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올라가는 기쁨
시편 122편
저는 어릴 때 시골 큰아버지 댁에 가는 것이 항상 여름방학, 겨울방학의 큰 일이었고, 또 기쁨이었으며, 방학이 가까이 오면 설렘이 있었습니다. 시골 큰아버지 댁에는 저보다 여섯 살 많은 사촌 형님이 있었는데, 사촌 형이 만들어 주는 새총을 가지고 새를 잡는 것이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고, 산과 들로 다니면서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을 경험하게 해 주는 것도 큰 기쁨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지게를 지는 법도 알려주고,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겨울에는 군고구마를 구워 먹고, 군밤을 구워 먹는 일도 도시 생활에서는 한 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시골 큰아버지 댁을 생각하면 이런 기쁨과 설렘이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첫 번째 교회도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첫사랑의 기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첫 교회에서, 시골 교회에서, 동네 교회에서 성탄절을 보냈던 기억들, 추수감사절을 보냈던 기억들, 어린 시절 동네 마을 친구들과 함께 교회에서 성탄절 장식을 했던 기억들, 그런 기억이 오늘 우리를 살게 하는 기쁨의 기억들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2편의 저자도 하나님의 성전을 기억하고, 성전에 올라가는 기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20편부터 134편까지는 성전에 올라가는 자의 기쁨과 설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성전은 저마다에게 아주 독특하고 특별한 경험들을 선사합니다. 성전에서 회개의 기쁨에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난 특별한 은총과 은혜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도 있으며, 성전에서 인생의 해결되지 않았던 해묵은 문제가 해결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기쁨과 행복감을 오늘 이 시편의 저자가 다양한 형태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집에 오르는 기쁨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시 122:1)
어떤 사람이 이 시편의 저자에게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자고 했을 때, 그는 기뻐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오늘날 교회와는 달리 예루살렘에만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결코 가까운 길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저 북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남쪽 예루살렘까지 올라가는 일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고, 설렘이 되고, 감사가 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시인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시 122:4)
하나님의 전에 올라가는 것이 기쁜 첫 번째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자, 오늘 이 시편의 저자는 하나님께 감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감사의 제사
시편 122편뿐만 아니라 시편 50편 23절에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50편의 저자는 아삽입니다. 아삽이라는 사람은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에 찬양대 지휘자로 세운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삽이라는 사람은 성전의 지휘자로 오랫동안 봉사했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성전에 올라오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보았는데, 어떤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가지고 와서 예배드리고, 어떤 사람은 소를 끌고 와서 예배드리며, 어떤 사람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시고, 그런 자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그는 노래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가지고 예배드리러 왔습니까. 성전에 올라오는 자는 우리를 살게 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건져 주신 하나님, 지금도 호흡하게 하신 하나님, 지금도 이 자리에서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감사절을 지킵니다. 맥추감사주일을 지키고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다. 그런데 일 년에 두 번만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 우리의 일상,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감사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감사라고 하는 것은 가장 큰 기쁨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인데, 구원받은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태어난 대로 살다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정욕과 욕심대로 살다가는 지옥 백성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각 사람에게 선물로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기쁨을 하나님 앞에 어떻게 해서든지 감사드리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요 제사로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셨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는 범사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 감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하지 않을 때는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감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죄악 가운데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의 영혼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감사의 조건이 차고 넘치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 여정 동안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입만 열면 불평이고 불만이었고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이 감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와서 이 하루를 예배로, 기도로 시작하는데, 첫 기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젯밤 깊은 잠을 주셔서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오늘 우리에게 호흡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루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돌아보면 감사할 제목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가 넘치는 자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감사의 제목을 주실 것이고, 그 감사가 우리를 새롭게 하고 또다시 살게 할 것입니다.
나라의 평안을 위한 기도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시 122:6)
오늘 이 시편의 저자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노래합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기쁨의 두 번째 이유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단순히 하나의 도시의 개념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나라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당시 성전에 올라가는 자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평안을 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이 나라의 번영과 평안과 부국강병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평안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를 기뻐하시고, 어떤 나라 백성들을 안위하시고 보호하시겠습니까. 성전을 지키며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백성이 많은 나라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돌보실 것입니다.
남유다가 왜 망했습니까. 북이스라엘이 왜 망했습니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그 나라에 군사가 없어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왕이 없어서 망한 것도 아닙니다. 나라가 망한 것은 기도하는 백성들이 없어서 망한 것입니다.
남유다가 망할 때 왕실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다 다투고 싸우기에 바빴습니다. 제사장들, 서기관들, 종교 지도자들,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토록 외쳐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구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권해도, 모든 나라 백성들이 성전에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왜 내리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하여 예배 공동체를 박차고 나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텅텅 비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백성들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세상을 심판해 버리신 것입니다.
적어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백성들이 있는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서 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개인의 안위와 부귀영화를 위해서만 기도하지 않고, 나라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신 적이 있습니다. 왜 우셨습니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곧 망해 버릴 이 성을 보시고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우셨다는 것은 그 성을 위해서, 이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백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분통히 여기시고 주님께서 우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장 이른 시간에 이 자리에 나와서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이 나라와 민족,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강산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이 복음으로 새로워지도록, 이 땅이 변질된 복음에 물들지 않도록 우리가 열심히 이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와 이웃을 위한 기도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지어다" (시 122:8)
시인은 성전에 올라와서 친구와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가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두 번째 기도하는 것이 이 나라와 민족의 평안을 비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기도하는 것이 가족, 친지, 친구들,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평안을 비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올라와서 우리 가족, 친지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인의 기도처럼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내 혈육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먼저 감사의 제사가 기도로 올려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후에 가까운 이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친히 들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 기쁨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올라온 기쁨이 되고, 앞으로도 기도 생활하는 내내 우리의 기쁨과 은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가 가장 귀한 예배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셨고, 감사의 제사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된 입술을 버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가 넘쳐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고,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며, 오늘도 건강 주셔서 주의 전에 불러 주신 것에 감사하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군사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하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이 땅, 우리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의 용사가 되어, 이 땅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새롭게 굳게 서도록 기도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가까운 이들을 위한 기도도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시인은 감사의 기도 후에, 나라를 위한 기도 후에 비로소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먼저 감사가 우선되고, 나라를 위한 기도가 있은 후에,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귀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시인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렸습니다. 우리의 입술에는 항상 원망과 불평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의 입술 가운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가 넘쳐나게 되기를 원합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것뿐이니 진실로 범사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에 용사가 되어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의 백성으로 세워지시고, 사랑하는 형제와 친구들과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