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하나님
시편 125편
세상의 특징 중 하나가 변화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변하고, 강산도 변하고, 세월도 아주 급하게 변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아주 빠르게 변합니다. 건강의 상태가 변하고, 10년 전과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습니까. 좋은 의미에서 변화하기도 하고, 나쁜 의미에서 변화하기도 합니다. 생각도 달라지고,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사람이 변하고, 우리 자신이 변하고, 세월과 강산이 변하는 이 급박한 세상에서 우리가 적응하고 살아남으려면 변화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그걸 빨리 수용해야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 이렇게 빨리 변하는가, 왜 사람은 저렇게 변하는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사회 부적응자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이렇다 보니 사람도 변하고 세상이 변하다 보니, 우리 마음속에는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기대와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을 좋아합니다. 산은 가 보면 항상 그대로입니다. 어릴 때 갔던 산이나 오늘 올라가는 산이나 산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자연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을 좋아하는 이유도 잘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산천이 다 변했다 하더라도 과거에 내가 다녔던 학교 담벼락이라도 그대로 남아 있으면, 사람들은 그 담벼락에 기대어 과거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기대하고, 또 그 기억을 좋아합니다.
시온 산의 변함없음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산천에 대한 시인의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 125:1)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이 시인이 성전에 올라오면서 자기 눈에 들어온 것은 시온 산이었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을 두르고 있는 산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안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시인은 어릴 때는 잘 몰랐습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올라올 때 그의 눈에도 시온 산이 들어왔습니다. 과거 어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오는 그 길에서도 그의 눈에는 시온 산이 있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세상을 떠난 오늘, 성인이 되고 이제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지는 이 시절에 다시 올라오는 성전, 이제 그의 눈에 다시 시온 산이 들어옵니다.
그제서야 문득 깨닫습니다. '시온 산은 여전히 그대로 있구나.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있고, 그 성 안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을 둘러싸고 있는 저 시온 산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대로 있구나.' 그러면서 그는 반가움을 느낍니다. 세월이 얼마나 많이 흘렀겠습니까.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기 인생에 일어났던 변화도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급박하고 급변하는 세상이었습니다. 그가 이제 등지고 올라오는 세상, 그가 다시 성전에 올라갔다가 내려가야 하는 세상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시온 산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에 올라올 때 느끼는 감정, 기분이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이런 감정입니다. 예배당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 비해서 화려해지고, 커지기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다녔던 조그마한 내 고향 집, 그 곁에 있었던 시골 교회는 아닙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느낌, 그 분위기, 그리고 그때 느꼈던 예배당의 그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여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고 좋아합니다. 성전에 올라올 때마다 느끼는 그 따뜻함과 그 푸근함이 여전히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만족과 행복을 안겨 줍니다. 시인은 성전에 올라오면서 그 느낌, 그 기분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변함없으심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2)
그는 하나님의 변함없음을 보았습니다. 시온 산이 자신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그곳에 있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여전히 품어 안으시고 두르고 계신다는 것을 그는 깨닫고 느낍니다. 그는 하나님의 변함없음을 시온 산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한 깨달음이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변하십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이지, 세상이 변하고 세상이 악해지는 것이지, 하나님은 여전히 그 사랑 그대로 우리를 두르고 계시고 우릴 살피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에덴을 창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고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아담과 하와가 죄 짓지 않았더라면, 그 두 사람이 변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에덴동산에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변했습니다. 뱀에게 꾀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 먹고 맙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깁니다.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이 변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변했습니까? 하나님은 그대로입니다. 죄 지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묻습니다. 그런데 죄짓고 난 이후에 아담과 하와가 변했습니다.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해서 숨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합니다. 결국 죄지음이 사람을 변하게 했고, 그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변한 것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 에노스 때부터 예배 공동체를 이루고 삽니다. 하나님은 예배 받기를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취해 가고, 그들이 타락해 갑니다. 변질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배 공동체가 노아의 가족을 빼고는 다 무너지고 파괴되었음을 보시고 노아 홍수 사건을 일으키려고 작정하십니다.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변한 것입니까, 아니면 예배가 변질된 사람이 변한 것입니까? 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문설주와 인방의 피를 바르고 그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그 순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양을 잡고 문설주와 인방에 피 발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여정에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들이 변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할 때 그들은 여호수아를 따르면서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착한 이후부터 그들은 바알 신앙을 가집니다. 사람이 변한 것입니다.
