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하신 하나님
시편 136편
내려오는 말 중에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 가운데 며느리가 미우면 발뒤꿈치까지도 미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발뒤꿈치는 사람들마다 거의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미워봐야 얼마나 밉고 고와봐야 얼마나 곱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미워 보인다는 말은 며느리 자체가 고와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또 사람들은 다 저마다 제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미운 눈으로 보니까, 마음에 들지 않는 마음으로 사람을 보니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고 미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잘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고 좋은 것이 객관적으로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마음으로 사람을 보면 그 하는 모든 일이 다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보실 때 어떤 마음으로 보시겠습니까? 객관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사람들, 이 세상 모든 일들이 전부 다 선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한 구석이 훨씬 더 많고, 인간들이 계획하는 일들이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한탄할 일들만 훨씬 더 차고 넘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이렇게 유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인간을 보시는 관점이 기본적으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사랑으로 보시지 않으면 모든 인간들을 하루에도 열두 번 심판하실 일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계시느냐 하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26절까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형식이 똑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스물여섯 가지 이유를 상세하게 열거합니다. 26절까지 되어 있는데, 문단을 나눠보면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업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즉 창조와 구원과 안식을 감사하는 세 가지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조의 하나님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6-9)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창조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 세상 창조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요, 본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그냥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진화론적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사고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나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보는 바 세상이 모두가 다 진화론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 이 세상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저마다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그래서 힘센 존재만 살아남는다고 가르칩니다. 이른바 적자생존의 원리입니다.
강하고 힘센 존재, 사람도 그렇고 동물도 그러하고 식물도 그러하고, 그런 적자생존의 원리가 온 세상 만물에 가득 차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길러야 되고, 돈이 있어야 되고, 권력이 있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세상은 파괴적으로 흘러갑니다. 힘센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고, 강한 국가가 약소국가를 지배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전쟁이 그치지를 않습니다. 진화론적 사고방식이 만들어낸 세상의 비극적인 풍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 우리가 이것을 믿고 믿음의 사람들이 이 진리를 모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졌음을 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떤 식으로 바라봐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정원을 보십시오. 이 세상의 동식물들을 보십시오. 약한 동물들은 약한 동물들대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원을 보면 그 정원에는 잘생긴 식물도 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름 모를 들풀들도 있습니다. 강한 것만 살아남는다면 약한 존재가 어떻게 지금까지 우리 눈에 보이며 살아남았겠습니까?
사람들도 보면 저마다 자기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고, 잘하는 것이 있고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근본적인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자하신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흔히 하는 말, "너 세상에서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데, 그래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다", "힘을 길러야 된다", "돈을 벌어야 된다"라고 그렇게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도 모르게 진화론적 사고를 자녀들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 이전에 사랑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알려줘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고 계시는 것처럼, 우리도 온 세상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사랑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데, 돌멩이 하나도, 그리고 이런 물가의 들풀 하나도, 들꽃도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겠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짓밟아야 될 이유는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품어 주고, 세워 주고, 아껴 주고, 사랑해야 될 대상들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않으니까 우리 입으로 형제를 저주하고, 우리 손으로 그들을 압제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의 그 근본 원리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인자하심으로 사람과 세상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구원의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3-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애굽은 그 당시 세계 제국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였습니다. 그들의 군대는 아주 강력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군대를 떨치고 그들과 싸워서 어떻게 이기고 어떻게 출애굽하겠습니까? 그들이 10가지 재앙을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했습니다. 그런데 앞에는 홍해 바다가,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옵니다. 바다를 어떻게 건넙니까? 애굽 군대와 어떻게 맞서 싸웁니까? 그런데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사막을 건너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그 존재의 면면을 보면 그들을 구원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행한 일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돌아서면 원망하고, 입만 열면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돌을 들어 그를 쳐 죽이려고까지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실 행위로서는 구원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자들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건지시고 구원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임했고, 하나님은 그 구원의 능력을 그들에게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이끌어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행위로써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해서 우리 영혼, 우리 존재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리 선하게 살아도 구원받을 수 없는 그런 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행위를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애굽보다 더 악한 세상에서, 더 악한 사탄의 권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보혈의 공로로 우리 각 사람들을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절대로 행위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공로를 드러내서도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도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인과율의 원리를 사람들에게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그저 우리가 하나님께 혹은 사람들에게 자랑해야 될 한 가지가 있다면 우리의 무능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백성들은 항상 마지막 결론으로 말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업을 주신 하나님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곧 그 종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21-2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시고, 이제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고 난 이후에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그를 통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에는 이미 살고 있는 강력한 일곱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기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을 내몰게 하시고, 그 땅을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노래하며, 이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덕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만해집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기 힘으로 이 땅을 차지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땅에서 쫓겨나서 바벨론 포로로 끌려갑니다.
오늘 이 사건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오늘 우리 일터, 우리 가정, 내가 내 손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 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도 주시고 능력도, 지혜도 주시고,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싸움할 때마다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살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입니다. 나에게 기업을 주신 하나님, 먹고 살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인자하심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위로써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임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를 건져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위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터, 가정, 건강, 능력, 지혜,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이루었다고 교만해졌을 때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창조와 구원과 안식,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이 하나님 하신 일에 대한 영원한 감사가 우리 입술에서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