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49-56

성경
시편5권

진정한 소유

시편 119편 49-56절

자유민주주의 정치 체계는 시장경제를 경제 체계로 선택했습니다. 시장경제는 자율성과 기본적인 경쟁을 기초로 하며, 자유로운 경쟁 속에서 활력이 생겨나고, 통제가 거의 없기에 창의성도 그 안에서 꽃피울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적절하게 활용한 체제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며, 그 소유에 대한 욕망은 끝없이 커져갑니다.

어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소유하고 싶은 품목만 바뀔 뿐, 소유에 대한 기본적인 욕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는 자기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를 소유하고 싶어 하고, 조금 더 자라면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며, 청년이 되면 스마트 기기를, 장년이 되면 넓고 좋은 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욕망은 노년이 되어도 결코 꺾이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제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정말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많은 물건과 좋은 소유물을 가져도 그것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결코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더 나아가 질문해 보면, 내가 가진 소유와 내 영혼의 구원 문제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가지는 소유물은 천국으로까지 이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시편 말씀은 믿음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소유가 무엇인지, 그 소유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선물해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오늘 우리는 일곱 번째 연, 히브리어 알파벳 일곱 번째 글자인 '자인(ז)'으로 시작하는 여덟 절을 읽었습니다.

말씀을 지킴이 참된 소유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시 119:56)

시인은 주의 법도들, 곧 주의 말씀을 지킨 것이 자신의 소유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 다소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소유물이라고 말할 때는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을 의미합니다. 자동차든, 손으로 셀 수 있는 물질이든, 그것을 우리는 소유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주의 말씀을 지킨 것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떻게 우리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있을까요?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시 119:49)

4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소망을 연결하여 노래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자기 소망을 다양하게 가져갑니다. 꿈을 얘기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녀가 잘 되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고, 많은 재산을 가지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며, 큰 권력을 가져서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궁극적인 소망이 될 수 있을까요? 자녀는 품 안의 자녀일 뿐입니다. 품을 떠나고 나면 부모와는 독립된 개별적인 인격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품 안에 있을 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품을 떠나고 나면 전혀 나와는 다른 존재로서 자기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결코 부모의 최종적인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인데, 그것이 어떻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소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권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 잡히지 않는 권력, 그런데 이 권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깐의 그 자리에서 영광을 누린다 하더라도, 그 영광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권력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주의 말씀이 곧 자신의 소망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이 왜 소망이 되는가 하면, 주의 말씀은 천국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땅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천국을 지향하고 있기에, 믿음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곳은 이 땅이 끝이 아니라 영생이 있는 천국이라는 뜻입니다.

천국을 향한 소망

시편 23편에서 다윗의 고백을 보면 이 사실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1)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이 땅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노래했고, 마지막 6절에서는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여호와의 집은 영원한 천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니 여호와가 나의 목자 되시어 부족함이 없는 이유, 그 마지막 종국적 이유는 바로 여호와의 집 천국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는 천국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 3:13-14)

바울이 말하는 푯대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세운 소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자녀가 푯대도 아니요, 물질이나 권력이 푯대가 아닙니다. 그가 말한 푯대는 저 천국이요, 천국에서 받을 영생의 면류관이 그의 궁극적인 푯대였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누가 줄 수 있습니까? 이 땅의 권력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이, 우리 자녀들이 우리에게 천국을 줄 수 있습니까?

정말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주의 말씀이 소망이 되어 그 말씀을 따라가면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오늘 본문의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소유가 되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된다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이 땅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소유물, 우리가 영원히 가지고 놓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천국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잘 간직하고, 정말 소중하게 기억하며, 세상의 어떤 권력보다 물질보다 천국 소망이 가장 가치 있음을 기억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이 주는 위로와 생명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시 119:50)

말씀이 나의 고난 중에 위로가 된다고 했고, 이 말씀이 나를 살렸다고 노래합니다. 사실 우리가 고난당하고 있을 때 위로받고 싶습니다. 평소에 내가 잘해주었던 사람들에게, 평소에 내 마음을 쏟았던 사람들에게 한마디 말이라도 위로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누군가 큰 고난을 겪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를 못합니다.

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요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자녀도 다 잃었습니다. 건강도 잃었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떠납니다. "이렇게 살 바에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고 말하고 부인이 떠났습니다. 위로받기를 원했는데, 위로자가 되어야 할 부인이 떠났습니다. 친구들이 멀리서 왔습니다. 나를 위로해 줄 거라고 여겼던 친구들이 오히려 그의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정죄합니다. 끝까지 정죄합니다. 한마디도 그를 위로해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고난 중에 그를 위로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셔서 창조를 이야기하십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지금까지 겪었던 고난과 어려움, 암중모색의 시간을 보상해 주시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새롭게 살아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욥이 이렇게 하나님을 고백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살게 한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먹는 양식입니다. 하루 세 끼 먹으면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우리 영을 저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오늘도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으로 천국을 보장해 준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오늘도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정한 소유는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유물을 위해서 평생을 노력했습니다. 좋은 집을 가지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물려줄 많은 재산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내 소유는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됩니다. 사람도 물질도 권력도 소망이 되지 못하나, 주의 영원한 말씀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소망이 됩니다. 다윗에게도 바울에게도 천국 소망을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되는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 참된 위로와 생명이 됩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사람에게 위로받기를 원했으나, 사람은 우리의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고난 중에 있을 때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떠나므로 더 큰 상처와 배신감과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위로했고 나를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고난 중에 있다면 말씀으로 위로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온전히 당한 고난을 견디며 이겨내시기를 바랍니다.

온종일 살아갈 때 주의 말씀 하나만 붙잡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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