한 개인을 살펴봅시다. 솔로몬이 어떤 존재입니까? 그는 다윗의 아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왕 다윗이 세상을 떠나고 그가 통일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두려웠습니다.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여기시고 찾아오셔서 묻습니다. "소원을 말해 보라, 네가 무엇을 원하든지 너는 그대로 다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솔로몬이 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주지 않으셔도 좋으니 저에게 지혜를 달라"고 합니다.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합니다. "이 많은 백성을 내가 재판할 수 없사오니 저에게 지혜를 주시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랬던 솔로몬이었습니다. 부귀영화, 권세보다 백성들을 사랑했던 솔로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솔로몬이 변합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타락하고, 결국 그는 우상 숭배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안타까이 여기셔서 그를 두 번이나 찾아가십니다. 돌이키라고 하지만 솔로몬, 돌이킬 기색이 없습니다. 그의 나라가 나뉘어지고 심판받았습니다. 돌아보면 사람이 변한 것이지, 하나님이 변한 것이 결단코 아닙니다.
변한 것은 우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섭섭함을 느낍니까? '과거의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분이었는데, 지금 하나님은 나에게 왜 이런 분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변하심을 느끼신다면, 그것은 우리가 변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살펴보셔야 됩니다.
과거에 내 순진했던 신앙, 과거에 내 깨끗했던 마음, 사람을 볼 때나 교회를 볼 때나 물질을 대할 때나 하나님의 교회를 섬김에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나 그때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계산적인 모습, 지금의 나의 탐욕적인 모습을 한번 비교해서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그 순전했던 첫사랑의 모습을 가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변한 게 아니라 사람이 변했다는 것, 오늘 이 시인은 그것을 발견했습니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영원히 변함없이 나를 돌보시고 두르고 계시는구나." 세상살이하면서 시인이 찌들고 힘들어서 많이 변했을 것입니다. 그도 역시 사람들과 경쟁 관계에서 누군가를 짓누르고 괴롭히는 변하는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성전에 올라오면서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변한 게 아니고 내가 변한 것이로구나.' 이것을 깨닫는다면 자기도 역시 과거에 그 깨끗했던 영으로 돌아가리라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매번 하나님의 전에 올라오면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느끼고 깨닫는다면, 우리도 하나님 앞에 그 순전했던 신앙으로 다시 돌이키고 돌아가는 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의인과 악인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시 125:3)
악인과 의인의 구분이 나옵니다. 오늘 이 시의 맥락에서 보면 악인은 변하는 사람이고, 의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여전히 그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시편 전체의 주제와 같은 맥락입니다.
시편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시편 1편 말씀, 복 있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합니까? 복 있는 사람을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고 노래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고 말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사람들이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나무 입장에서 보면 괴로운 일입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박고 자리를 옮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그대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시냇가에 심은 나무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믿음 생활 열심히 하고, 그 뿌리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빨아 올려서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내는 사람, 그 말씀의 능력으로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서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어떤 자를 악인이라고 말합니까? 바람에 나는 겨를 악인이라고 말합니다. 큰 죄를 지어서 무서운 범죄자가 되어서 악인이 아니라, 뿌리 없이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매번 자신의 얼굴을 바꾸며 살아가는 사람, 이런 자를 하나님은 악인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의인입니까, 악인입니까? 하나님의 전에 뿌리를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길어 올리고 그 말씀으로 열매 맺고 사는 사람, 사람들이 볼 때는 답답해 보이고 사람들이 볼 때는 '저러고 어떻게 사는가'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의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변함없이 말씀에 뿌리를 두고 인생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사는 사람, 그런 자들이 의인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온종일 하나님 앞에서 변하지 않기를 결단하고, 의인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성전에 올라오며 시인은 변하지 않는 시온 산을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나이가 든 지금이나 여전히 시온 산은 변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두르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그 산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하나님, 여전히 그대로 우리를 품어 주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죄 짓고 찢기고 올라와도 여전히 사랑으로 안아 주시고 우리를 품어 주시고 죄악 된 자들의 손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는 변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변한 것은 세상이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변한 것은 우리 자신이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변했음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과거의 그 순전했던 신앙, 그 순수하고 뜨거웠던 열정의 신앙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살아야 합니다. 뿌리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길어 올리고, 내 가지에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의 열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살아야 합니다. 뿌리 없이 이리저리 바뀌어 가는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악인의 인생을 살지 않도록,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뿌리 내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변함없는 하나님, 여전히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이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