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40편

성경
시편5권

악의 실체

시편 140편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서 이름을 얻는 것을 유명해진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유명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 방향은 좋은 방향으로,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위대한 발명을 하거나 큰 업적을 세우는 사람들이 선한 방향, 좋은 방향으로 유명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 방향으로 유명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이 놀랄 만한 큰 악을 행하거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흔히 악명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실 후자의 경우가 아닌 전자의 경우에 유명해지는 것을 추구하고 따르고 있는 자들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보면 역사가 기록할 만한 아주 탁월한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두 사람을 꼽자면 먼저는 히틀러를 꼽을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며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참으로 악명 높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히틀러의 검은 마수에서 유럽 전체가 넘어갈 뻔한 일을 막아내고 그 일을 주도하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유명하지만 한 사람은 악명 높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선한 일로 유명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히틀러와 처칠 사이에는 아주 공통점이 많았습니다. 우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그들은 유명했고, 그 다음으로 그들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연설을 아주 잘했습니다. 연단에 서서 말을 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들의 연설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고 열광할 정도로 그들은 탁월한 언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두 사람은 굉장히 성실했습니다. 그들의 참모들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대단히 성실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이 두 사람은 양극단에 서 있는 정반대의 사람 같아 보이지만, 얼굴을 가리고 이름만 가리면 사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굉장히 많습니다.

선과 악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우리가 이 선과 악의 정체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선과 악의 근본적인 차이는 방향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은 악인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그가 경험한 악인의 정체와 실체에 대해서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정체

"여호와여 악인에게서 나를 건지시며 포악한 자에게서 나를 보전하소서" (시 140:1)

다윗은 평생 동안 주변의 악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악인 구덩이에 살았습니다. 다윗 하면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악인은 사울입니다. 또한 그를 말년에 광야로 내몰고 왕궁을 빼앗았던 그의 아들이었지만 다윗의 대척점의 악인으로 살았던 압살롬도 역시 대표적인 악인입니다. 그러나 사울과 압살롬을 악인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범주가 너무 좁습니다. 사울은 왕이었기 때문에 사울을 위시한 그 주변 사람들 모두가 다윗에게는 악인의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사울의 궁전에서 사울의 군대 장관으로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했습니다. 여기서 악인이라고 혹은 포악한 자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한때는 다윗의 동료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웃고 즐기고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나고 밖으로 돌면서 그가 사울의 표적이 되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다윗의 동료, 절친한 사람들이 악인이 됩니다. 그에게 포악한 자가 됩니다.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다윗의 상황이 바뀌자 그들은 선한 친구에게서 포악한 자가 되고 악인이 됩니다.

비슷한 상황이 압살롬의 반란 때도 일어납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 그의 왼팔, 오른팔이 되었던 두 명의 모사들이 있었습니다. 아히도벨과 후새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아히도벨과 후새는 지략이 뛰어나고 지혜가 있던 두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윗이 전쟁하러 나갈 때마다 이 두 사람에게 청하고 그들의 지혜를 들었습니다. 다윗의 왕국을 다스릴 때 아히도벨과 후새가 다윗에게 큰 은혜가 되고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붙어버립니다. 아히도벨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윗을 죽이기에 앞장섭니다. 그러나 후새는 쫓겨나는 다윗을 따라 나섰습니다. 다윗이 말합니다. 네가 나를 따르는 것보다 왕궁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오히려 나를 이롭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큰 어려움을 겪어보니 진짜 악인이 누군지, 나를 돕는 사람이 누군지 다윗은 평생 동안 진짜와 가짜 사이에서 살면서 큰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과 거짓을 분별해냈습니다.

