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으로
시편 120편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고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존재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그만큼 취약하기에 우리 같은 연약한 존재를 어떻게 하면 좋은 환경 속에서 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나온 지혜의 말씀입니다. 좋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들이 빚어내는 좋은 분위기 속에 살면 자연스럽게 좋은 인격으로 성장하고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악한 사람들이 빚어내는 악한 분위기 속에 몸을 맡기고 살다 보면 어느새 인격이 변질되고 삐뚤어지며, 생각하는 것들이 항상 악해져 있음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민감합니다. 그 환경을 그 자리에서 버티며 스스로 바꾸어 갈 수 없다면, 그 자리를 과감히 벗어나 환경을 재빨리 바꾸어 보는 것도 매우 훌륭한 지혜에 속하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0편의 저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속적인 환경, 세상의 분위기가 자신을 괴롭고 힘겹게 짓누르기에 방향을 바꾸어 성전으로 향하였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은 이 시편은 120편 한 편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20편부터 134편까지 무려 15편에 동일한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순례자의 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긴 포로 기간이 끝나고 그들은 포로 귀환을 명령받았습니다. 조상들이 살았던 옛 땅에 돌아와 보니 성전은 무너지고 황폐해져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1차 포로 귀환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바로 성전 재건의 명령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돌아온 귀환자들은 성전을 다시 세웠습니다.
성전을 재건한 이후에 그들이 성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겠습니까. 당연히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위해서는 찬송이 필요한데, 이 찬송을 부르기 위해 그들은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시편들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세의 시편도 모으고, 다윗의 시편도 수집하고, 고라 자손과 아삽의 시편 등을 모아서 150편의 찬송시들을 예배의 자리에서 함께 불렀습니다.
그중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표제어가 붙은 이 열다섯 편의 시편은 그들이 포로 시기에 성전을 그리워하며 올라갔던 순례자들의 절절한 심정을 노래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성전을 떠나 살 때 그들이 얼마나 그리웠겠습니까. 비록 다 불타버리고 무너져 버린 성전이라 할지라도 과거에 부모님과, 자녀들과, 가족들과,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올라가 예배드렸던 그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였겠습니까. 순례자들이 성전을 그리워하며 사랑하며 불렀던 그 노래의 심정을 그들은 기록하고 기억하며 이 시편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이것이 영원히 예배의 자리에서 성전을 사랑하며 불렀던 노래입니다.
거짓된 세상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시 120:2)
시인은 이 세상을 정의하기를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라고 규정합니다. 이 세상을 이토록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거짓된 입술이요 속이는 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누군가를 항상 속이고 거짓으로 꼬드겨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본질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많이 속으며 살아갑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 불법으로 속기도 하고, 합법을 가장하여 속기도 합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면 비로소 '내가 속았구나, 또 이 악한 자들에게 당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정직한 사람들, 선한 사람들, 어진 사람들은 항상 거짓을 행하는 자들과 속이는 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악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악한 자들에게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더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그들과 겨루어 이기려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이것을 일찍이 간파하고 '나는 여기서 더 악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방향을 바꾸어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가지기 위해서 나도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갖겠다는 선택 대신, 성전으로 올라오겠다고 결단하고 발걸음을 성전으로 옮긴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오면 도대체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이 있습니다. 성전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고 완전하여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대로 임하시고, 그 말씀을 순전하게 믿는 자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속이는 혀와 거짓된 입술에 지친 사람들이 성전에 올라와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엎드리면, 그 말씀을 우리에게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온 우리 각 사람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이 지쳤습니까. 거짓말하는 자들, 속이는 자들로 인하여 피폐해진 영혼들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순금 같은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믿을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믿지 못하는 자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가진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고 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들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 앞에 올라와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환경을 바꾸는 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주일에 단 한 번이라 하더라도, 하루의 많은 시간 중에 단 몇 분이라 하더라도 성전에 올라와서 기도하고 말씀을 보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다잡는 시간들은 참으로 귀중한 시간들입니다. 환경을 바꾸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나아가는 오늘 이 하루가 우리 인생의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화려한 세상의 허상
"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시 120:5)
메섹과 게달의 장막은 화려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참으로 화려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우리의 눈이 항상 그곳을 주목하고 바라볼 정도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그 유혹하는 세상이 정작 우리를 건져내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강하고 화려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화려한 소돔 땅으로 갔습니다. 그 소돔 땅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곳은 화려했고, 문명이 발달했으며, 먹고 살 것이 풍족했고,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곳을 심판하시니 한순간에 불바다가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게달의 장막, 메섹 그 화려한 곳을 우리가 사모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만난 첫 번째 성인 여리고 성은 매우 강력했습니다. 개미 새끼 하나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견고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 앞에 서서 그 위엄 앞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도무지 자신들의 힘으로는,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이 성을 쳐서 이길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니 그 성을 돌기만 해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메섹과 게달의 장막, 우리가 사모할 바가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붙들고 계시면 가장 강력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교회를 지키시고 돌보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우리 가정을 예배드리는 공간으로 만들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붙들고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일터를 예배의 자리로 세워 가면 하나님은 우리 일터도 지키시고 붙드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화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주의 말씀 붙들고 살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곳을 지키시고 돌보시기 때문입니다.
화평의 근원
"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시 120:6)
시인은 세상 사람들을 또한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이 화평을 왜 미워합니까. 사람들끼리 화평하려면 자기를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더 힘이 세다고 힘을 자랑하는 것은 화평이 아닙니다. 자기를 누르고,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복종시켜야 비로소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부귀영화와 권세를 과시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거기에서 떠나 성전으로 올라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화평이 있는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의 화평을 위하여 우리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이곳에는 화평이 있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평화가 우리 마음속에 성전에 올라와서 기도하고 말씀 보고 예배 드리는 순간 흘러넘칠 것입니다. 세상의 악한 권세들을 떠나 오늘 이 자리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주의 모든 백성들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임하는 화평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 화평을 가지고 오늘 세상에서 하나님께 받은 평화를 전하며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환경을 바꾸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가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도 악해지기 전에, 방향을 바꾸어 성전으로 올라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매일 새벽 예배의 자리로, 주일 성전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전하고 완전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말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습니다. 성전에 올라와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엎드리면, 그 말씀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참된 화평은 성전에서 얻습니다. 세상의 화려함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시고 붙드시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화평을 성전에서 받아 세상에 나아가 전하는 복된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은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로 가득 차 있고, 메섹과 게달의 장막처럼 화려하고 견고해 보이며,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곳에서 지치고 힘에 겨워 더 이상 혼자 견딜 수 없을 때, 우리도 속이는 혀가 되어갈 것 같을 때, 방향을 바꾸어 성전으로 올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순전하고, 아버지께 엎드려 드리는 기도를 반드시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화려해 보이는 세상을 떠나 초라한 성전에 올라와 이곳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참된 화평을 경험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