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65-72

성경
시편5권

고난의 유익

시편 119편 65-72절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 다른 인생, 다양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생김새가 저마다 다른 것처럼 사람들의 삶의 양식도 살아가는 방향과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도 저마다 다 다릅니다.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넓고 좋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험산준령을 넘는 것처럼 가는 곳마다 어렵고 힘겨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는 험산준령을 넘고 굽이굽이 고개를 넘어가는 인생보다는 고속도로 같은 넓은 인생을 사는 자가 훨씬 더 행복해 보이고 편안해 보이고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는 그분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데 어떤 이는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고갯길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없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고난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사생자요, 참자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지은 죄로 인한 고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이라면, 그 고난은 우리에게 분명한 유익이 있고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난의 유익에 대해서,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그 아홉 번째 연,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테트(ט)'로 시작하는 여덟 절입니다.

말씀으로 돌아옴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고난당하기 전에 시인은 그릇 행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즉 고난을 당한 후라는 뜻입니다. 고난당한 후에는 주의 말씀, 주의 율례들을 지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릇 행했다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당하기 전에 그의 인생은 말씀을 비켜나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떠나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런데 고난당하고 난 이후에는 이제는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주의 말씀대로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죽기도 전에 아버지에게 받을 유산을 먼저 달라고 합니다. 재산을 분할해서 먼 나라로 떠나버렸습니다. 아버지의 잔소리와 아버지의 간섭과 형에게 돌아가는 이익들이 싫었기 때문에, 불편하고 얽매이는 삶이 싫어서 먼 나라로 가서 돈을 많이 벌어서 보란 듯이 성공해서 돌아오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고 가졌던 장밋빛 꿈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지고 갔던 돈은 금방 떨어지고 그는 비참하고 어려운 인생을 이어갑니다.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다가 문득 생각납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아버지께로 돌아갑니다. 아버지가 그를 끌어안아 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좋은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잔치합니다.

이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주신 비유인데 이 비유가 주는 의미가 분명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싫어서 말씀에 구속받는 것이 불편하고 귀찮아서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떠나 살았는데 큰 고난을 겪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 산 자의 비참한 현실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나서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제는'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고난을 겪고 난 후에야 그는 주의 율례들을 배웁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은 그때부터 자신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고난당하기 전의 말씀은 자신을 속박하는 말씀이었는데, 고난을 당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의 말씀으로, 자비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전혀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전혀 나를 구속하는 말씀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이지 누구를 구속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집 안에는 첫째 아들이 있었습니다. 집을 나가지 않은 첫째 아들. 그런데 그 아들은 집 안에 있는 탕자였습니다. 아버지 품 안에 있으면서도 아버지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주의 율례들을 깨닫지 못하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노예로 살고 있었지 아버지의 아들로 살지 않았습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하는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내 친구들이 왔을 때는 어떤 것 하나도 대접하지 않더니, 집 나간 놈이 돌아오니 송아지를 잡으십니까?' 아버지가 말합니다. '이 집에 있는 것이 다 네 것인데 왜 너는 누리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느냐고.' 아버지의 사랑이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매여 사는 자가 큰아들이었습니다.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 지키고 따르게 되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속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 거기에 속박되어서 이것도 지켜야 되고 저것도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은 본질적으로 사랑입니다. 고난당하고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릴 품어 주시고 건져 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 사랑의 법 안에서 오늘도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시 119:69)

교만한 자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완력을 가지고 거짓을 지어서 핍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당한 이후에는 이런 자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나보다 힘 있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 권력 가진 사람이 무리를 지어서 나를 치려 하면 겁부터 났습니다. 그래서 금방 굴복하고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나 고난당한 이후에는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나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고난과 함께 주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에게 견디고 또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데 그 힘은 하나님의 영 성령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고난당하기 전 예수님과 함께 정말 편안한 믿음 생활을 할 때, 그때는 그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시는 그날 밤도 베드로는 도망갔고 여종들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라는 고난을 자기가 겪고 난 이후에, 성령 받고 나서는 달라집니다. 교만한 자들이 그를 치려 할지라도 베드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겁내지 않습니다. 그에게 성령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과 함께라면 이 세상에 어떤 악한 자들이 우릴 위협하고 협박하고 우리의 믿음을 끊어버리고 떨어뜨리려 할지라도 우린 견딜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유익이 우리 삶의 현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혼의 단련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시 119:70)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기름덩이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인 비만 상태, 살이 쪄서 기름이 뚝뚝 흘러내리는 상태를 고난당하지 않은 사람의 영적 상태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이 살이 쪄서 기름덩이가 되면 각종 문제가 생겨납니다. 수명도 단축되고 운동도 되지 않고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깁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난을 겪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이 훈련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단단하게 다져지지 않으면 살이 쪄서 기름덩이같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고난을 알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면서 광야를 뛰어다닙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영혼이 단단해집니다. 영혼에 살이 붙을 여가가 없습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쫓겨 다니면서 어디에서 자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떻게 영혼에 살이 붙겠습니까. 군살 없이 단단한 몸이 됩니다. 그의 영혼이. 그러면 그 영혼에 악한 사탄 마귀가 틈탈 수나 있겠습니까. 그 고난은 자기도 모르게 항상 영혼이 예민해지고, 민감해지고, 단단해집니다.

그런데 그가 고난 없이 왕궁에 드러누워 있을 때, 그가 고난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때 사탄이 그를 찾아옵니다. 그때는 살 쪄서 기름덩이같이 되어버린 그의 영혼에 사탄 마귀가 들어오니 견뎌내지를 못합니다. 시험에 들고 넘어가고 죄짓지 않습니까. 혹시 오늘 우리 중에 고난을 당하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내 영혼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시는구나, 내 영혼을 군살 없이 빚어가시고 어떤 죄악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도록 나를 훈련시키시는구나' 이 과정을 우리가 기억하고 깨닫고 계신다면 우리는 넉넉히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도 견뎌냅니다. 이겨낼 줄로 믿습니다.

고난의 유익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결국 시인의 고백이 고난당한 것이 나에게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입에 발린 말이 아닙니다. 고난을 통해서 성령받게 되었고, 고난을 통해서 영적인 비만을 해소하게 되었고, 고난받기 전에는 말씀에서 빗나간 삶을 살았으나 고난당하고 난 이후에는 말씀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이 유익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이 유익한 고난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받아내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인생에 충만히 거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난은 우리를 하나님 말씀 앞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탕자가 고난을 겪고 나서야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고난당하기 전에는 말씀이 속박으로 느껴졌으나 고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과 자비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말씀 안에 거함이 곧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함입니다.

둘째는 고난은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부어 줍니다. 베드로가 고난 전에는 두려움에 도망갔으나, 십자가의 고난을 겪고 성령받은 후에는 어떤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함께 주시는 성령이 우리를 견디고 이기게 만들어 줍니다.

셋째는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단단하게 훈련시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쫓길 때 영혼이 단단해졌으나, 왕궁에서 편안할 때 영혼이 기름덩이처럼 되어 시험에 넘어졌습니다. 고난은 영혼의 군살을 빼고 죄악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를 빚어 가시는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이 유익한 고난을 피하지 말고 당당히 받아내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히 거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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