 거꾸로 신앙생활을 수십 년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피부가 부딪치고 함께 살아가는 우리 가족 한 사람도 품어내지 못하고, 사랑하는 자녀, 사랑하는 가족의 한마디 말조차 수용하지 못하고, 내 마음이 뒤집어지고 화가 난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주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열심히 그 길을 걸어가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영혼의 회복
그렇게 되어야 내 영혼이 숨을 쉴 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숨쉬지 못하고 진토에 딱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은 이 답답한 시간을 언제까지 보내겠습니까? 부디 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영혼이 살아나는 놀라운 역사를 함께 경험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시 119:28)
계속해서 누군가를 수용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 영혼이 눌려서 녹아 없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파멸로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 영혼은 파괴되고, 녹아 사라지고, 없어져 버릴 것입니다. 이 말은 사탄에게 진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말씀에서 가인의 후손들 중에 라멕이라는 사람을 봅니다. 라멕이 어떻게 노래했습니까?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창 4:23)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죽이고 소년을 죽여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라멕은 그런 것 따지지 않는, 힘을 의지하는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영혼에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까? 그는 자신의 강함을 노래했지만, 사실은 그의 영혼은 녹아 없어져 버렸고 사탄에게 지배받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영혼이 눌려서 녹아 없어져 버려서 이제는 완전히 사탄의 노예가 된 인생입니다.
부디 우리가 이런 인생을 살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절 한 절 따르고 순종하다 보면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된 변화된 우리를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좁은 마음이 영혼을 진토에 붙게 합니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는 좁은 마음은 우리 영혼을 옥죄어 숨 쉬지 못하게 합니다. 자유로워야 할 영혼이 진흙에 짓이겨져 답답함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됩니다. 이것이 좁은 마음이 가져오는 영적 비극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따라가면 마음이 자연스럽게 넓어집니다. 예수님, 바울, 아브라함의 삶에서 보듯이, 의도적으로 마음을 넓히려 애쓰기보다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갈 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마음은 자연스럽게 확장됩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넓은 마음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셋째는 말씀으로 세워져야 영혼이 녹아 없어지지 않습니다. 라멕처럼 상처받았다고 복수하고 사람을 해치는 삶은 결국 영혼을 녹여 사탄의 노예로 전락시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세워진 자는 영혼이 회복되고 생명력을 얻어 계명의 길로 달려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을 붙잡고 투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평생 함께 살아온 가족들을 넓은 품으로 품어 안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우리 가슴에 품어 안으며,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의 모난 부분도 끌어안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정치적 색깔이 달라도,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달라도, 주의 말씀을 따르는 자는 얼마든지 수용하고 끌어안을 수 있사오니, 그들을 품어 안고 세상을 살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