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랑의 유익
시편 119편 97-104절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감정입니다. 이 감정이라는 것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능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인데, 사람의 감정은 말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대단히 다양합니다. 단일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복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감정이 크게 올라오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 감정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의 감정은 참으로 특별합니다.
그러나 그 감정 중에서도 사랑의 감정은 인간을 더욱더 특별하고 더욱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줍니다. 사랑의 감정이 있으면 사람이 움직이게 됩니다.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이 행동하게 되고, 주머니에 돈이 있어도 인색하고 쓰지 않던 사람들이 사랑의 감정이 풍성해지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게 됩니다. 창의성이라곤 전혀 없었던 사람이 사랑의 감정이 생기면 놀라운 창의력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게 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부모가 가지고 있는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자녀와 놀아줄 때 창의력이 생겨납니다. 시간도 아깝지 않고, 움직이지 않던 사람들이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남녀가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돈을 써도 아깝지 않고, 시간을 사용해도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창의력이 생기고 움직이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그것을 깨닫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에 나오고,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출석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때부터 믿음 생활 자체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을 내고, 섬기고, 봉사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돌봐주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인내하며 참아냅니다. 결국 이러한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이끌어 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생기는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스물두 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은 열세 번째 연을 살펴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22자 중에 열세 번째 글자 '멤(מ)'으로 시작하는 여덟 절을 읽었습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의 모습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 119:97)
주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종일토록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우리가 노래를 좋아하면, 어떤 한 가수의 노래에 빠져들게 되면 하루 종일 그 노래를 입술에 두고 흥얼거리지 않습니까? 어떤 한 찬양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 그 찬양의 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내 입술에서 한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주의 말씀을 뜨겁게 좋아하게 되면 그 말씀을 항상 입술에 두고 읊조리며 말씀을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을 사랑하게 될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말릴 수도 없습니다. 이제 좀 그만 읽으라고, 그만 읊조리라고 해도 주의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말씀을 마음에 두고 입술에 둡니다.
말씀이 주는 지혜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시 119:98)
이렇게 주의 말씀을 사랑해서 늘 가까이하고 입에 두는 자에게는 특별한 유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그 말씀을 입에 두고 읊조리게 되고, 말씀을 늘 입에 두고 읊조리며 가까이하면 원수보다 지혜롭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생기는 특별한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지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혜란 무엇입니까? 다양한 정의를 할 수 있겠지만, 지혜는 판단력과 분별력을 의미합니다.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아갈 수 있는 판단력, 악한 것 중에 지극히 악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 선한 것 중에도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숱한 선택의 순간을 만납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선택을 잘못해서, 판단을 잘못해서, 사람을 잘못 봐서, 사태 파악을 잘못해서, 분별을 잘못해서 생겨난 인생의 불행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때 자신의 영적 상태를 한번 진단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입에 읊조리며 살았다면 그런 엉뚱한 판단과 분별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판단과 지극히 선한 분별을 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해 보면,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이 내 심령 속에 살아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를 지혜롭게 해서 판단과 분별에 오차가 없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지 않습니까? 분별을 할 때도 자신의 지난날 경험을 기준으로 분별합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지난 경험으로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읊조리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판단과 분별력을 일러줍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분별하게 됩니다. 그러니 틀림이 없고 오차가 없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재위 기간 동안 토목 공사를 수없이 많이 시행했습니다. 백성들은 지치고 피곤하며 힘들었습니다. 솔로몬 사후에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나라는 분열의 조짐을 보였습니다. 백성들은 르호보암에게 토목공사 중단을 요청했습니다. 르호보암은 원로 집단을 찾아가고 젊은 사람들의 집단을 찾아가 각각 조언을 구했습니다.
원로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성들의 말을 수용해 주라고, 토목공사를 중단하고 그들을 껴안아 주라고, 이제는 토목공사가 아닌 국정에 치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과 함께 자라난 젊은 사람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무시해서 저렇게 요구하는 것이니 백성들의 요구를 듣지 말라고, 부친보다 더 강력하게 통치하라고 조언했습니다.
르호보암은 불행히도 젊은 사람들의 조언을 따랐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여로보암이 출현했고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상황을 보고 시대를 분별하는 분별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 불행한 것은 르호보암에게 말씀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이런 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다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살아 있으면 굳이 사람을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녹아 있으면, 그 말씀을 읽고 읊조리고 묵상하게 되면 엉뚱하고 이상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우리는 지혜롭게 됩니다.
지혜는 여러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지혜로운 어른에게 젊은 사람들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자녀들이 지혜로운 어른들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한 어른들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노년에 우리가 정말 갖추어야 할 것,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붙들어야 할 것, 가장 위대한 노후 대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혜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이 외롭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이 풍성한 사람, 그 사람을 많은 이들이 존경하고 존중하며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과 노인을 능가하는 명철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시 119:99-100)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명철함이 스승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명철함이 노인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스승이 의미하는 것은 지식입니다. 노인이 의미하는 것은 경험입니다. 우리가 어찌 우리의 지식이 나를 가르친 스승보다 나을 수 있겠습니까?
이 시대에 스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방송에 출연하여 인문학을 강의하고, 책을 써서 자신의 지식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무척 많습니다. 이 시대의 노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은 불과 백 년 남짓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이 풍성하다 하더라도, 사람이 아무리 경험이 풍성하다 하더라도, 기껏 살아온 세월이 백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깊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말씀으로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이러하니 하나님 말씀의 깊이가 어찌 백 년도 채 살지 못한 노인의 경험과, 백 년도 채 되지 못한 스승의 지식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읊조리며 읽고 묵상하면, 세상의 지식과 경험과는 비견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금은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놀라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님은 말씀 자체가 아니셨습니까? 열두 살에 부모와 동네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유월절을 지킬 때, 그곳에서 랍비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면 사람들이 이 놀라운 지혜와 지식이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그분을 놀랍게 여겼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연소함을 업신여긴 것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들입니다. 예수님은 그 연소함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 그 자체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노인의 경험과 스승의 지식보다 더 뛰어난 하나님의 말씀을 더 기뻐하고 사랑하며,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 은혜로운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꿀보다 단 말씀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 119:103)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의 말씀의 맛을 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가까이하여 그 말씀에 정말 지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노인의 경험보다, 스승의 지식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찌 말씀을 끊어낼 수 있겠습니까? 계속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꿀보다 더 단 말씀을 항상 가까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선순환이 우리 인생에 항상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합니다.
말씀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그 말씀을 종일 묵상하고 입에 두게 됩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말씀을 가까이하게 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게 되고, 그 말씀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둘째는 말씀으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올바른 판단력과 분별력을 줍니다. 자기중심적인 판단과 제한된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하고 분별할 때 우리 인생에 오차가 없게 됩니다. 이것이 말씀이 주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셋째는 말씀을 최고의 노후 대책으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과 경험은 백 년을 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 창조 이전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무한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이 풍성한 사람은 많은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생명보다 귀한 말씀, 노인의 경험보다, 스승의 지식보다 더 뛰어나고 비교할 수 없이 존귀한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하고, 악에서 건져 내며, 선한 판단과 분별을 갖게 합니다. 이 놀라운 진리와 지혜의 말씀을 붙들고, 악하고 험한 세상을 견디며 이겨내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