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말씀을 높게 하셨음이라
시편 138편
진정한 친구를 얻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한 번 사귄 친구와 평생을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더욱 귀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한 벗이 곁에 있다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겠지만, 현실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좋은 친구의 조건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참된 벗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의 언행을 수습하기란 매우 곤란한 일입니다. 상황에 따라 말이 변하고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면 어떻게 그런 사람과 오랜 세월 벗으로 지낼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기준으로 살펴본다면 유한한 육신을 가진 인간들 가운데서 평생의 친구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친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138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평생토록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고, 한시도 하나님을 떠나 살지 않았던 탁월한 신앙인이었습니다.
말씀의 존귀함
다윗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시 138:1)
그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이유는 평생에 걸쳐 경험한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 (시 138:2)
다윗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이름보다 높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이름의 권위를 지극히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세 번째 계명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름 자체에 권위와 존귀함이 내재해 있기에, 그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이름을 팔아 사익을 취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결코 묵과하지 않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존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자들을 각별히 아끼십니다. 다윗이 골리앗과의 전투에 나아갈 때 들고 나간 것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거인 골리앗 앞에 담대히 나선 다윗을 외면치 아니하시고 승리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존귀한 하나님의 이름보다 더 높이 두신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왜 그러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말씀하고 계시며, 우리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가장 중심에 두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존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말씀이라면, 우리도 마땅히 그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순종하며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들을 더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선물, 그러한 것들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고 가치 있으며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이름보다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와 부딪치는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말씀이 늘 듣기 좋은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과 폐부를 찌르는 충격적인 말씀도 있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 우리 각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말씀은 오히려 순종하기 어려운 그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내려고 몸부림치며, 그 말씀대로 행하고, 그 말씀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 자체가 이미 복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평생의 신앙생활을 통해 깨달은 바는 이것입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승리했지만, 그 이후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간 여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고백을 귀하게 여기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삶의 터전을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시 138:3)
다윗은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께 수많은 기도를 올렸습니다. 간구하는 기도, 소원을 아뢰는 기도, 이 모든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의 영혼이 쇠약해질 때마다, 그의 마음이 연약해질 때마다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강건케 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구하는 대로 들어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달라고만 구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박자가 어긋나고 헛바퀴만 도는 것입니다. 기도의 전제 조건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올려드리는 어떤 기도든지 응답되고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응답받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과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데, 오직 자신의 욕망과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한 기도로는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원하는 욕망이 이루어지면, 그 응답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욕심에서 비롯된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낮은 자를 살피심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시 138:6)
다윗의 평생에 낮은 자는 누구였겠습니까?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광야를 전전하며 정녕 낮은 자로 살아온 세월이 오랜 기간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서 목동으로 지낼 때도 낮은 자였습니다. 한편 그의 평생에 교만한 자는 사울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낮은 자의 아픔도 다 알고 계셨고, 교만한 자의 콧대 높은 교만도 모두 알고 계셨습니다. 멀리서 모르는 것처럼 보이셨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낮은 자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다닐 때, 내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향해 있다면,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힘과 위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르실 것이라 생각하며 위로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의 인정을 갈구한다면 그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어떤 상황과 형편에 처해 있든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힘겹게 하는 모든 일에서 건져낼 것입니다.
또한 지금 내 위에서 군림하며 교만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그 교만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헌금을 기억하고 알고 계셨던 것처럼, 그 작은 헌신의 가치를 주님은 다 보시고 알고 계셨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몰라주어도, 저 높은 곳에 계신 것 같은 하나님께서는 사실 가장 가까이 계십니다. 사람들은 내 곁에 바로 붙어 있으면서도 내 진심을 아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데, 멀리 계신 듯한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구원의 확신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시 138:7)
결국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궁극적인 이유는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모든 형편과 처지를 아시는데, 그 하나님은 우리를 건지시고 구원하십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유는 구원 때문 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내가 너를 건지고 구원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우리도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백성답게 살아가며, 오늘 하루도 구원의 은혜가 우리 인생에 충만히 넘쳐흐르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높이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보다 말씀을 더 높이 두셨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을 순종하며, 말씀 위에 삶의 기초를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들보다 말씀 자체를 더욱 귀히 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기도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할 때, 그때 올려드리는 기도가 참된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 고난당할 때도,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고 아시며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시면서도 가장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는 분입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신앙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