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과 동거
시편 133편
교회란 어떤 곳인가에 대한 다양한 정의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이며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우리 성도들은 그 몸의 지체라는 고백입니다. 머리가 그리스도가 되시고 성도들이 그 몸의 지체가 된다는 말이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 중요한 첫 번째 의미는 머리와 몸은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면 그것을 한 몸이라고 혹은 한 인격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시고 부탁하신 것, 머리가 그 지체에게 명령한 것을 지체는 마땅히 당연히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정상적인 몸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각 지체들에게 부탁하신 바, 말씀하신 바는 당연히 그 지체들이 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는 그 몸의 지체된 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체들끼리 서로 연합하지 않으면, 서로 하나 되지 않으면, 몸은 몸의 기능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각 성도들끼리 서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또 서로 돕고 하나 되어야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바로 그 점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연합과 동거의 의미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편으로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즉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들이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1)
성전에 올라가는 자들은 성전에 올라가서 함께 나눌 교제를 기대합니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성도들이 성전에 올라와서 함께 떡을 떼고 함께 교제하며, 자신의 약함과 자신의 세상살이에서 상하고 지친 고달픔을 나누고, 위로하고 위로받기를 기대하며 성전에 올라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두 단어가 바로 연합과 동거라는 단어입니다. 연합과 동거는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서로 연합할 수 있어야 함께 사는 것, 즉 동거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연합이라는 말을 그냥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가치 속에서 과연 연합이 가능할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연합을 이루지 못합니다. 연합하는 척할 뿐입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세상은 힘이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압제하고 흡수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연합할 만한 사람들끼리만 연합합니다.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이 된 사람들끼리 손잡고 연합하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의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끼리 자신의 힘과 권력의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손잡고 연합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연합은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약한 자나, 강한 자나, 힘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목소리가 큰 자나, 목소리가 작은 자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연합이 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
사도 바울은 여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를 바울은 개척하고 1년 6개월 동안 그곳에서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들려오는 소식은 고린도 교회의 좋지 않은 소식뿐이었습니다. 교회가 나뉘어지고 분열되고 갈등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1대 목회자는 바울입니다. 2대 목회자는 아볼로입니다. 그런데 바울파와 아볼로파가 나뉘어서 서로 싸웁니다. 서로 갈등합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연합하지 못합니다. 지체들끼리 연합하지 않습니다.
서로 아주 사소한 문제 때문에 다투기 시작합니다. 그들 사이에 송사의 문제가 있었고, 결혼의 문제가 있었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 은사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각양 다른 은사를 서로 인정하지 않고 자기 은사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사랑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은 그러므로, 이 교회가 어떤 일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이니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 서로 성도들끼리 각 지체들끼리 서로 연합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실로 교회다우려면 이 연합이 가능해야 됩니다. 서로 출신 고향이 다른 사람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우선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고, 그분의 약함을 인정하고 보듬어 주려고 해야 연합이 가능하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연합이 어렵다면 그것은 세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연합이 가능한 다음에야 동거가 가능해집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연합한 교회가 서로 함께 동거하고, 같이 머물러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고 서로 주눅 들지 않는 공동체, 시인은 이 시를 읊으면서 성전에 올라갑니다. 성전에는 그런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꿈꾸면서 올라갑니다. 세상살이에 찌들고 지치고 힘든 자들이 성전에 올라와서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꿈꾸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의 현실이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세상보다 더 악하고 더 못하고 오히려 더 분열하고 갈등하고 끼리끼리의 모임만 있다면, 이분이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오늘 우리 교회 공동체로 찾아오고 올라오시는 분들이 연합과 동거를 꿈꿀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연합과 동거가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풍성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론의 기름부음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 133:2)
시인은 대제사장 아론을 여기서 갑자기 떠올립니다. 아론이 입고 있었던 대제사장의 의복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제사장의 의복 구조를 보면 가슴에 판결 흉패라는 것을 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뜻을 물을 때 사용하는 판결 흉패입니다. 우림과 둠림이 들어있는 흉패입니다. 그 흉패 위에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열두 보석이 박혀있는 겉옷을 입습니다. 그 열두 보석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다 빼곡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런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이 흘러내립니다. 목줄을 타고 흘러내리고 가슴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돌을 차례차례로 기름이 타고 흐르고, 그 기름이 아론의 옷깃으로 흘러져 땅으로 떨어집니다. 여기에서 기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놀라운 위로부터의 은혜가 아론을 통해서, 대제사장을 통해서 흘러내려서, 그 가슴에 있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차별 없이 구별 없이 모두에게 흐르고 타고 내린다는 뜻입니다.