악은 원래부터 악이 아니었습니다. 포악한 자도 원래부터 포악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현실과 내 상황에 따라 악인이 그 정체를 드러냅니다. 포악한 자가 자신의 포악함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포악한 자, 혹은 선과 악에 대해서 낭만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항상 악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정체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 믿음의 길을 우리가 올곧게 걸어가다 보면 때로는 악이 바뀌어 선이 되기도 하고, 선한 얼굴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어 우리에게 악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있는 선해 보였던 사람들이 악이 된다고 해서 분노하거나 화낼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정말 좋았던 사람들이 포악한 자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우리는 그때 절망하거나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포악한 자를 알게 되고, 선이 아니라 악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다윗은 평생 그렇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이 원래부터 나누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반드시 기억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악의 성실함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을 꾀하고 싸우기 위하여 매일 모이오며" (시 140:2)

악의 실체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악은 대단히 성실합니다. '매일 모인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을 잡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던 사람들, 그들은 성실했습니다. 매일 모여서 다윗을 죽이기를 꾀했습니다. 악은 원래 성실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마귀가 얼마나 성실한지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탄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 세 번이나 시험합니다. 삼이란 수는 유대인들에게는 하늘을 의미하는 수입니다. 하늘에 닿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사탄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했다는 뜻입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넘어오지 않자 두 번째, 두 번째에서 넘어오지 않자 세 번째까지 사탄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최선을 다해서 시험하는데 우리에게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사탄이 보디발의 아내를 이용해서 요셉을 시험할 때 매일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요셉이 한 번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물러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요셉이 이 보디발의 아내의 청을 거절하고 이길 수 있었던 까닭은 적어도 사탄보다 더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에 우리는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계속해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지 않으면, 우리는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사탄에게 따라잡히고 발목 잡히고 잡아먹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적어도 믿음 생활에 있어서는, 기도 생활에 있어서는, 말씀 생활에 있어서는 사탄마귀보다는 열심히 하고 성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이 악한 세상을 바로잡고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악의 동역

두 번째로, 이 사탄의 정체는 동역을 잘합니다. '모인다'고 말했습니다. 모여서 의논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지 사탄은 혼자 일하지 않습니다. 협업을 잘합니다. 예수님 당시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들은 대제사장 집단만이 아닙니다.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학자, 바리새인, 우리는 그들을 범유대인 조직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는 여러 계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들은 서로 나뉘어져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당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빌라도와 헤롯이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입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명을 받아서 유대 총독으로 와 있는 사람이고, 헤롯은 그곳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의 이익이 상호 충돌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날에 그 둘은 서로 친구가 됩니다. 악은 이렇게 손잡고 동역합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선한 일을 위해서 얼마나 동역합니까?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까? 모이기에 열심을 다하라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모이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선한 일에 동역하지 않습니다. 사탄은 세상을 파편화합니다. 혼자서도 믿음 생활 잘할 수 있다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속고 있습니다.

나 혼자도 잘할 수 있다고, 혼자서 믿음 생활해도 집에서 영상으로 예배드리고, 공동체 신앙생활 하지 않아도, 교회 나가지 않아도, 공동체가 없어도 나는 혼자 성경 읽고 나는 혼자 예배드려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협업하고 동역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옆에 있는 사람들과 기도 모임하고 말씀 나눔하고 함께 동역하고 함께 애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탄은 그런 존재들입니다. 다윗이 평생을 살면서 악인을 경험했고, 그 악인을 통해서 역사하는 사탄의 권세를 경험하고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입니다. 기억하시고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고 우리는 거기에 걸려 넘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악은 원래부터 악이 아니었고, 포악한 자도 원래부터 포악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곁에 있는 절친한 친구가 상황이 변하자 악인이 되기도 하고 포악한 자가 되기도 합니다. 나에게 길을 알려 주었던 아히도벨 같은 사람이 나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노력하는 포악한 자가 되기도 합니다. 믿음의 길, 진리의 길에 굳게 서서 선과 악이 무엇인지 바로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둘째는 사탄마귀보다 더 성실해야 합니다. 악인들은 사탄의 실체를 본받아서 성실합니다. 매일 모여서 악을 꾀합니다. 우리는 적어도 사탄마귀보다 성실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기도하기에 성실하며, 말씀 읽기에 성실하며, 선한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삶을 마치는 그날까지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탄에게 따라잡히고 맙니다.

셋째는 함께 모여 동역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협업하고 동역합니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함께 말씀 읽고, 서로를 위하여 격려하고 동역하며 세워가는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서로 맞잡은 손 놓지 않고, 가정의 부부가 일치를 이루며, 교회 공동체의 동역자들이 서로를 위하여 중보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icon
핵심 주제
icon
제목

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