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순종
시편 119편 89-96절
중세 유럽 사회를 지탱하던 근간은 봉건제도였습니다. 봉건제도란 영주가 가신에게 봉토를 하사하고, 가신은 영주에게 충성을 서약하는 상호 계약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땅과 충성을 맞바꾸는 이 체제 속에서 가신들은 영주의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절대적 헌신을 요구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광활한 영토를 보유하지 않았기에 중앙집권적 군주제를 채택하였으나, 그 안에서도 주종 관계에 기초한 충성의 서약은 어김없이 존재하였습니다.
신하들은 임금을 향한 충성을 맹세하고 그 충성을 일생토록 실천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모든 사회 구조가 엄격한 신분과 계급 제도 위에 세워져 있었으므로, 주종 관계의 충성은 결코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였습니다. 만약 복종하지 않거나 전체적인 질서에 순응하지 않으면, 사회의 건강과 질서를 해치는 자로 간주되어 엄격한 처벌과 심각한 제재가 뒤따랐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복종하고 싶지 않아도, 충성하고 싶지 않아도, 사회 제도가 그러하고 전반적인 구조가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충성해야 하는 강제적 체제였습니다. 봉토를 부여받았기에 충성하지 않으면 다시 빼앗길 수밖에 없어 복종하고 충성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속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겉보기에는 과거 중세 봉건제도의 사회나 군주제 사회와 유사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하나님께 복종하고 충성하는 것은 외적 강제나 제도적 압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주로 고백하기에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충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시편 119편에는 주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충성의 서약과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에 따라 2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오늘은 12번째 연인 '라메드(ל)' 단락을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 12번째 글자 '라메드(ל)'로 시작하는 8개의 절이 바로 89절부터 96절까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시 119:89)
이 말씀은 언뜻 평범한 고백처럼 보이나, 실상 대단히 위대한 고백이며 깊은 통찰력을 지닌 시인의 영적 선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 굳게 섰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에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히 서 있다고 선포하는 것, 이것은 결코 예사로운 고백이 아닙니다.
시인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하늘에 무엇이 보입니까? 대낮에는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밤이 되면 달이 은은하게 떠오릅니다. 시인은 해와 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이 굳게 섰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구름이 태양과 달을 가리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그 비는 대지를 적시는 아름답고 귀한 단비일 수도 있고, 온 땅을 휩쓸고 지나가는 무서운 홍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인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고, 때로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며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관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굳게 섰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 창조의 진리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해와 달과 별들을 제가 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온 우주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저렇게 운행하고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저 하늘에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히 서 있음을 목도합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고백입니까!
이것은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시적인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합니까? 하늘의 별들을 보고, 해와 달을 보고, 우주의 운행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굳건히 서 있음을 고백하고 느낄 수 있는 영적 예민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큰 비가 쏟아지면 하나님이 온 세상을 책망하시는 듯한 우렛소리 같은 음성을 듣게 됩니다. 농사가 잘 되도록 하늘에서 따뜻한 햇빛을 내려주시고 적절한 비를 내려주시면,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따스한 온기를 우주 만물의 운행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통해 감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히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는 위대한 시인의 고백이 바로 오늘 이 말씀입니다. 이러한 영적 감수성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인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 옛날 야곱이 형 에서를 만났을 때의 고백을 기억하십시오. 에서는 자기를 속이고 먼 곳으로 도망갔다가 수십 년 만에 돌아오는 야곱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중무장한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야곱의 모습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하다가 다리를 절게 되었고, 몰골이 형편없었습니다. 온몸에는 누더기가 된 옷을 걸치고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에서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달려가서 동생을 껴안았습니다. 그때 야곱이 말하였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습니다." 이것은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거짓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사실 영적 예민함으로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형상이 보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각 사람을 지어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와 성향이 맞지 않고 생각이 다른 사람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여야 합니다. 그 안에 하나님께서 숨겨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이 보이고,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이 모든 사람 속에 일일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이 바로 영적인 눈이요 영적인 안목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을 바라볼 때 기능적으로만 봅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을 볼 때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 능력만 봅니다. 공부하는 자녀들을 볼 때 우리 아이가 얼마나 공부를 잘하는지 그 성적만 봅니다. 식당에 가서 요리사를 볼 때는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만드는지 그 기능만 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능 이전에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질적으로 부여하신 우리 자녀, 내 직장의 동료, 믿음의 형제자매들, 그들 안에 하나님이 숨겨두신 하나님의 본질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영적 예민함이 참으로 성숙한 것입니다. 시인은 저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히 섰다고 고백할 만큼 영적으로 깊이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시 119:90)
시인은 이제 땅을 바라봅니다. 하늘에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히 서 있음을 보고 고백한 다음, 땅을 내려다보니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또다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땅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들에는 풀이 자라고, 곡식이 익어가고, 꽃들이 만발하지 않습니까? 동식물들이 존재하고, 나무가 자라고, 동물들이 뛰어다닙니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느낍니다.
사시사철 색깔이 바뀌는 들판을 바라보면 농부의 수고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올 한 해도 성실하게 이 땅을 가꾸셔서 곡식이 이렇게 풍성하게 자라고, 과실이 영글고, 이것을 우리가 먹고 마시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야생동물들은 누가 돌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성실하게 그들을 돌보시니 저 야생에서도 동물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그 생태계를 이루며, 먹는 것과 살아가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시인은 예민한 영적 눈으로 땅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깊이 느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 모든 것이 운행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늘도 땅도, 즉 온 우주는 다 하나님의 성실하심대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창조적 주권대로 운행되고 있습니다.
만물의 순종과 인간의 책임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 (시 119:9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후로 하늘과 땅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은 주의 규례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굳건히 서 있고, 땅은 성실하게 자기의 모든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물이 주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권자로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의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겨지는 인간은 정말 창조의 섭리대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 인간이 진정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각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그 자유의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고유한 특권입니다. 자유의지 가운데에는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만물처럼 봄이 되면 자동으로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자동으로 열매를 맺도록 인간 안에 프로그램을 심어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허용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강제된 순종이 아닌 자유로운 순종을 원하셨기에, 우리 인간에게 그렇게 자유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가 타락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연을 파괴하고, 우리 스스로를 파괴하며,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불행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다시 배워야 합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 주권자를 인정하며 살아가는데,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종 된 자로서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고 살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종일 우리 삶을 살아가면서, 나의 나됨을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로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이 참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하늘을 바라보며 해와 달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 비와 천둥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운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땅을 바라보니 동식물들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따라 여전히 순종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도 일상에서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그 말씀이 굳건히 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예민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둘째는 만물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존재하는 것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하나님께 불순종한 적이 없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말씀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만물의 모범을 따라 배워야 합니다.
셋째는 자발적 충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봉건제도나 군주제 아래서의 충성은 외적 강제에 의한 것이었으나,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헌신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고백하기에 기꺼이 드리는 충성입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이 세상을 바라보며,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섭리를 따라가는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것이요, 주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온종일 살아가며, 마지막 순간까지 주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