성도들 간에 연합과 동거가 가능하면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어느 지파도 구별 없이 차별 없이 누구에게도 치우침 없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물줄기처럼 흘러내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보십시오. 강한 지파도 있고 약한 지파도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대단히 강했습니다. 인구도 많고 열두 지파 중에 분배받은 땅이 가장 넓고 컸습니다. 잇사갈 지파, 스불론 지파는 이름도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연약하고 부족한 지파들입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자는 요셉이었습니다. 요셉 지파는 므낫세 지파, 에브라임 지파입니다. 므낫세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나, 사랑받지 못했던 빌하와 실바가 낳은 아들의 지파들이나, 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름부음의 역사가 그들에게 흘러내립니다. 연합과 동거가 가능할 때 그렇습니다.
교회 공동체에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분도 있고 이제 막 시작하신 분도 있으며, 열심을 내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있고 형편과 처지가 못 돼서 그렇게 못하는 분들도 있고, 가정의 형편이 그나마 좋아서 내가 하나님께 드릴 만큼 드릴 수 있는 분도 있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치우침이 없습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자들에게 동일하게 흘러내립니다. 우리가 연합하고 동거한다면, 그 놀랍고 귀한 은혜가 그렇게 흘러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차별 없이 구별 없이 흘러내리고 있는데, 사람이 그 사이에서 차별하고 나누고 분열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성도라고 말할 수 있으며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헐몬의 이슬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3)
헐몬은 헤르몬산을 뜻합니다. 헤르몬산은 이스라엘 땅의 가장 북단에 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 산꼭대기에는 항상 만년설로 뒤덮여 있습니다. 산꼭대기의 기온과 산 아래 산 중턱의 온도가 다릅니다. 기온차 때문에 이슬이 맺힙니다. 이슬이 지속적으로 흘러내려서 시내를 이룹니다. 그 시내가 요단강의 발원지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요단강이 흘러내려서 큰 호수를 이루는데 그것이 갈릴리 호수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 이스라엘 땅을 정확하게 절반으로 나누면서 관통해서 사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진 이스라엘 땅을 요단강이 흘러내리면서 각 지파별로 요단강이 농사와 목축의 젖줄 구실을 합니다. 어느 한 지파의 땅도 차별 없이 요단강이 흘러내리고 그들에게 물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물고기를 제공하고 생수의 근원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이렇게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요단을 통해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게 흘러내려서 그들이 먹고 살게끔 해주고 그들의 마른 목을 축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식으로 흘러내립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열두 지파에게 차별 없이 흐른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셨던 지형적, 지리적 은혜가 그들에게 똑같이 흐른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인정받는 잘난 사람이나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나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연합해야 되고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성전을 향한 기대가 오늘 우리 교회에서 아름답게 일어나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됨이 없는 교회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진정한 연합은 교회에서만 가능합니다. 세상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끼리,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끼리만 연합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연합은 세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약한 자나, 강한 자나, 힘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연합이 가능합니다.
둘째는 연합과 동거가 가능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차별 없이 임합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열두 지파에게 차별 없이 흐른 것처럼, 헐몬의 이슬이 요단강을 이루어 모든 지파에게 흘러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연합하고 동거하는 공동체에 치우침 없이 동일하게 임합니다.
셋째는 교회가 진정 교회다우려면 서로의 약함을 인정하고 보듬어야 합니다. 서로 출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마음을 열고 들어주려 하고, 약함을 인정하고 보듬어 주려 해야 연합이 가능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십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런 연합과 동거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