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와 자유
시편 119편 41-48절
우리가 견딜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누군가가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응당 누려야만 하는 자유를 억압당할 때 견디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주제가 자유, 평등, 박애였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람에게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자유를 억압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나라 국민들은 모두가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자유를 누릴 만한 권리와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유도 마냥 무작정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법에 의해서 보호를 받지만, 동시에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법이 정한 한계 안에서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고 법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면 그것은 방종이 되고 때로는 범죄가 됩니다. 범죄자에게는 자유를 제한합니다. 또 다른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과 소지가 있기 때문에 범죄자에게는 마냥 무한정의 자유를 절대로 부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영원한 자유, 하나님께서 주시는 우리 영혼의 자유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이 자유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 자유가 가치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를 넘어선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우리는 그것을 죄라고 부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19편 41절에서 48절의 말씀은 119편의 22개 연 가운데 여섯 번째 연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여섯 번째 글자인 '와우(ו)'로 시작하는 여덟 절을 읽었습니다.
변치 않는 진리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시 119:43)
하나님의 말씀을 규정하는 데, 하나님의 말씀을 특징짓는 데 있어서 시인은 '진리의 말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겠습니까? 진리는 어제, 오늘, 내일 변하는 것이 아니고,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똑같이 그대로 동일한 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릅니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계속해서 변하고 바뀌는 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기준이 똑같은 것, 세월이 지나도 영원히 동일한 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과학을 사람들은 진리라고 생각하는데, 과학에 '진리'라는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과학적 사실'이라고 부릅니다. 과학의 시작은 가설부터 출발합니다. '그럴 것이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오랜 기간의 연구와 학습과 실험을 통해서 그 가설이 참으로 여겨지면 그것을 사람들은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과학적 사실이 됩니다. 하지만 그 과학적 사실은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과거에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천동설이라고 했고, 이것이 뒤집어질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었습니다. 과학도 이처럼 하루아침에 사실이 뒤바뀌기도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진리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진리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단 한 가지 여호와의 말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록된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예컨대 예배가 무엇입니까? 구약 시대 때 그리고 신약 시대 때 통칭적으로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배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높이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높임을 받고 사람이 섬김을 받으면 그 사람이 우상이 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섬기면 그 대상이 또한 우상이 됩니다.
그런데 예배의 형태와 예배의 공간은 계속해서 바뀌어 왔습니다. 성막 시절이 있었고, 솔로몬 성전 시절, 스룹바벨 성전 시절, 헤롯 성전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예배당 시절이고 교회 시절입니다. 이렇게 공간이 바뀌고 예배의 형태와 형식은 수없이 많이 시절을 따라 세월을 따라 계속 바뀝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는데,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하지 않는 알맹이를 우리는 진리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안에 거하고 진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만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시 119:44)
이렇기 때문에, 영원토록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똑같기 때문에 지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에게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고 권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시절처럼 이 세월처럼 지속적으로 바뀐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신 있게 후세대들, 자녀들에게 말씀을 지키라고 감히 그들에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아니, 이 시대의 풍조를 잘 아니 알아서 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으니 자녀들에게 교육할 수 있습니다. 가르쳐도 되고 가르쳐야만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말씀 안의 자유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시 119:45)
여기서 주의 법도들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내가 진리의 말씀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이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율법이 어떻게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때로는 속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좀 벗어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속박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후에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두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선악과 금지 명령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입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한 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절대로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타협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선악과 금지 명령만 지키면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해도 다 좋았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말씀 안에 그들에게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다른 모든 것들을 먹고 누리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와서 유혹했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게 될 것이다'라고 유혹합니다. 뱀은 선악과를 그들에게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를 속박하는 것이라고 주입했습니다. 그렇게 교육했습니다. 뱀에게 꾀어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은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유로워졌습니까? 율법을 파괴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깨부쉈는데 그들에게 진짜 자유가 찾아왔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정말 죄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생겨난 원죄가 오고 오는 모든 인류에게 흘러 들어와서 우리도 원죄 가운데 고통받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쫓겨났습니다. 아담은 이마에 땀이 흘려야 땅을 파고 경작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고, 하와는 잉태하고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했고, 땅이 그들에게 끊임없이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습니다. 결국 율법을 파괴하면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속박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때로는 부담스럽고, 때로는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버겁고 힘겹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씀 안에 영원한 자유가 있음을 기억하고 깨달으며 말씀 안에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계명을 사랑함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시 119:47-48)
그래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주의 계명들을 내가 사랑한다'고 두 번이나 말했습니다. 진리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 때문에 시인은 주의 계명들을 사랑한다고, 작은 소리로 지속적으로 읊조리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의 말씀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사랑하며, 말씀 따라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불변의 진리라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도 뒤바뀌고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똑같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킬 가치가 있고, 다음 세대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이 진리의 말씀 위에 우리의 삶을 세워가야 합니다.
둘째는 진정한 자유는 말씀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말씀이 우리를 속박한다고 가르치지만, 에덴동산의 교훈이 보여주듯 말씀을 파괴하면 자유가 아니라 영원한 속박이 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진정한 영원한 자유입니다.
셋째는 진리의 말씀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인처럼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고,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말씀을 향하여 손을 들고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는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 따라 걸어갈 때, 참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탄은 말씀을 파괴하라고 합니다. 사탄은 말씀을 깨야 너희가 자유를 얻을 것이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절대로 거기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씀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자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시고, 말씀 때문에 복된 하루하루를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