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기도
시편 141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방학이 되면 방학 기간 동안 어떤 생활을 할지를 계획합니다. 길고 긴 방학을 자기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 실력 향상을 위해서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그 결심한 것을 하루 일과표로 혹은 방학 계획표로 잘 기록해서 책상머리 앞에 붙여둡니다. 물론 그 계획대로 한 달 내내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길어봐야 3, 4일 혹은 더 길면 일주일 정도 그렇게 생활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원래의 생활, 원점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계획을 세우고 책상 앞에 붙여 두고 부모에게 도와 달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 결심을 입 밖으로 꺼내 놓았다는 것과 그리고 그렇게 해 보겠다고 방향을 잡고 노력하는 것,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어차피 옮기지도 못할 계획을, 어차피 살아내지도 못할 계획을 왜 그렇게 열심히 세우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내 마음에 품고 있는 계획들, 소망들, 혹은 기도 제목들,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내 놓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고 기도해 줄 수도 있고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꺼내 놓은 말에 스스로 속박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도 부탁을 했는데,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결단의 기도와 결심의 기도를 자주 합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차피 이 결심, 이 결단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스로 무너질 텐데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은 이렇게 의지력이 없는 나를 책망하시고 실망하시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왜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선한 생각들, 기도 제목들을 입 밖으로 꺼내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그렇게 하겠다고 결단하고 결심하고 자신의 결심을 기도로 올려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칙적 기도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시 141:2)
다윗은 자신의 기도를 이렇게 되게 해 달라고 결단의 기도를 올립니다. 이것은 규칙적으로 기도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전 성소에서 절대로 꺼트리면 안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분향단의 불입니다. 제사장들은 항상 분향단의 불을 관리해야 되는 의무와 책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는 성전 뜰에서 번제단에서 아침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상번제라고 불렀습니다. 아침 번제와 저녁 번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항상 성소에서 꺼지지 않는 분향단의 불과 같이 되게 해달라고,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내 기도가 항상 일정하게 해달라고, 나의 기도가 그치지 않겠습니다 하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어떻게 합니까? 간절할 때, 우리 가정에 어떤 특별한 문제가 있을 때, 기도 제목이 있을 때, 그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금식 기도도 하고, 작정 기도도 하고, 새벽에도 열심히 나와서 기도합니다. 매번 그런데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해이해지고, 느슨해지고, 기도를 나도 모르게 거르게 되고 쉬게 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다윗도 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다시 결단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제는 그렇게 상황을 따라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이렇게 나의 어떤 상황을 따라 할 때 하고 하지 않을 때 쉬고 이렇게 기도하지 않겠습니다. 내 평생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꺼지지 않는 분향단의 불과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드려지는, 하나님 앞에 올려지는 상번제처럼 저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이 결단입니다. 살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 꼭 그렇게 제가 기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결단을 입으로 꺼내 놓고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나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기도를 규칙적으로 드리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입술의 파수꾼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시 141:3)
사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는 것, 내 입술의 문을 지키는 것은 자기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이렇게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하나님 제가 입을 함부로 열지 않겠습니다. 말이 많아서 말에 실수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규칙적으로 하겠다고 한 후에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한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도 하고 누군가를 저주하고 원망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율배반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실컷 기도하고, 돌아서서 같은 입으로 형제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일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이제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십시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결단합니다. 사실 이 결단을 하고 난 이후에 다윗의 삶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남을 원망하거나 저주하거나 트집 잡거나 흠잡거나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결단했기 때문에, 혹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입술을 지키려고 애쓰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결단의 기도가 더없이 중요합니다.
분별의 삶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시 141:4)
다윗은 악한 자들과 아예 자리도 같이 하지 않겠다고, 그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도 나누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라고 표현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는 아예 같이 하지도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특별히 다윗은 사회적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장군이었습니다. 왕이 되고 난 이후에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 중에 악인들이 없겠습니까? 그런 사람들 중에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자들과 함께 얼굴을 맞대고 의논해야 될 일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결단하는 것은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답게 살겠습니다, 저에게 분별력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 살면서, 우리 일생을 살면서, 일터에서 만나는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 얼마나 많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 우리가 함께 만나고 함께 살아가고 함께 호흡하기는 하지만, 그들과 휩쓸려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결단을 다윗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매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진리의 길, 믿음의 길을 지켜가기 위해서 이런 자들과 가까이 하지 않게 해달라고 결단하고 결심하고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책망의 은혜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시 141:5)
의인의 책망을 내 머리에 부어 주시는 기름 부음같이 여기겠다는 결단입니다. 사람들 중에 책망 받는 것 좋아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어린아이들도 어른들이 책망하는 것 다 싫어합니다. 자아가 형성되고 이제 자기 생각이 굳어진 청소년들은 누가 싫은 소리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런데 성인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누군가가 내 삶의 영역을 침범해서 나에게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 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장군이었던 다윗, 왕이 되었던 다윗이 의인이 나를 책망하는 것을 머리에 기름같이 여기게 해 달라고 그렇게 결단합니다. 사실 이것은 쉽지 않은 결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단하고 결단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다윗이 나단의 책망을 머리에 기름같이 여기지 않았습니까? 나단 선지자가 와서 밧세바 사건을 지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악으로 여기셨다고 그를 책망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그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이것은 평소에 이렇게 기도했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입니다. 평소에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면, 평소에 그런 결단과 결심을 마음에 매 순간 새기고 살지 않는다면, 그런 상황이 갑자기 주어졌을 때 우리는 본능대로 행동하고 맙니다.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강합니다. 자기 보호의 본능이 있고, 자기 행동을 일반화하고 자기 행동을 보장하고 보호하려는 본능들이 자기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나단의 책망을 하나님께서 머리에 부어주시는 기름같이 여기고 그 앞에서 엎드려 구하는 이 다윗의 결단, 이것은 대단한 결단입니다. 평소에 기도하는 것, 이것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잘 되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기도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올 한 해가 마무리되는 연말입니다. 내년을 준비하고 또 시작하는 시절입니다. 굉장히 바쁘고 굉장히 분주한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잠히 찬찬히 올 한 해를 돌아보시고 하나님 앞에 이 결단의 기도를 준비해 보시기 바랍니다. 2025년 새해에는 하나님 제가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못한다고 해서, 어차피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시고 해보겠습니다 하고 조목조목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기도한 대로 다 이루어져 있을 것을 믿습니다.
결론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는 규칙적인 기도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나의 기도가 분향함과 같이 되게 하시고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해달라는 것은 규칙적인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기를 원하는 다윗의 결단의 기도입니다. 상황을 따라 기도하지 않고, 꺼지지 않는 분향단의 불과 같이, 매일 드려지는 상번제처럼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둘째는 입술을 지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도한 입술로 남을 원망하거나 저주하는 자가 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한 입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돌아서서 형제를 저주하는 이율배반의 삶을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하나님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셋째는 의인의 책망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다윗이 이 기도를 드렸기에 나단의 책망 앞에 즉시 무릎을 꿇을 수 있었습니다. 결단의 기도가 삶을 바꾸는 기도입니다. 2025년 새해를 준비하면서 우리도 내 인생을 돌아보고, 기도를 결단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