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고 형통하리라
시편 128편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를 가리켜 상식이 통하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합니다. 건강한 사회라고 표현하지만, 정말 건강한 사회임을 나타내는 기준과 척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 모두가 동의하는 건강한 사회의 척도 중 하나가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노동의 신성함을 인정하고 있는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가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일자리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소득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으며, 그저 땀 흘려 일하는 수고 그 자체를 값지고 가치 있게 여기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는 노동을 인정하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땀 흘리지 않고 노동하지 않으면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불로소득을 항상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런 사회는 한탕주의가 만연해지며 건강하고 가치 있는 사회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점에 동의한다 할지라도, 노동과 복을 연결시킬 때는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열심히 수고하고 땀 흘려 번 소득이 적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수고하고 땀 흘리지 않고 그저 아무런 노동의 가치 없이 벌어들인 소득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후자를 훨씬 더 큰 복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시편 말씀은 그런 것들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경외와 순종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1)
우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경외라는 말은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하고 갖추고 있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 벌받을까 봐 무서워하며 그 앞에서 떠는 것과 경외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장차 이 땅을 심판하실 심판주이십니다.
너무나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 이 세상을 지으시고 지금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앞에 연약한 인간의 보잘것없음을 느끼는 것,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우리의 약함과 무능을 느끼는 것, 나의 죄성과 내가 생각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는 감정이 바로 경외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오늘 이 시편의 표제어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경외감을 느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경외감과는 별도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으로는 이것이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며 순종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그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배우고 깨달으며 말씀을 암송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말씀 공부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 복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길을 힘겹더라도 걸어가야 합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구원을 안겨주지 않았습니까?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이요, 예수님의 구원의 증표가 아닙니까? 십자가를 모르는 성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십자가라고 하면 눈물 흘리고 감격스러워하며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아는 것과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들 중에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아는 것으로 끝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각자 몫의 십자가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누구나 갖추고 있지만, 그의 길을 걷는 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말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복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시편을 기록하고 노래하는 순례자들은 성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성전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성전에 가면 여호와의 말씀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는 결단합니다. 오늘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끝내지 않고 그치지 않으며, 그 말씀대로 따라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런 자가 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듣고 따르고 순종해서 말씀이 복이 되고, 그 말씀이 다 우리 것이 되는 은혜가 모든 백성에게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노동의 축복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2)
이제는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형통이라는 말씀까지 덧붙여 줍니다. 어떤 자가 복되고 형통하다고 했습니까?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이런 자에게 복과 형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 왜 복이 되고 형통이 됩니까? 사람들은 이것을 복과 형통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네 손이 수고하지 않은 것까지,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얻어가고 누리는 것이 복과 형통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으면서 남들이 노동하고 땀 흘린 것을 자신이 가져가는 것을 복이요 형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절대로 그것을 형통이라고,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을 살펴보면 우리는 에덴동산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에덴 같은 파라다이스에는 노동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창세기 2장 15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기 전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그 땅을 경작하도록 하셨습니다.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에덴에 노동이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에덴동산에도 수고하고 땀 흘리며 노동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덴에서의 노동은 오늘 우리가 땀 흘리고 노동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효율성이 100퍼센트인 노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덴에서 땀 흘리는 만큼, 수고한 만큼, 경작하는 만큼 다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땀 흘린 만큼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 지은 이후에 어떻게 됩니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때부터는 땀 흘리고 노동한 만큼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땀 흘리고 아무리 열심히 노동을 해도 땅에서 가시덤불이 나고 엉겅퀴가 나는데 어떻게 다 가져가겠습니까? 노동의 효율성이 극도로 떨어집니다. 100을 노동해도 10을 가져가기가 어렵습니다. 열심히 수고해도 입에 풀칠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죄 지은 인간의 비애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어떻습니까? 열심히 수고하고 노동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수고해도 주변에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노동한 것을 가져가려고 하는 사람들, 세상에 악의 권세들이 우리의 노동과 수고를 빼앗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노래합니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 복이요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과 형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땀 흘리지 않고 수고하지 않으면서 달라고 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에덴의 노동이 회복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사오니 인생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하나님이 제거해 주시기를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노동의 가치가 삶의 자리에 가득 차고 넘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복의 근원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시 128: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자리가 시온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시인이 발걸음을 옮겨 올라가고 있는 곳이 성전 아닙니까? 시온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겠다고 결단합니다. 이것이 복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곳에 올라가면서 자기 인생의 밭에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제거되고, 수고한 만큼 얻어가고 누리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이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의 전에 올라왔습니다. 성전에 올라오면서 이곳에서부터 복이 흘러넘치기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복은 하나님 앞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의 복은 일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는 이 성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 찾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이곳에서 기도하기를 사모하시고, 이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를 사모하신다면, 여기서부터 흘러넘치는 여호와의 은혜의 복이 우리 인생을 가득 채우고 함께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이곳에서부터 흘러넘치는 복이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고 아는 것만이 복이 아니라, 그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알기는 하나 십자가를 메고 걷기를 힘들어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는 것이 참된 복임을 깨닫습니다. 에덴에서의 노동은 효율성이 100퍼센트였지만, 죄 지은 이후의 노동은 아무리 수고해도 가시덤불과 엉겅퀴 때문에 수고한 대로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는 이후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밭에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제거해 주십니다.
셋째는 복의 근원이 성전임을 기억합니다. 복은 시온에서 시작된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에서부터 말씀이 선포되고, 이곳에서부터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실 복이 시작됩니다. 성전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엎드리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