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겸손을 기억하소서
시편 132편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성을 통해서 지능을 발휘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은 어떤 한 단어를 들으면 그 단어에서 그치지 않고 그 단어가 주는 또 다른 의미를 연상하는 아주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2002년 월드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히딩크 감독을 떠올릴 것입니다. 히딩크 감독이라는 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 승리 혹은 탁월한 전술이라는 단어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의 실력이 세계 4강에는 어림도 없었으나, 그분의 탁월한 전술과 지도력으로 우리나라가 세계 4강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런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 내 이름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그 사람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요? 나의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로 타인에게 기억될까요? 좋은 이미지일까요, 나쁜 이미지일까요? 그런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각해보면,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하나님은 나라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기억하고 계실까요? 성실한, 부지런한, 순종적인, 하나님께 기도 열심히 하는, 겸손한 이런 말로 하나님은 기억할 수도 있고, 얌체 같은, 불순종하는, 하나님 말씀보다 자기중심적인 그런 등등의 단어로 하나님이 기억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성전과 다윗의 연결
오늘 본문은 성전에 올라가는 시인이 이 성전을 보고 누군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기억하다 보니 그 사람의 성품도 함께 떠올립니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시 132:1)
이 시인은 성전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올라가는데, 그 성전을 보는 순간 다윗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머릿속에 떠오르다 보니 다윗의 겸손이 함께 생각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성전과 다윗은 별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성전을 다윗이 지은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평생 동안 살면서 전쟁은 많이 했는데 성전 지은 적은 없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훗날 솔로몬 성전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파괴되고 무너진 이후에 포로 귀환 후 성전은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성전과는 하등에 상관이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이 성전을 보고 곧장 다윗을 생각합니다. 솔로몬을 떠올려야 정상인데 왜 다윗일까요? 솔로몬을 떠올리지 않는 이유는 성전 건축의 위대한 왕 솔로몬보다 그는 그의 인생 말년에 우상 숭배자로 마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전과 솔로몬을 연결하지 않습니다. 기껏 열심히 했는데,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성전도 건축하고 위대한 영토를 확장한 제왕이었는데, 그런데 후세대 사람들은 성전과 솔로몬을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처음과 끝이 동일해야 하고, 믿음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성실하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질되지 않고 처음과 과정과 끝이 동일해야,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해 주십니다. 좋은 이미지로, 믿음의 동역자로, 우리 후세대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으려면, 우리는 기껏 내가 성실하게 일하고 봉사한 이후에 마지막을 망쳐서는 안 됩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 앞에서 입에 좋은 말, 귀에 듣기 좋은 말 하는 사람들 말고 정말 객관적으로 나는 누구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의 겸손
그렇다면 왜 이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며 다윗을 기억했으며 또 다윗의 겸손을 떠올렸을까요? 다윗의 일평생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인이 기억하는 다윗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그는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역사의 전면에 처음 나타날 때 골리앗과의 전투였습니다. 그때 다윗이 들고 나간 것이 무엇입니까? 물멧돌이 아니었습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가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가 골리앗에게 던진 출사표가 그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그가 가진 물멧돌, 그가 가진 재능, 그가 가진 능력으로 골리앗에게 나가지 않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전쟁터에 살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자기 능력과 자기 이름과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탁월함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그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사울을 죽일 만한 기회를 여러 번 만났습니다. 그런데 칼을 들어서 사울의 목숨을 빼앗지 않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종을 제가 제 손으로 어떻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사울을 존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중한 것입니다. 그를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주권, 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신은 사울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기 때문에 함부로 칼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가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또한 다윗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물질도 있었습니다. 백성들 앞에 지도력도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니 멈추었습니다. 하지 말라고 하시니 하지 않았습니다. 멈추는 순종, 뒤로 물러서는 순종이 그의 겸손을 대변합니다.
또한 그는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에 나단 선지자를 하나님이 보내셔서 그의 죄를 지적하실 때 그는 그 자리에서 엎드립니다. 시편 말씀을 보면 그가 흘린 눈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그 눈물로 자기 침상을 띄울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회개가 없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죄를 지적받을 때 엎드려 회개하고 엎드려 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다윗을 떠올리고 다윗의 겸손을 떠올립니다.
예배자의 겸손
그런데 또 한 가지 규명해야 할 사실은, 그렇다면 왜 성전에 올라가면서 이 사람은 겸손을 떠올렸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아주 중요한 한 가지,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겸손 말고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올라가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로 올라가면 예배가 되겠습니까? 예배드리는 자는 자신의 모든 존재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겸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배자로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러 올라오는 자들 중에 오늘 우리도 이 자리에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시작하는데, 힘 빼지 않는 자들, 겸손하지 않는 자들, 여전히 자기 주장을 늘어놓는 자들, 그 주장으로 인해서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배자는 모름지기 겸손해야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레위기 5가지 제사를 보십시오. 첫 번째, 가장 대표적인 제사가 번제입니다. 다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타고 남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그 제사가 성립됩니다. 소나 양을 가지고 와서 잡아서 각을 뜨고 하나님 앞에 태워드리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 우리가 진실한 예배자라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나라는 존재는 남지 않아야 합니다. 교만한 자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진실로 겸손한 자라야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남는 것이 없이 다 태워지고 가루만, 재만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는 자는 진실로 겸손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자의 복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성실히 맹세하셨으니 변하지 아니하실지라 이르시기를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 (시 132:11-12)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 왕위가 영원하리라고, 네 후손과 그 후손의 후손도 왕위에 앉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두 가지로 성취됩니다.
하나는 다윗 왕조였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갈라집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그러나 남유다는 다윗의 혈통에서 지속적으로 왕이 납니다. 북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자고 나면 왕조가 바뀌었지만, 다윗의 왕조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두 번째 이 약속은 다윗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계승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왕 중의 왕,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겸손한 자, 하나님이 그 가문과 그 후손을 복주십니다. 우리가 이 겸손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이해하면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어깨 들고 고개 들고 뻣뻣하게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셔서 그분뿐만 아니라 그 자손의 자손과 후손의 후손까지 다윗의 후손처럼 세우시고 인도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이 겸손이 오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능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처음과 끝이 동일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위대한 왕이었지만, 말년에 우상 숭배자로 마쳤기에 후세대 사람들이 성전과 솔로몬을 연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질되지 않고 처음과 과정과 끝이 동일해야, 그래야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 이미지로 기억해 주십니다.
둘째는 참된 겸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겸손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러설 수 있는 것이었고, 죄를 지적받을 때 엎드려 회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능력과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겸손한 사람입니다.
셋째는 예배자는 모름지기 겸손해야 합니다. 번제의 제사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그 제사가 성립되듯이, 진실한 예배자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나라는 존재가 남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겸손한 자에게 후손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겸손이 오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능력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