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을 들어
시편 123편
우리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시선이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신앙관과 인생관이 결정됩니다. 시선 처리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편안하게 이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고 시선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사람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을 때, 그 사람 집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보고 그 집의 화목한 정도를 살피며 그 집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집의 가구가 어떠한지, 가전제품은 어떤 것을 쓰는지 외형적인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느냐, 내가 보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하고 어떤 것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과 신앙관이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3편의 시인이 하나님을 바라본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 시인의 시선에 따라서 이 시인이 어떤 인생관, 어떤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잘 나타나 보입니다.
눈을 들어 주를 향함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 123:1)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라는 이 표현으로 봐서 지금까지 이 사람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여타의 것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시선을 돌려서 주님을 바라본다고 노래합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전까지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것을 보고 어떤 실망을 했는지, 혹은 어떠한 사건을 겪었는지도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가 하늘에 계신 주를 바라봅니다. 눈을 들어 주를 향한다고 노래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보려고 해도,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아무리 멀리 봐도 눈에 보이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손을 뻗어서 잡으려고 해도 손에 만져지거나 잡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하늘에 있는 주를 향한다는 말, 내가 눈을 들어 주를 향하고 바라본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편의 표제어가 성전을 향하여 노래하는 시편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자, 바로 그가 하나님을 향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성전으로 자기의 발걸음을 옮기면서, 성전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서 이제 나의 시선이 세상을 향하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나의 눈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성전으로 올라가는 내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시선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게 어떤 사건을 겪어도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 땅에 오래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불러 주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서 내가 너에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라와 조카 롯을 데리고 먼 길을 떠납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일흔다섯의 나이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의 시선이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도착한 가나안 땅의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왔다면 그 땅의 형편이 괜찮아야 하는데, 아브라함을 향한 선물이 있어야 하는데, 가나안 땅의 상황은 극심한 기근이었습니다. 그때 그가 바라본 것은 말라 죽어가고 있는 그 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 땅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그는 죽을 고생을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거짓말도 했습니다. 겨우 살아남아서 아내를 건지고, 은금 패물을 가지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그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시는 내려가지 않겠다. 다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약속의 땅을 내가 보는 육체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겠다.'
그리고 그는 돌아와서 다시는 그 땅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시선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약속의 땅을 향해서 올라왔고, 그 땅에서 뿌리박고 정착합니다.
반면, 그의 조카 롯의 시선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롯은 애굽 땅에 내려가서 그 땅의 비옥함을 보았습니다. 그 땅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삼촌을 따라서 다시 돌아온 가나안 땅을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육체의 시선으로 가나안 땅,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을 바라봅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생기자 소돔 땅으로 건너가 버립니다. 애굽 땅과 비슷한 소돔 땅, 그 땅의 부유함을 쫓아서 먼 길을 떠나버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왕들의 전쟁에 휩싸이게 하시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를 건져 주십니다. 그러면 돌아와야 하지 않습니까. 소돔 땅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가 먹고사는 것을 쫓아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내려간 그 땅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는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결국 망해 버리지 않습니까. 결국 자기 혼자 망한 것이 아니라, 두 딸들과 아내와 함께 망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간절하게 중보 기도를 드렸고, 그를 건지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도 천사들까지 보내 주셨지만, 그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성전으로 향하는 발걸음
세상에서 힘든 일을 당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발걸음을 성전으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는 존재입니다. 일터가 세상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곳을 살다 보면 힘든 일도 겪고, 어려운 일도 겪습니다. 그곳을 살다 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도 겪습니다.
오늘 시인이 세상에서 겪었던 일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에게 심한 멸시가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시 123:3-4)
그가 세상에서 겪었던 것은 심한 멸시였습니다. 사람들의 조소와 손가락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발걸음을 성전으로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심한 멸시를 당하면 나는 더 심한 멸시로 그 사람을 조롱합니다. 그리고 나는 더 악해져서 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싸웁니다. 그렇게 해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살이가 힘겹고 어려울 때, 그때 우리는 시선을 하나님을 향하여 돌리고, 우리 발걸음을 성전을 향하여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곳에서 방향을 잡고, 우리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매 순간 쓰러지고 넘어지고 상처받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시선을 성전을 향하여 두고 올라오면 이곳에서 위로받습니다. 힘을 얻습니다. 힘과 위로를 받고 다시 세상에 나가서 믿음의 백성으로 맞서 싸우고 승리하고, 예수 믿는 자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오늘 이 시인처럼 우리가 방향을 다시 하나님께 돌리고 올라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절함과 순종의 눈
그렇다면 오늘 이 시인은 성전에 어떤 마음으로 올라왔겠습니까.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 123: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의 눈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이 어떠합니까. 첫째는 간절함이요, 둘째는 순종의 마음입니다. 은혜를 바라는 종들의 눈, 그 상전의 손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상전의 손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느냐에 따라서 지금 당장 순종하겠습니다, 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겠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온 것입니다.
간절함과 순종하는 마음, 그런데 어떤 사람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전에 올라올 때 간절함은 가지고 있는데, 순종하겠다는 마음은 잘 가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순종보다는 요구 사항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 이것 들어주십시오, 이것 하나님께 호소하니 해결해 주십시오' 하는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더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요청하고자 하는 마음, 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와서 따져 묻는 사람도 있고, 요청하고 애타게 부르는 것도 많습니다. 물론 성전에 올라와서 하나님께 요청하고 목 놓아 부를 수 있고, 하나님께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우선하는 마음은 간절함이요,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요구하는 것은 많았으나, 순종하는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과 같은 우리의 간절함과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하는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에서 심한 멸시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서 다시 하나님의 전에 올라온 각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을 회복시키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주시는 말씀, 그 말씀이 무엇이든지 간에 순종하겠다는 그 마음의 결단이 하나님을 감동케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세상에는 심한 멸시가 있습니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을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때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 더 악해지지 않고, 우리가 눈을 들어 주님을 향하고 발걸음을 옮겨서 성전으로 올라와야 합니다. 오늘 이 시편의 시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오는 발걸음을 따라가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전에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오늘 이 하루를 하나님의 전에서 시작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결단하고 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뜨거운 결심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매 순간 쓰러지고 넘어지고 상처받는 것이 우리 인생이지만, 다시 성전을 향하여 올라오면 이곳에서 위로받고 힘을 얻습니다.
셋째는 간절함과 순종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의 눈,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간절함과 순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의 전에 올라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요청하고 요구하고 떼쓰기 전에 먼저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순종을 결단하는 우리 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허락하시고, 기도의 응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순종을 결단하고, 순종함으로 더욱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