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39편

성경
시편5권

나를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편

가족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평생 함께 살아도 저 사람 속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배우자를 향해서도, 자녀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속으로 낳은 자녀라 할지라도 그 아이가 생각하는 것을 온전히 알 수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폄하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실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계획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온전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 깊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의 소용돌이들, 앞날을 향한 계획들, 혹은 분노와 낙심과 절망의 감정들을 우리가 하나하나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과연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하고 말을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왜 그랬던가, 왜 그런 말을 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던가" 하며 후회하지 않습니까.

정녕 자기 자신을 잘 안다면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통제하고 자신을 다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도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실수를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 가까운 사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잘 모른다면, 그렇다면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은 누구이겠습니까. 그분은 바로 나를 지으시고, 날마다 다스리시며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시편 139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시 139:1)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신다고 고백합니다. 언뜻 보면 단순한 고백처럼 보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의 이 고백이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가 자신을 아시는 하나님을 매우 깊이, 매우 놀랍게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어렸을 때 그의 집에 사무엘 선지자가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버리시고 이새의 집에서 기름부을 자를 택하라고 사무엘을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자 사사였던 사무엘이 자기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새는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윗은 없었습니다. 아버지 이새가 판단하기에 다윗은 이런 자리에 낄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양 떼를 돌봐야 했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다윗 스스로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얼굴을 한번 뵙고 싶고, 기도라도 한번 받고 싶지만, 나 같은 사람이 어찌 형님들 있는 그 자리에 낄 수 있겠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 역시 자기 자신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새도 다윗을 몰랐고, 형제들도 다윗을 몰랐으며, 다윗 자신도 자기를 몰랐습니다. 다윗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자리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훈련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다른 사람이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모른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지속적으로 발견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가장 잘 아시니, 저를 깨닫게 해 주십시오. 제가 어떤 길로 가야 합니까. 내 욕심은 왼쪽 길인데, 정말 이 왼쪽 길로 가는 것이 맞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른쪽으로 가라 하시면 가겠습니다. 나보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내 욕망도 아시고, 나의 연약함도 아시며, 내가 계획하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항상 아뢰어야 합니다. 모르면 물어보아야 하고, 하나님과 상의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리가 바로 그러한 자리입니다. 매 순간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며 기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을 정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생각을 아시는 하나님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시 139: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알고 계십니다. 계획하는 것, 생각하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동기부터 선하게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알고 계시니, 생각의 시초부터 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생각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성실해야 하고, 과정에 거짓이 없고 위선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약한 사람들인지라 참으로 어리석게도 동기는 무시하고 과정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직 결과만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사고방식이나 삶의 태도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과를 가지고 우리에게 따져 물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계획이 선했는지, 과정에 불법이 없었는지, 항상 선하고 바른 길을 걸으려고 애쓰고 노력했는지를 보십니다. 그러면 결과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우리 눈에는 당장 실패처럼 보이는 결과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결단코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생각해 봅시다. 예레미야는 성공한 선지자입니까, 실패한 선지자입니까.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는 완전히 실패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가르치고, 바벨론도 의지하지 말고 애굽도 의지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선포하라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열심히 전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기 싫어했습니다. 그 당시 거짓 선지자들은 이 나라에 전쟁이 없을 것이며, 망하지 않을 것이고, 평화만 있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의 쓴소리가 싫었던 궁중의 관리들과 권력자들은 그를 모질게 고문했습니다. 진흙 구덩이에 빠뜨리기도 하고, 거의 목숨이 끊어질 지경까지 때리고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나라가 망해버렸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왕은 끌려가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고, 성전은 불타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실패한 것입니까.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는 그가 설교하면 수천 명이 모여 회개하고 통회자복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예레미야는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셨고, 그는 전했습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전하지 않을 때 예레미야는 멸망을 선포했습니다. 백성들이 듣고 듣지 않는 것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이지, 예레미야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아끼고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연말을 지내시면서, 한 해 동안 받아든 삶의 성적표 때문에 낙심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동기가 선하고 과정이 올바르게 지내왔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성공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는 참 수고했다, 애썼다, 앞으로도 이렇게 흔들리지 말고 믿음 생활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실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하나님 앞에서 항상 바른 마음을 품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 139:7-10)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은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다 알고 계시고 보고 계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이 광야를 전전하며 다녔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 다녔습니다. 그가 있던 곳은 깊은 광야 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서도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다윗은 성전 신앙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기도하기를 즐겨했습니다. 그는 왕이 된 이후에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겨오려고 많은 애를 썼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 신앙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계시고, 바다 끝에도 하나님이 계시며, 그가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경험하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이곳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나아갈 일터에도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모든 곳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우리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오늘도 몸으로 느끼고, 영으로 기억하며, 그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하루, 하나님 보시기에 복된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남이 나를 모르고 나도 나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십니다. 기도하는 자리에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물으며, 걸어가야 할 바른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둘째는 동기와 과정을 선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과만으로 우리를 판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계획이 선했는지, 과정에 불법이 없었는지를 살피십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동기와 과정의 순결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셋째는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도 계시고 스올에도 계시며 바다 끝에도 계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하나님은 함께하십니다. 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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