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매뉴얼
시편 119편 73-80절
건축사들이 건물을 시공하고 나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벽 시공을 목표로 해서 설계하고 건물을 안전하고 꼼꼼하게 시공하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크고 작은 하자들이,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그런 것들을 다 인정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하자 보수 기간이 있습니다. 5년에서 10년 정도 기간을 두고 하자가 생기면 보상해 줍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는 무상으로 보수해 주지만,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보수하는 데 따르는 실비가 포함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지금껏 살게 하신 하나님, 나를 지으시고 여기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문제가 생기면 얼마의 기간을 유지보수 기간으로 잡으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성인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겠거니, 성인이 되고 나면 그 다음은 우리가 책임져야 되겠거니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지는 기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전 생애 동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특히 우리 인간이 죄 가운데 빠져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사는 그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은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시는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완전히 죄로 인해서 망가지고 파괴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도 주시고 살아갈 수 있는 길과 방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신 길과 방향, 그것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말씀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인도하고 도우시는 하나님 말씀을 주제로 하는 시편 말씀입니다.
시편 119편 22개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편 중에 우리는 오늘 열 번째 연을 읽었습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열 번째 글자인 '요드(י)'로 시작되는 여덟 절입니다.
창조주권의 인정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나로 깨닫게 하사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시 119: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지으셨음을 인정하는 자들은 주의 계명들을 배워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시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대단히 위대한 선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씀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과학적 지식을 찾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본질적으로 믿음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태초부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인류가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문자로 남겨서 기록으로 세세토록 보존하고 전승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과학적 지식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성경을 숫자적으로 따져서 그 안에서 100%의 역사를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처럼 미련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가 말씀으로 되어진 줄 믿는 사람, 하나님의 모든 창조를 믿음으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주의 계명들을 배우기를 즐겨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음으로 인정하고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지어진 줄 아는 사람은 살아가는 모든 삶의 방향들, 걸음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유익합니다. 삶의 매뉴얼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삶의 매뉴얼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본 사람들만이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고 진리입니다.
말씀의 원리
예를 몇 가지 들어봅시다. 성경에는 결혼의 원리가 잘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결혼의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결혼을 시키실 때, 아담과 하와를 짝지어서 가정을 이루게 하실 때 성경을 보면 남자와 여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잠들게 하시고 여자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사실이요, 진리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갑니까. 남자와 여자의 결혼이 너무나 자명하고 분명한 성경의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진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해서 대꾸하기조차 어려운 일인데 그런데 이 세상이 엉뚱하게 거꾸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결혼의 진리는 하나님이 남자를 잠재우셨습니다.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신 하나님, 그를 잠재우시고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갈비뼈를 취하시고 거기서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러면 결혼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주도권은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원리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고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결혼. 이 원리대로 결혼을 잘 만들어가면 가정이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원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창조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이 주권, 이 원리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가정이 불행하고 깨어지고 세상에 불행한 가정들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창세기 2장에 보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떠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결혼하고도 그 부모를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떠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잘 떠나면 문제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안식일 제정의 원리가 나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말씀입니다. 안식일에는 '네 처소에서 불도 피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이나 종살이하고 살았습니다.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면 일해야 됩니다. 그런데 이제 안식일에는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쉬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지 모릅니다. 일하지 않으면 먹을 것을 주지 않았는데, 정말 우리가 쉬어도 먹을 것이 생길까. 그런데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시간으로 안식일을 삼으라고 말씀하셨고 불도 피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밥하지 않아도 너희 입에 들어가는 것은 걱정하지 말라.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명령형의 문장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말을 읽을 때 거부감 있게 읽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더 강하게 명령하는 말씀일수록 책임진다는 뜻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더해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더해 주십니다. 성경에는 이런 특별하고 탁월한 원리들이 우리 삶에 다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삶의 매뉴얼로 성경을 붙잡고 읽어야 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이 말씀이 참이로구나, 말씀 붙들고 살면 살수록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복되게 하시고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롭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의 동역자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할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시 119:74)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누굽니까.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누굽니까. 나와 똑같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그 말씀을 따르고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 즉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을 보십시오. 구약에 나오는 가장 아름다운 두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다윗과 요나단, 둘을 떼서 생각할 수 있습니까. 두 사람은 정말 친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태생적으로 이 두 사람은 친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점찍어 둔 이스라엘의 왕위 계승자입니다. 요나단은 육체적으로 자기 아버지 사울의 아들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왕자고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될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할 수 있겠습니까. 그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데 어떻게 그 아들 요나단과 다윗이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두 사람은 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요, 주의 말씀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태생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서로 만나자마자 서로가 서로를 알아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투구와 허리띠와 칼과 창도 줘 버렸던 인물입니다. 그만큼 마음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다 보면 좋은 믿음의 동역자를 찾고 싶습니다. 나와 함께 한길 가는 믿음의 동역자들. 마음이 힘들고 어렵고 외로울 때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그렇게 찾아다닐 필요 없습니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와 비슷한 자들은 만나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겠습니까. 내 삶을 마칠 때까지 서로가 좋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종말의 기억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 (시 119:75)
주의 말씀이 나를 이끄시는데 결국은 그 말씀 끝에는 마지막 종말,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이 있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항상 끝을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인생에 호흡이 끝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날이 있음을 알면 오늘 하루를 우리는 성실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죄짓지 않고 삽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창조주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유익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유익함으로 승화하고 빚어내고 그 말씀의 뒤를 따라가시는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창조 주권을 인정하는 자는 말씀을 삶의 매뉴얼로 삼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안다'고 히브리서 기자가 고백한 것처럼, 창조를 믿음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삶의 모든 방향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결혼의 원리, 안식일의 원리,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원리 등 성경의 모든 원리가 우리 삶에 적용될 때 복된 인생이 됩니다.
둘째는 말씀을 따르는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믿음의 동역자가 됩니다. 다윗과 요나단처럼 태생적으로 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봅니다. 좋은 믿음의 동역자를 찾아다닐 필요 없이,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종말을 기억하는 자는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삽니다. 주의 말씀 끝에는 마지막 심판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호흡이 끝나는 날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죄짓지 않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유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매뉴얼로 삼아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