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81-88

성경
시편5권

영혼의 피곤함

시편 119편 81-88절

인간은 흙으로 빚어진 존재입니다. 창조의 근원적 재료가 흙이었기에 우리의 육체는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오래 사용하면 질병이 찾아오고, 과도하게 사용하면 피로가 누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육체를 적절히 사용해야 하고, 피로를 면하려면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며 양질의 영양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피로를 느끼지 않고, 피로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육체는 휴식과 음식으로 회복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영혼 또한 피곤하고 지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영혼의 피곤함을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시인은 영혼이 피곤할 때 어떤 처방이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시편 119편은 2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 본문은 11번째 연으로서 히브리어 알파벳 22글자 중 11번째 글자인 '카프(כ)'로 시작하는 8절입니다.

영혼 피곤의 원인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 119:81)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피곤한 이유를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깊이 숙고해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의 존재를 갈망하는 것은 우리 영혼을 필연적으로 피곤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존재 자체가 가리워져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 중 그 어떤 것의 형상도 만들거나 그것 앞에서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 하셨고,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믿으려는 자들, 이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분별과 깊은 집중이 요구되기에 우리 영혼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눈앞에 펼쳐진 것들은 하나님보다 더 확실해 보입니다. 손에 잡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신뢰하고 확신합니다. 그런 것들을 믿고 보고 만지는 데는 피곤함이 없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고, 주의 구원을 갈망하며, 주님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미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좀처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연 만물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남겨두셨고, 시시각각 때때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올바로 알아듣고 분별하려면 집중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사탄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도 있고, 어떤 때는 내 마음의 소리가 마치 하나님의 소리처럼 둔갑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 분별해 내려면 집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는 것은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야의 탈진

열왕기상 18장과 19장에 등장하는 엘리야 선지자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활동하던 시절, 북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이었습니다. 아합 시절 북이스라엘은 바알 신앙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바알 신앙을 가져온 이후로 북이스라엘은 온통 우상 숭배의 천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습니다. 스스로는 하나님 신앙을 간직하고 있으나 드러내 놓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있었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외로웠습니다.

외롭고 힘든 투쟁을 이어가던 중 엘리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바알의 선지자들과 이세벨을 지지하는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함께 갈멜산에서 대결합니다. 여기서 승리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아합과 이세벨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그때부터 엘리야는 더 이상 자신이 살아갈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탈진해 버렸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드러누워 죽기를 소망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는 극도의 피곤함과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눈에 보이는 바알, 손에 잡히지 않는 하나님과 당장 눈앞의 권력인 아합과 이세벨, 그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섬기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그는 피곤해서 탈진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탈진해 버린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시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천사를 통해 떡을 공급해 주시고 물 한 병을 주십니다. 일어나라 하시고 그에게 40일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저 호렙산 앞까지 인도해 가십니다. 그곳에서 그에게 큰 바람을 일으켜 보이십니다. 그런데 바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지진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불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큰 불이 있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바람이 얼마나 강력합니까? 우리 몸이 휘청거릴 만큼입니다. 지진도 얼마나 강력합니까? 땅이 갈라지고 그 속으로 사람이 빠질 만큼입니다. 불이 얼마나 강력합니까?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립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 이후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미하게 다가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까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 명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위로를 건네주십니다.

탈진한 엘리야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육체적으로는 떡과 물이요,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우리 영혼이 피곤할 때 그 영혼의 피곤함을 해갈하고 해소시켜 주며 다시 새롭게 회복시켜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당장 우리를 유혹합니다. 큰 소리가 우리를 유혹합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세밀하게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주의 구원을 바라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며 일평생 그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피곤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피곤하고 지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우리의 영혼이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고, 그 말씀이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 중 인내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시 119:82)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나는 지금 몹시 피곤하고 힘든데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인도하실까 하면서 주의 말씀을 계속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영혼을 살린다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인도한다고 하니 그 말씀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피곤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데도 왜 피곤합니까? 현실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바라보는데 내 주변의 현실은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에 빠집니다. 말씀을 읽어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기도해도 그래도 여전합니다. 내 주변에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여전히 똑같으니 이를 견딜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지금 시인의 상황은 주변의 원수들 때문에 괴롭습니다. 주의 말씀을 바라보는데도 원수는 떠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있어야 됩니까?"라고 하나님께 따져 묻는 것입니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시 119:84-85)

이런 상황입니다. 자기를 해하려는 자들이 웅덩이를 파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는데도 불구하고 상황이 변하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적으로 우리를 견디게 하는 인내의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로 우리를 고난으로 인도하고 그 고난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지만, 결국은 끝이 있습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고난 가운데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 말씀을 바라봐도 인생이 변한 것이 없고 힘든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때 내 곁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결단코 우리를 홀로 둔 적이 없습니다. 항상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견딜 수 있고 참아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시 119:87-88)

시인은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않고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들, 위기들, 어려운 일들,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영원히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말씀으로, 또 그의 존재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영혼의 피곤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며, 주의 구원을 사모하는 일은 우리 영혼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이 피곤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신앙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엘리야도 탈진했고, 시인도 피곤함을 토로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지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회복시킵니다. 탈진한 엘리야를 일으켜 세운 힘은 떡과 물, 그리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었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처럼 강력한 것들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고, 오히려 세미한 음성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우리 영혼이 피곤할 때 그 피곤함을 해소시켜 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셋째는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말씀을 바라봐도 현실이 변하지 않을 때, 우리는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견디게 하는 인내의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주께서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하십니다.

이 말씀을 깊이 간직하시고, 오늘 하루도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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